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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상가리 관광지 환경영향평가 심의 통과, 원희룡 지사 의중 아니길...

그럴 리가 없다. 원희룡 지사의 의중은 아닐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미 초고층으로 허가받은 드림타워까지 ‘직권취소’ 운운한 끝에 층수를 대폭 낮추게 한 장본인이 원 지사 아닌가. 교통문제와 스카이라인 문제가 눈에 밟혔을 것이다. 불과 사흘전 도의회 도정질문에선 “(중국과의)외교문제까지 감수했다”고 고백했다.

세련된 화법으로 애쓴 ‘티’를 냈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애교로 봐줄만하다. 솔직히 칭찬도 아깝지 않다.

논란이 분분한 대형 허가 사업마다 ‘행정의 일관성’을 주창했던 과거 도백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런 분이 두 번씩이나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들에 의해 제동이 걸린 상가리 관광지 개발사업에 활로를 열어주도록 ‘오더’를 내렸을리 만무하다. 더구나 원 지사는 도민과 권력을 나누는 ‘협치’를 핵심 기치로 내걸지 않았던가. 협치의 매개는 바로 이러저러한 위원회다.

그럴 리가 없다. 원 지사는 한 입 갖고 두 말 할 분이 아니다. 생태계의 보고, 중산간(해발 200~600m)은 꼭 지키겠다며 ‘개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게 지난해 7월이었다. 과장 좀 붙이면, 채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상가리 관광지는 중산간에서도 고지대, 그러니까 한라산 자락과 맞닿은 해발 500~540m에 위치해있다. 마지노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사업부지에 중장비를 들이도록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믿고 싶은 원 지사는. 희귀 동식물 보호 방안, 주민 동의 문제는 거론하고 싶지도 않다.

거듭 믿고 싶다. 원 지사는 그럴 분이 아니다.

말로는 ‘선 보전 후 개발’을 부르짖었지만, 실은 개발 드라이브 정책을 펼쳤던 전임 도정에서도 상가리 관광지 환경영향평가는 심의위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다. 당시 도백이 철저히 중립을 지켰던 것일까, 아니면 두 눈 부릅 뜬 위원들을 차마 어쩌지 못했던 것일까. ‘자연, 문화, 사람의 가치’를 중시하는 지금의 원 지사는 아마 전자에 해당할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보지만, 징후가 좋지않다.

먼저 위원들의 일사분란함이다. 참석 위원 14명 중 환경단체 추천 위원 3명만 ‘재심의’ 의견을 냈을 뿐, 나머지는 사실상 면죄부(‘조건부 동의’ 8명, ‘원안 동의’ 3명)를 줬다. 환경영향평가심의위 위원 면면이 바뀐 지난 2일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새롭게 구성된 위원회 위원들은 원 지사 한테 위촉장을 받았다. 환경단체 등에선 ‘끝에 가선 동의를 해주더라도 그래도 한두번 쯤 제동을 거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았다.

임기 만료로 그만 둔 한 전직 위원은 심의 통과 다음날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이럴 수는 없다” “원 도정이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통탄했다. “우(근민) 지사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기가 막히다”며, 일부 위원에게서 들은 ‘기막힌 장면’도 전했다. 회의 시작 전 환경단체 추천 위원이 회의 절차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현장 방문을 떠날)버스가 왔으니, 자 갑시다”는 말에 묻혀 버렸다고 한다. 현장 방문 후 다시 모여 각자 의견(재심의, 조건부 동의, 원안 동의)을 써낼 때도 환경단체 쪽 위원이 발언을 하려 하자 이번에는 ‘땅’ ‘땅’ ‘땅’ 소리에 가로막혔다. 나머지는 가타부타 별 얘기가 없었다고 한다.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재개된 회의는 공개 여부를 둘러싼 45분의 격론 끝에 결국 공개됐지만, 이러한 상황은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공무원들은 대놓고 사업자 편을 들었다. “비록 지사님의 발표(개발 가이드라인)에 저촉이 되지만, ...행정의 일관성, 신의성실의 원칙을 감안해서...” 지사의 방침을 어긴 것은 물론이고, 드림타워에서 보듯이 지사는 행정의 일관성 보다도 제주의 미래를 우위에 두는데도 말이다.

