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발소리를 들어라
거미의 발소리를 들어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눈사람 레코드>(52) 강의 노래 / 조동진

noname01.jpg
▲ 강의 노래-penicillin(2015)

도시에서 살다가 귀농을 해 시골에 새로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젊은 부부. 아기가 생기지 않아 점집에 가니까 무당이 당장 이사를 하라 했다고 한다. 그 집에서 살면 평생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도시는 집값이 비싸고 귀농의 뜻도 있었기에 그들이 찾은 땅은 애월읍 상가리. 부부는 도망치듯 부랴부랴 이사를 했다. 조립식 건물이긴 하지만 하얀색 페인트를 칠하니 초원의 집 느낌이 난다. 마당에는 잔디도 깔고 고기 굽는 도구도 마련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소박하고 여유 있게 사는 건 좋은데 한 가지 안 좋은 것은 온갖 벌레들이 집에 들어오는 것이다. 밤에는 불빛을 보고 날벌레들이 모여들어서 불 켜기를 주저하게 된다는 것. 한 번은 지네가 다리를 타고 오른 적도 있다고 한다. 어느 날엔 밤에 잠을 자려고 하는데 다다닥다다닥 발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그 소리는 천장 가까운 벽에서 나는 소리였다. 두려운 마음에 차마 불을 켜지 못하는데 부부가 서로 확인하라며 떠밀다가 남편이 겨우 불을 켜고 아내는 이불을 뒤집어썼는데 발소리의 정체는 놀랍게도 거미였다. 거미가 얼마나 컸으면 발소리가 다 들릴 정도일까. 또 그만큼 조용한 시골의 밤이겠지. 음감회(음악감상회)를 하자고 모인 몇 사람은 각자가 준비한 CD를 꺼냈다. 남편은 마당에서 고기를 굽다가 반 이상을 태웠다. 하마터면 불이 나서 집을 다 태울 뻔 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발소리가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던 아내가 추천한 것은 푸른곰팡이(penicillin)에서 제작한 옴니버스 음반이다. 하나음악을 잇는 푸른곰팡이이기에 조동익, 조동희, 장필순, 이규호, 고찬용, 오소영, 한동준, 정원영 등이 참여했다. 그 중에서도 하나음악의 정신적 지주 조동진. 그의 노래 ‘강의 노래’는 거미의 발소리처럼 맑고 경이롭다. 14년만에 돌아온, 우리 음악계의 큰 거미 중 한 마리다. 이른바 조동진 사단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강의 노래를 듣는 것은 거미의 발소리를 듣는 것이다./현택훈(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