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51) Garota / Erlend Ø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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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GAO-Erlend Øye(2014)

나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지도 어디쯤에서
한쪽 눈을 감고 이곳 장면을 저장해 간다
 - 윤성택의 시 ‘여행, 편지 그리고 카메라’ 중에서

여행자의 카메라는 당신이 없는 곳에서는 오지 밖에 담을 수 없다. 하지만 여행자는 그곳에서 기타를 치거나 시를 쓴다. 앨런드 오여(Erlend Oye)는 ‘Kings Of Convenience’라는 돛단배를 타고 가다 기타로 만든 카누를 타고 여기까지 온 여행자이다. 사랑의 오독(Misread)을 밥 먹듯 하여 피골이 상접한 채. 처음에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더 좋을 역량이 남아있을지 의구심마저 들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처럼 음악의 힘을 합쳐서 이루는 조화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솔로 앨범은 단조로운 산책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그냥 츄리닝 바람으로 마트에 가는 일상의 흥얼거림이 아니잖아. 무책임하게 말하면 알 스튜어트의 재현이다. 아이슬란드, 자메이카, 독일, 이탈리아 등지를 유랑하며 노래를 하고 있다. 이것은 어딜 가든 음악만 생각하기에 가능한 성과이다. 노마드라는 말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에게만 허락해 주고 싶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라는 이름처럼 그들 음악의 간편한 아름다움이 작은 숲을 이룬 것만으로도 족하다 여겼는데 노르웨이의 숲을 헤치고 나온 앨러드 오여. 그들의 음악에 빠져 허우적대본 사람들은 안다. 그들이 내고 있는 고요한 외침을. 그리고 이제 이 마른 몸에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청년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매운 김치도 우적우적 씹을 것 같은 이 음악 사절단을. 그의 음악적 방랑벽은 서울에 도착해 여장을 푼다. 가방에서 나온 것은 하얀 여권 하나. ‘Garota’는 포르투갈어로 ‘소녀’를 뜻한다. 그의 눈빛은 홍상수 영화 ‘자유의 언덕’의 일본 청년 모리를 닮았다. 이인(異人)이지만 애정으로 여행하는 사람의 손에 쥔 카메라이다. 그리고 그 카메라의 피사체는 ‘메리대구 공방전’, ‘고교처세왕’에서 보여준 이하나의 소녀적 순수함 속에 숨은 엉뚱함일 터. 그 소녀의 엉뚱한 모습이 곧 예술이고 음악이라면 비약일까? 우연하게도 이하나 주인공의 영화 ‘페어 러브’의 상대 남자의 직업은 사진 수리공이다. 재진아, 듣고 있니? (주의 사항 :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시절의 ‘I'd Rather Dance With You’를 통해 눈치 챘겠지만, 앨런드 오여의 공연 중에서 그의 춤은 한 번은 관용으로 봐줄만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이성이 환불 요청을 하려고 할 테니 유념할 것.)/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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