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욱의 호남 여행기] (1) 완도행 뱃길, 장한철과 장보고를 만나다

필자는 제주노회 동남시찰 장로회가 지난 5월 15일부터 16일 이틀 동안 진행한 전남 남해안(완도-여수-순천) 관광수련회에 참가했다. 완도는 16년 전 신혼여행에 다녀 온 것이 마지막이고, 여수와 순천은 언제 다녀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지경이다. 올 한해 호남 땅을 두루 밟아보기로 마음을 먹고 있던 터에 주어진 기회라, 짧지만 보람찬 여행이었다.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신 김홍주 회장님(의귀교회), 고성숙 총무님(남원교회)이하 시찰회 장로님들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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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가 짙게 낀 날, 완도 행 페리에 몸을 실었다.


시골 생활이 다 좋은데 육지 나들이를 위해 공항이나 부두를 드나들 때 번거로운 게 하나의 흠이다. 요즘은 제주시내 교통 상황이 워낙 혼잡해서 시내에 진입하고도 적지 않은 시간을 도로 위에서 허비해야 한다. 그래서 완도 행 아침 뱃시간에 맞춰 제주항에 당도하려고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출항 한 시간 전에 제주항 6부두에 모두 모였다. 탑승하는 과정에서 신분증 검사가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외국인들이 불법으로 밀입국하는 횟수가 잦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행 38명이 함께 머무를 공간으로 2등 객실 한 칸이 주어졌다. 배는 제 시간에 출항했고, 바다는 더할 나위 없이 잔잔했다. 다만, 바다에 안개가 짙게 깔려 있어서 바다를 시원스레 구경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예전에 비해 훨씬 철저해진 승천절차와 안전관리

배가 출항하지마자 비상시 탈출 요령이 방송되었다. 그리고 승무원이 객실을 일일이 돌면서 구명조끼 착용 방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세월호 사태 이후 선사들이 안전에 대해 신경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어린 학생들과 그 가족들이 당한 일이 떠올라 여행 시작부터 마음이 무거워졌다.

교인들이 모이면 예배가 이뤄진다. 같은 교인들끼리 여객선 객실 한 칸을 차지했으니 주변의 눈치도 살필 필요가 없어졌다. 38명이 부르는 찬송 소리가 객실 밖으로 퍼져 나갔는지, 승무원이 와서 주의를 줬다. 마치 개그콘서트에서 김기리가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고 말하던 장면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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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도 동남쪽에 있는 청산도가 안개에 싸여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시대 제주 선비 장한철을 태운 배가 풍랑을 만나 이 섬에 좌초했다. 일행 중 다수가 목숨을 잃었는데, 섬사람들의 극진한 정성으로 몇 사람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임원진 소개가 끝나고,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다보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났다. 객실 창밖으로 안개 낀 바다 위에 큰 섬이 어슴푸레 보인다. 안개는 바다 위에서 섬 중턱까지 차올라 섬은 그 형태만 겨우 드러내 보일 뿐이다.

240여 년 전 겨울, 제주 선비 장한철과 일행이 탄 배는 제주에서 전남 해안을 향하던 중 관탈섬 주변에서 풍랑을 만나 오키나와 근처까지 떠내려갔다. 그들은 베트남 상인들의 원한으로 돛도 없는 배에 실려 바다 가운데 내버려졌는데, 바람과 파도에 휩쓸리는 위험 끝에 청산도에 당도 했다.

장한철과 장보고를 만나는 뱃길

애초 제주에서 함께 승선했던 일행 29명 가운데, 청산도에 무사히 도착한 사람은 10명이었다. 그나마 그 10명 중 2명은 청산도에 상륙한 후 절벽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생존자 8명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청산도 주민들의 지극한 돌봄 때문이었다. 29명 중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 가파른 바위섬이고, 생존자들의 목숨을 구한 것은 섬사람들의 정성이라니 애증이 교차하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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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도항에 도착했다.

배가 소안도와 청산도 사이를 지나는 것으로 완도 앞에 당도했음을 알 수 있다. 해무 자욱한 바다 너머에 완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배가 항구에 들어서자 안개는 감쪽같이 사라졌고, 우린 5월의 완도를 선명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완도는 1200년 전 장보고 대사가 희망을 잃어버린 자들을 모아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새로운 이상 사회를 이루고자 했던 터전이다. 완도는 신라, 산동반도, 일본 하카다, 중국 동남부를 연결하는 요충지에 해당된다. 주변에 섬들이 많아 보조기지를 많이 만들 수도 있었다. 신라와 당의 공격을 받고 멸망한 옛 백제의 유민들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는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서해안에 출몰하던 해적들을 모두 소탕하여, 백성들을 인신매매의 공포에서 해방시켰다. 그리고 이후 당과 일본의 무역 등을 독점하면서 해상왕국이라 부를 만큼의 세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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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 둘러싸인 여수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도시다.
완도항에 도착하니 관광버스 한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일정 때문에 일행은 버스를 타고 여수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돌산공원에 올랐는데,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호수처럼 평온하고 고요한 게 이름(麗水, 곱고 우아한 물)처럼 아름다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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