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한라산 허리] (2) 상가리관광지, 중산간 보전의지 시금석

 해발 200~600m 지역인 ‘중산간’은 제주도의 해안 저지대와 한라산을 연결하는 생태축 즉, 허리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이다. 또한 제주만이 갖고 있는 숲, ‘곶자왈’과 지하수 충전지대인 ‘뱅듸’가 드넓게 자리잡고 있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하지만, 중산간은 그동안 대규모 개발로 끊임없이 파괴돼왔고 최근에는 중국 투기자본의 진입으로 더욱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실제로 현재 영업하고 있는 29개의 골프장 가운데 26곳이 중산간에 밀집해있다. 최근에는 골프장뿐 아니라 백통신원리조트, 차이나비욘드힐관광단지, 제주헬스케어타운 등 대규모 숙박시설이 중국자본의 주도로 우후죽순처럼 건설되고 있다.

특히, 최근 환경영향평가심의를 통과한 상가리 관광지는 해발 600미터에 근접한 중산간 최고 높이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한라산국립공원 바로 코밑에 위치해있다. 이 지역은 상가리 마을주민이 선대에서부터 사용하던 마을공동목장이다. 이처럼 제주의 중산간 지대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는 시점에서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인 제주환경운동연합 양수남 대안사회팀장이 6차례에 걸쳐 그동안 중산간 개발의 문제점을 돌아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연재순서>
1 - 대규모 관광개발로 무너지는 제주의 중산간
2 - 상가리 마을공동목장, 한라산 코앞에 들이닥친 관광지 개발
3 - 신화가 아닌 카지노타운으로 전락한 제주신화역사공원
4 - 벵듸, 또 하나의 제주의 보물
5 - 중산간 보전의 대안을 모색한다 1
6 - 중산간 보전의 대안을 모색한다 2

제주도 청정축산업과 목축문화의 기반, 마을공동목장
 
서울에 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제주산 돼지고기 식당이다. 청정한 제주의 이미지를 활용한 전형적인 마케팅 기법이다. 그만큼 제주산 말, 소, 돼지는 청정하다는 인식이 국민들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주의 깨끗한 초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외인들의 경우 제주의 초록색 초지에서 자라고 있는 마소가 강력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또한 초지대와 그곳에서 풀을 뜯는 마소의 풍경은 제주도의 중요한 경관자원이기도 하다.

이처럼 제주의 마소가 있는 공간은 제주도 전역에 퍼져있는 마을공동목장이다. 즉, 마을주민들이 일종의 ‘협동조합’ 형태로 마소를 관리하는 공동목장인 셈이다. 마을공동목장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부터다. 그리고 마을공동목장의 시원은 700여년 전,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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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꼬메 오름 마을공동목장. 마을공동목장은 제주도 청정축산업의 기반이다. ⓒ양수남
기마병으로 거대한 원제국을 건설한 몽고. 고려 또한 몽고의 지배를 받던 시절, 제주도는 일본과 남송을 정벌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또한 몽고의 초원과 비슷한 제주의 자연환경은 원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말을 키우는데 있어서 매우 매력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고려 충렬왕 때 원제국의 제주도 직할통치기관인 탐라총관부에서 몽고말 160필을 성산읍 수산평에 방목하면서 제주 목마장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목마장은 제주 전 지역으로 확산된다. 제주에 설치했던 목마장은 그 위상이 원제국 14개 목마장 중의 하나일 정도로 경제적․군사적으로 중요했으며, 목장 경영을 위하여 몽고에서 목호(牧胡)가 대거 파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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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는 말을 키우는데 최적의 장소이다. ⓒ양수남

원제국이 없어지고 난 이후에도 목마장은 계속 유지된다. 조선시대 때, 국가에서 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1429년, 세종 때 중산간 초원 지대에 잣성을 새로 쌓거나 정비하고 그곳 120여 리에 10개의 국영목장을 조성하였다. 이것을 ‘10소장’이라 부른다. 즉, 제주도 중산간 전역을 10개 구역으로 분할하여 국가에서 직접 말을 관리한 것이다. 이때부터 제주는 대표적인 말 생산지의 위상을 확고히 하게 된다.

