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4.3 미술제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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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는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 따라 꿈속을 가듯
정처 없이 걸어가네 걸어만 간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네 빼앗기겠네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들이 어울린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 걸어 봄신명이
가슴에도 잡혔네 잡혔나 보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네 빼앗기겠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마을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도 보고 싶네 보고만 싶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네 빼앗기겠네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전문


일제 강점기 저항시인 이상화는 이렇게 강탈당한 민족의 현실을 시심으로 읊었다. 빼앗긴 조국의 푸른 하늘, 푸른 들에는 꽃피는 봄이 와도 봄이 아닐 터이다. 푸른 웃음, 푸른 들을 되찾는 그 날까지 언제까지나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고 탄식했다.

'잃어버린 마을!'
어찌 잃어버려 되찾지 못한 이들의 안타깝고 비장한 정조가 없을 손가. 그러나 '잃어버린'은 적확한 형용어가 아니다. 여기엔 화자의 본의는 아니라 하더라도 피해자의 과실이 강조되고, 가해자의 죄가 경감될 수 있는 표현이다. 실종은 사고지만 강탈은 사건이요 범죄이다. 따라서 '잃어버린 마을'은 '빼앗긴 마을'로 수정되어야 한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이 식민지 지배자들에 의한 억압과 수탈의 은유적 수사법이라면, 4·3의 '빼앗긴 마을'은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된 조국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의 은유적 수사법이다. 그 공권력의 뿌리는 일제 식민지 지배자들과 유착된 친일 반민족 세력과 이를 비호 사주한 점령군 미국이라는 점에서, 청산되지 못한 민족모순의 한 단면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마을을 빼앗김은 자손 대대로 전승된 공동체 문화의 유린이자 단란한 삶을 이어가던 한 집단, 한 가족의 존재 근거와 기반이 송두리째 해체되고 와해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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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4·3미술제는 '빼앗긴 마을' 탐방으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열 번에 걸친 4·3미술제에서 공유된 역사의식과 형상체험을 바탕으로 탐미협 작가들은 4·3항쟁의 모순을 가장 비극적으로 담지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1948년 가을부터 겨울 사이에 있었던 군경 토벌대의 중산간 마을 초토화 작전 시 소개되고 방화되어 인적이 끊기고 폐촌이 된 몇몇 마을을 탐방하여 4·3이 남긴 과거의 상처를 몸으로 직접 체험, 이를 미적 형상으로 현재화하기 위한 의도였다. 즉 이번의 작업은 조형적 매체를 빌린 현장보고서인 셈이다.

이번에 탐방한 마을은 화북 곤을동, 아라동 인다라, 애월 봉성리 자리왓, 소길리 마을이었다. 사람도 마소의 자취도 끊긴지 오래인 이들 마을엔 이끼 낀 돌담과 올래, 바람결에 흔들리는 울창한 대숲, 간혹 발길에 채이는 사기그릇과 옹기 파편들, 그리고 퇴락한 우물터가 이곳이 한 때 사람이 살았던 자리임을 희미한 기억의 조각으로 전해주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의연히 버티어 선 고목의 팽나무만이 그때의 피맺힌 이야기를 전하듯, 56년이란 세월을 훌쩍 건너 도란도란 평화스런 삶을 이어가던 한 마을이 광기의 피바람에 가뭇없이 사라져가던 역사의 현장은 그렇게 다가왔다.

비교적 현장성에 충실한 몇몇 작품들을 보자.
양천우의 <인다라 마을>은 종이에 목탄 특유의 거친 질감을 잘 살려 폐촌된 인다라 마을의 신산한 흔적을 재현하고 있으며, 김수범의 사진 작업 <추신2-그토록 오랜 부재>는 한 평범한 시골집이 사람이 부재하면서 폐가로 변해 가는 모습을 흑백 사진 시리즈에 담아 인적 없는 오랜 부재가 남긴 애잔한 마음의 풍경을 전한다.