당연직 위원인 국장은 한술 더 떴다. “만일 여기 사업이 불신임되면(제동이 걸리면) 사업자가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 “심의위원들은 그런 맥락에서 봐 주셔야 한다”

도백의 지시, 혹은 묵인 없이 부하 공무원이 사업자 쪽 변호사와도 같은 말을 거침없이 내뱉을 수 있을까. 

회의 소집 통보 및 회의자료 제공 기일을 넘긴 것(환경영향평가 조례 위반) 말고, 채 알려지지 않은 또 한가지 사실. 심의 당시 제주도는 ‘환경영향평가서가 제출된 날(심의를 요청한 날)로부터 45일 이내에 심의해야 한다’는 조례 내용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긴급한 상황’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상가리 관광지는 심의를 요청한지 이미 45일을 훌쩍 넘긴 상황이었다. 그래놓고 뒤늦게 급하다며 수선을 떤 것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심의위가 다시 구성될 때까지 일부러 늦춘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심의가 늦어지면 클레임을 거는 쪽은 사업자가 된다. 이심전심이었는지, 그런 일은 없었다. 두 번의 재심의 결정 때 지적했던 내용들이 그새 다 보완됐는지도 의문이다.

‘그래도’ 그럴 리가 없다. 바쁘디 바쁜 원 지사가 모든 과정을 속속 들여다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직 절차도 많이 남아있다. 환경영향평가는 도의회 동의까지 구해야 하는 사안이다.

항간에는 원 도정이 상가리 관광지 만큼은 여느 개발사업과 달리 본다는 얘기가 있다. 고향 제주를 너무나 사랑한 재일동포가 유언을 통해 심혈을 쏟게한 마지막 역작이라는 것이다. 일부 중국자본처럼 투기자본이 아니거니와, ‘먹고 튈’ 우려가 없다는 점도 은근히 부각되고 있다. 조건부 동의 당일 제주도 관계자가 “일본에서 투자를 유치했고, 투자자의 선친이 제주도 사람”이라고 한 점도 이 사업에 대한 원 도정의 남다른 시선을 짐작케 한다.

사실이라면, 투자자에겐 참으로 안됐지만, 장소를 잘 못 골랐다. 한편으로는 아직 첫 삽을 뜨지 않은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제궤의혈(堤潰蟻穴). 큰 둑이 개미구멍으로 무너지듯이, 마지노선이 한번 뚫리면 또다른 ‘개미군단’의 침범을 막을 방도가 없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궁지에 몰린 국무총리는 불법 선거자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걸겠다고 했다. ‘일국의 총리’로서 해도 될 말인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결기 만큼은 대단했다.

취임 초기 환경을 화두로 던진 원 지사의 결기도 그에 못지 않았다.

뜬지 오래된 개그 프로그램에 이런 코너가 있다. 뭔가를 호언장담했지만, 결국 뜻대로 안되자 “죽는 건가?”라며 쓰러지는 장면이 압권이다.  

도의회에 출석한 원 지사가 외교문제까지 감수했다며 드림타워에 제동을 건 것에 자못 상기된 표정을 지은 바로 그날, 몇시간 뒤 도의회 맞은편 도청에선 상가리 관광지 환경영향평가 심의가 조건부 동의를 얻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중산간은 반드시 지키겠다던 결기대로라면, 앞으로 마지노선이 뚫리게 될 경우 원 지사도 결국 죽는 건가?

그럴 리가 없다. 원 지사는 ‘살아 있어야’ 한다. / 김성진·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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