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의 또 다른 이야기> 항상 주민들의 ‘진실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심 없는 정직성’이 바로 ‘민주적 리더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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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꽃도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나름대로 온 힘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역주민들이 이 지역사회의 중심입니다. / 사진 = pixabay.com ⓒ 제주의소리

  자세히 들여다보면
  담장 밑에 피어 있는 작은 냉이꽃 (바쇼오)

사람이 워낙 단순해서 그런지, 저는 그 단출함에 마음이 끌리고, 그 단출함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주 작아서 도무지 있는 듯 만 듯한데, 자세히 보면 담장 밑에 숨죽이고 있는 작은 꽃…. 그 꽃은 그러나 온 힘을 다하여 스스로를 피워 올리고 있습니다.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렇습니다. 화려한 꽃도, 이름 없는 작은 들꽃도 모두 이 세상의 중심입니다. 그 속에 우주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그걸 거체전진(擧體全眞)으로 표현합니다. 스스로의 전존재를 들어 그것이 진리임을 파지 한다는…. 그 밑바탕에 진리가 맥맥히 관철되고 있습니다.

꽃 한 송이의 신비가 그렇거든, 사람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나 꽃’입니다. 그 속에 시대가 있고, 우리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 진리의 담지자가 바로 ‘지역주민’입니다. 작은 꽃이 그러하듯 ‘지역주민’ 역시 온 힘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이 지역사회의 중심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주민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입니다.

한 지역사회가 잘 되려면, 지역주민들이 신명나야 합니다. 그 신명이 바로 사회적 에너지입니다.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항시 ‘목적시 되는 존재’일 때만 신명을 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을 제주발전의 중심에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그건 선언적 수사(修辭)가 아닌, 실천의 문제입니다.

주민들의 목소리는 너무 즉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심지어 극히 단편적이어서 산만하다고까지 말합니다. 입맛에 맞는 이른바 ‘전문가’들의 정제된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그런 말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리가 안됐을 뿐이지, 그건 ‘진실의 말’입니다. 역사의식과 생활감정에서 우러난 진솔한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민들의 생활 속의 역사의식과 일상적 습관이 갖는 의미는 심원하고 결정적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리 거창하지 않습니다.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아주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 않는, 그리하여 그것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 제주발전의 의미와 보람은 그곳에서 구현됩니다. 주민의 일상이 바로 초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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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초의 정치학...풀은 지역주민입니다. 바람이 불면 풀은 눕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일어서기 위한 저항입니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납니다. ⓒ 제주의소리DB

지역주민들은 민초(民草)입니다. 가장 약하고, 낮은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습니다. 결코 수동적이지도 않습니다. 물론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습니다.(草上之風必偃) 그러나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섭니다.(誰知風中草復立) 『논어』의 가르침입니다. 김수영의 ‘풀’도 바로 그걸 노래합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풀은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그래서 김수영의 ‘풀’은 ‘자유를 향한 의지와 압제 사이의 변증법’입니다. 어쩌면 ‘민초는 결코 부정돼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 그의 시적 구상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詩)에 관한 한 거의 백지상태인 제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주제넘습니다.

우리가 참을 수 없는 건 ‘무엇이 주민들에게 좋은 것인지’를 관료와 이른바 전문가들만이 잘 알고 있다는 그들의 오만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막무가내로 관철하려는 억지입니다. 그게 항상 사람 속을 긁어 놓습니다. 물론 그것에 대해서는 반론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지역주민들은 ‘목적시 되는 존재’이지, 일방적인 설득대상은 아닙니다. 주민들의 목소리를 공연히 외면하고, 무조건 설득하려고만 드는 행태야말로 세상의 모든 다툼의 원인(遠因)입니다. 우리 고장의 ‘개발 잡음’을 되돌아보면, 그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무엇이 주민들에게 좋은 것인지’를 주민 스스로 판단케 해야 합니다. 지역주민 모두가 이해관계에 따라 지역문제를 공유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종래 관료나 이른바 전문가 몇몇에 의해 결정되던 문제들이 다양한 주체들 사이의 공개적인 대화에 의해 결정토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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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홍 언론인.
‘진실의 말’이 끊어지면, ‘참다운 관계’도 끊어집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의 병인(病因)도 따지고 보면, 주민과 관(官) 사이에 ‘진실의 말’이 사라지고 ‘참다운 관계’가 끊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얄팍한 술수’는 통하지 않습니다. 논리를 구사하는 솜씨와 상상력에 관계된 문제는 더더욱 아닙니다. 항상 낮은 곳에 임하여, 주민들의 ‘진실의 말’을 듣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심 없는 정직성’! 그게 바로 우리가 요구하는 ‘민주적 리더십’입니다. 그러나 아쉽습니다. 아직도 그런 ‘민주적 리더십’이 보이지 않으니…. / 강정홍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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