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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島詩樂 산책](12) 어머니와 문자메세지/ 한희정

칠순 넘어 배운 문자 ‘어떵덜 살암시니’
초성이 받침 되고 낱자가 떠다녀도
새벽녘 알람소리보다 먼저 나를 깨우네

한세상 좋다 한들 토란잎에 이슬이라며
옛 친구 생각날 때 ‘바위고개’ 흥얼거리던,
후렴구 반복하시네 중복문자 또 오네

‘별일 어수다’ 마지못해 보낸 답장에
첫 진통 소식 듣고 한달음에 달려오듯
갈급히 ‘게민 되었쪄’ 내리사랑 크시네

삭제될까 조심조심 손놀림 더딘 탓에
대출광고 문자마저 재산인 듯 쌓여 가는
어머니 여든 해 삶이 수신함을 채우네
 / 어머니와 문자메세지 - 한희정

한희정 = 『시조21』로 등단. 시집으로 『굿모닝 강아지풀』, 『꽃을 줍는 13월』 등이 있음.

‘치사랑’이 아무리 크고 깊다 한들 ‘내리사랑’만 하겠습니까?

어미 눈에 비친 자식은 나이에 상관없이 불면 꺼질 듯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철딱서니 없는 여린 것이겠지요.

문자를 배운 어머니가 새벽녘 딸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어떵덜 살암시니’

어머니의 문자를 받은 딸은 문자로 답장을 보냅니다. 그것도 짧고 명료하게, ‘별일 어수다’

중요한 것은, 수를 놓듯 ‘어떵덜 살암시니’를 문자로 치는 어머니의 마음과 ‘별일 어수다’ 하고 마지못해 답하는 딸의 마음입니다. 그 띄엄띄엄과 재빠름의 간극입니다.

오늘은 어머니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 그런 날이었으면 합니다. 그것도 문자가 아니라 육성으로 말입니다. 직접 찾아뵈면 더욱 좋겠지요.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한희정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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