이후,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제는 목야지 정비사업을 시작하면서 마을단위로 공동목장조합을 설립하여 목장을 운영하도록 한다. 즉, 국가가 관리하던 목장에서 마을이 운영하는 목장지대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처럼, 제주의 목축은 역사적으로 매우 긴 전통을 갖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목축문화도 다채롭게 전해오고 있다. 바다에 ‘해녀’가 있다면 중산간에는 ‘테우리’가 있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목축문화는 제주의 중요한 문화자산이다.

대표적인 제주 목축전통은 방앳불 놓기와 윤환방목, 낙인, 백중제, 상산 방목, 바령밭, 번쉐, 멤쉐, 밭 고르치기, 말 모는 소리, 잣성 등이 있다.

# 골프장과 리조트에 사라지는 마을 공동목장

마을공동목장이 사라진다는 것은 제주의 오랜 전통문화유산인 목축문화가 사라짐을 의미하며 제주인의 정체성 한 부분이 사라져감을 의미한다. 더욱이, 지역경제의 중요한 축인 청정축산업의 몰락을 뜻한다. 제주도 목장사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강만익 박사와 제주도문화관광해설사회의 연구조사에 의하면 제주도내 공동목장 116곳 중에 현재 남아있는 곳은 불과 65곳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50여곳은 이미 소멸돼 방치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상태다.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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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별오름 앞 어림비(뱅듸)를 밀고 들어선 에버리스 골프장. ⓒ양수남

마소가 마음껏 풀을 뜯던 드넓은 초원을 없애고 강력한 농약으로 관리해야하는 서양산 잔디가 깔린 골프장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마을소유의 공동목장이 도외 대자본이나 외국계 자본에 매각되면서 목장조합이 해산되는 사례가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도내 한 일간지가 연재한 [제주의 마을공동목장사]에 따르면 부동산 투자 열풍으로 마을공동목장이 매각되는 사례가 점차 일반화되면서 목축업이 가장 번성했던 지역의 하나인 한림읍의 공동목장은 현재 단 2곳만 남은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매각되는 마을목장 대부분은 골프장이나 리조트 등 대규모 관광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마을의 공동재산이면서 제주도의 공공재산이기도 한 마을공동목장이 사기업에 무더기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상가리마을공동목장도 그 중 하나이다. 
 
# 위기에 처한 초지대 생태계의 보고, 상가리마을공동목장

제주시내에서 한라산방면으로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제1산록도로변의 오름에 올라서면 제주도의 북쪽방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주시 도심과 그 윗쪽으로는 중산간의 숲과 초지대가 펼쳐져 있는 풍경이 들어온다. 오름의 뒤로는 한라산의 울창한 숲이 시작된다. 

즉, 이쪽 지역은 한라산과 제주도심의 중간지대로서 아래와 위를 잇는 제주도의 생태축인 동시에 허리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바리메오름에 올라서도 그렇다. 승려들의 밥그릇으로 쓰이는 ‘바리’를 엎어놓은 모양같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이 오름에 올라서면 제주도 북부와 서부지역 그리고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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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리메오름에서 바라본 상가관광지 개발사업 예정지. ⓒ양수남
 
이 바리메오름 바로 아래에 상가리마을공동목장이 자리잡고 있다. 제주도심하고는 가깝지만 해발 500m가 넘는, 중산간에서도 가장 높은 지대 중 하나다. 한라산국립공원 코앞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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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가관광지 사업지구 전경. ⓒ양수남

이 목장은 마소가 먹는 다양한 풀이 많고, 인근 오름들이 한라산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막아주고 해발이 높아 진드기가 꼬이지 않아 마소를 키우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다. 그래서 인근마을인 소길리, 납읍리, 장전리, 신엄리, 구엄리, 중엄리의 소들도 이 목장에서 방목했다고 한다. 

게다가 공동목장 내 어음천에는 ‘오리수물’이라고 부르는 소(沼)가 있어 멀리 가지 않고 마소에게 물을 먹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그래서 소가 가장 많이 방목됐을 때는 700~800두 정도 있었다고 전해지며 현재도 130여두의 마소를 방목하고 있다. 축산업의 보고였던 셈이다. 지역경제에 기여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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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기뿔소똥구리(왼쪽-수컷,오른쪽-암컷). ⓒ양수남

지역주민들만이 마을공동목장의 수혜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다른 생명들도 그러했다. 이곳은 소들이 인공 사료 대신 초지대의 깨끗한 풀을 먹고 똥을 싼 곳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야생동식물 Ⅱ급으로 보호받고 있는 애기뿔소똥구리의 집단서식지이다. 

