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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島詩樂 산책](10) 아버지 / 김광렬

달이 휘영청 밝습니다
오늘따라 당신 생각이 간절합니다
못 견디게 가슴 파고들어
아버지 아버지라고 나도 모르게 나직이 불러봅니다
병과 싸우던 노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다 필요 없다고 지팡이 휘두르며
당신은 외쳐댔습니다
그것이 병과의 싸움인 줄은 모르고
이 세상 정을 끊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인 줄은 모르고
아 너무나 한심했습니다
지금 나는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어리석은 저는
이제야 깨우칩니다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천근 사랑이라는 것을
다소곳한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깊은 사랑은 가슴속에 소리 없이 자라나다가
가슴 치밀어 터져 나기도 한다는 것을
오늘은 달이 휘영청 밝습니다
아버지 저 푸른 달이 바로 당신입니다 / 아버지 - 김광렬

김광렬 =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으로 『가을의 詩』, 『풀잎들의 부리』, 『그리움에는 바퀴가 달려 있다』 등이 있음.

오월을 가정의 달이라 합니다.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어 그런가 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여기 없는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시인은 병마와 싸우고 계신 아버지를 찾아 갑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다 필요 없다고, 오지 말라고, 어서 가라고, 매정하게 등을 보입니다. 시인은 가슴 한켠이 먹먹해집니다. 아니 그런 아버지가 서운하기까지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뒤늦게야 깨닫습니다. 먼 길 가는 아비를 철없는 아들이 행여 뒤따라올까봐 이승의 정을 끊으려 아버지가 그랬다는 걸 말입니다. 그게 아버지만의 깊고 너른 사랑이자 아들을 향한 마지막 사랑이었다는 걸 말입니다.

그런 아버지도 한때는 누군가의 아들이었듯이 지금의 아들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 있겠지요.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광렬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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