오윤선의 <곤을터-신목>은 화북 곤을터 정경을 후경에, 신목 팽나무를 전경에 배치시켜 역사의 현장을 증언하는 신목의 영험한 기운을, <곤을터-신위>는 실사 출력한 곤을 마을의 사진 위에 당시 토벌대에 희생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합성시켜 해원의 제의성을 형상화 했으며, 강태봉의 <묵시>는 실사 출력한 곤을동 정경 위에 빛 바랜 한 일가의 가족사진을 합성시키고, 흙 위에 깨진 사기 밥그릇을 설치하여 한 마을에 불시에 불어닥친 역사의 광풍, 그 와중에 산산히 해체된 가족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정용성과 송맹석은 자리왓과 곤을동의 역사적 현장 체험을 바탕에 깔고 자신의 미감을 담담히 이입시켰다. 수묵 담채로 그린 정용성의 <자리왓, 자리왓 그 곤을동>은 봉성리 자리왓 올래 어귀에 자리한 늙은 팽나무와 울담을 둘러싼 대숲을 통해, 송맹석의 <팽나무(자리왓)>은 자리왓 팽나무 아래에서 먼산바라기를 하고 있는 노인과 뒤돌아 선 꼬마의 모습을 통해 오늘의 평화스런 광경에 각인된 처절했던 과거의 역사를 차분한 시선으로 반추한다.

이밖에 빼앗긴 마을의 답사 체험을 개인의 미의식으로 여과시켜낸 작품으론,
화면 가득 선혈이 뿌려지듯 점점이 흩날리는 동백꽃잎을 통해 희생자의 진혼과 해원의 서사적 알레고리를 담은 강요배의 <꽃비가 내리고>, 황토빛 거친 들판 한가운데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한 할머니의 형상을 통해 모진 역사의 시간 속에서 단절되고 소외된 한 인간의 스산한 내면 풍경을 묘사한 안병식의 <잃어버린 시간>, 고길천의 <꽃피는 세월>, 박경훈의 <마지막 본 풍경>, 양미경의 <고사목-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이경재의 <참나리꽃>, 강문석의 토루소 <자해>, 희생자들의 데드 마스크를 뜬 김영훈의 테라코타 <독백>, 박소연의 <새벽>, 현경화의 <붉은 들>, 고경화의 <그 삶은 모른다 그러나....>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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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은 불순한 외부 세력의 폭력으로부터 제주섬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한 자주 항쟁이었다. 이 피어린 항쟁의 와중에 이 땅의 순박한 민초들이 가공할 국가 폭력에 의해 집과 가족, 삶의 터전을 총체적으로 유린당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삶과 마을 공동체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역사의 범죄이다.

빼앗긴 것은 무조건 되찾아야 하고, 복원되어야 한다. 그것이 개인이든 국가든 최소한 정의의 부름에 화답하는 길이다. 반세기 이상이나 빼앗긴 마을, 빼앗긴 기억, 빼앗긴 세월을 치유하고 봉합해 그 물리적 기반과 정신적 원형을 온전하게 되살리고 되찾을 때 비로소 우리의 봄은 오는 것이다.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엄숙하고 결연하게 역사의 현장에 서 있어야 할 것이다.

탐미협이 주최한 이번 11회 4·3미술제의 아쉬운 점은 이러한 현장성의 미흡함에 있다. 절절한 현장의 체험을 미적 조형성으로 여과시켜 매체적 특성을 살린 완성도 높은 작품성으로 담아내지 못한 점은 전체적으로 보아 냉정히 반성해야 할 문제이다. 빼앗긴 영혼을 복원하고, 빼앗긴 실존을 회복하는 일은 역사에 헌신하는 아름다운 인간의 과업이며, 그러한 미적 형상화의 최전선에 올곧게 선다는 것은 진정 아름다운 예술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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