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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島詩樂 산책](11) 어머니와 딸기 / 양전형

어머니 가시고 이듬해 텃밭에 딸기를 다시 심었어요 어머니 대신 아내가 고랑 치고 비닐 덮고
완연한 봄기운에 예전처럼 꽃망울이 하얗게 밭 가득 터지더니 탱글탱글한 눈망울 가진 애딸기들 되어 밭이랑을 뒹굴며 놀다가 그 중 하나가 어머니는 왜 안 오시느냐고 아내에게 물었어요
어머니는 이렇게 저렇게 아프시다가 지난해 하늘나라에 가셔서 다시는 못 오신다고 아내가 대답하니까 글쎄,
애딸기들 눈시울이 갑자기 붉어지기 시작했어요. 다른 애딸기들도 일제히 붉어지기 시작했어요. 어머니가 계실 때는 따스하게 와 닿는 어머니의 그윽한 눈빛이 부끄러운 듯 홍조를 띠며 익어가더니. / 어머니와 딸기 - 양전형

양전형 = 시집으로 『꽃도 웁니다』, 『허천바레당 무더진다』, 『동사형 그리움』등이 있음. 제12회 한국자유시인상, 제5회 제주문학상, 제3회 열린문학상 수상.

딸기가 왜 붉은 빛을 띠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해마다 텃밭에 딸기를 심던 시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 대신 아들과 며느리가 고랑 치고 비닐 덮고 딸기를 심어 정성으로 키웠지요.
탱글탱글한 눈망울을 가진 애딸기 하나가 며느리에게 묻습니다. 어머니는 왜 안 오시냐고.
어머니는 아프시다가 지난 해 하늘나라로 가셔서 이젠 못 오신다 하니, 애딸기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래서 딸기는 붉은 색이 되었나 봅니다.
정작으로 눈시울이 붉어진 건, 어머니 대신 딸기를 심고 키우는 아들과 며느리였겠지요. 딸기밭을 보니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 것이겠지요.
딸기가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어머니 생각이 더욱 간절한 오월입니다.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양전형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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