오랜 세월동안 지역주민은 마소를 키우며 삶을 영위할 수 있었고 동시에 뭇생명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초지대 생태계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이곳은 인간과 타생명이 공존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일’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평화롭던 상가리마을공동목장에도 큰 위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재일동포 자본인 ‘청봉인베스트먼트’에서 공동목장일대 47만9342㎡(14만5000평) 내에 휴양문화시설, 운동오락시설, 휴양콘도미니엄 등을 주된 내용으로하는 상가리관광지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상가리마을공동목장은 마을 주민들이 조선시대부터 관리해왔지만 부지의 소유권은 제주도에 있다는 점이다. 실질적으로 마을주민들이 마소를 키우며 초지생태계를 유지해오던 실소유주라고 볼 수 있지만 서류상으로는 제주도 소유의 공유지인 것이다. 

사실상, 주민들이 이 마을공동목장을 수백년동안 관리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초지생태계가 유지될 수 없었다. 주민들의 땀으로 이곳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주민들은 마을공동목장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하지만 제주도는 이 공유지를 업체에 매각하겠다는 입장이다. 

마을공동목장 대신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을주민들은 상가리마을공동목장 소유권 환원 청구 소송을 제주지방법원에 제출했다. 현재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 원희룡 지사의 중산간보전 선언을 무시한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

“청정자연은 제주 공동체의 중요한 자원이자, 미래 세대에 넘겨줘야할 소중한 공공자산입니다. 무차별적 개발은 제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새로운 성장은 외래 자본에 땅만 빌려주고 투자효과가 제주 밖으로 빠져나가는 외형적 성장이 아닙니다. 제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투기자본과 난개발에는 엄격하게 대응하겠습니다.”

위의 발언은 누가 한 것일까? 환경단체가 낸 성명이 아니다. 바로 원희룡 지사가 2014년 도지사 취임사에서 한 말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는다.

“어머니의 땅, 제 삶의 근본이자 꿈이 시작된 이 땅에서, 도지사의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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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3월17일 원희룡 지사가 관덕정에서 출마선언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DB

그만큼 원희룡 지사의 환경보전 의지는 강했고 특히, 산록도로 위쪽 중산간 개발은 엄격하게 제한하겠다고 선언했다. 중산간 개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2015년 4월17일 열린 상가리관광지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가 원희룡 지사의 선언을 정면 위배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상가리 관광지 사업은 민감하고도 중요했기에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에서는 주민협의 부족, 입지 부적정성 등의 이유로 두 차례나 재심의 결정을 내렸었다.(현재 환경영향평가심의는 ‘부동의’가 없고 ‘재심의’ 권한만 있는 기형적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재심의를 2번이나 내리며 문제점을 지적했던 전임 7기 환경영향평가심의의원들과는 달리 올해 새로 구성된 8기 환경영향평가심의원회는 전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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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환경영향평가심의회 심의 모습. ⓒ제주의소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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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가리관광지 개발에 대해 상가리 주민들이 반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DB
 
더욱이, 환경보전 담당 주무 부서인 환경보전국의 간부가 나와서 심의위원들에게 노골적인 통과협조를 요청한 것은 월권이었다. 결국, 4월17일 상가리관광지 조성사업은 환경영향평가심의를 조건부 통과했다. 

하지만 이날 벌어진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의 여러 문제점 때문에 논란은 계속됐다. 여론이 악화되자 제주도청 관계자는 상가리관광단지는 원희룡 지사가 선언한 중산간 보전 가이드라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답변하면서 더욱 화를 키웠다. 

결국, 원희룡 지사가 해당 발언의 간부를 질책하고 안건을 일단 도의회에 넘기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소강상태에 접어든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보완의 의미로써 재협의를 하겠다는 것이 아닌 만큼 언제든지 도의회로 안건을 넘길 가능성은 시점의 문제일 뿐이다. 
  
상가리관광지 논란은 이미 일개 관광사업의 의미를 뛰어넘은 상태다. 원희룡 지사의 중산간 보전의지를 가늠할 시금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논란은 앞으로 제주도의 개발과 환경정책 방향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마을주민들이 선대부터 수백년동안 운영해 온 주민들의 삶의 젖줄이자 지역경제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공공재산인 마을공동목장을 사기업에 매각하여 관광단지로 조성하는 방향이 과연 맞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그 답변은 위의 원희룡 지사의 2014년 도지사 취임사에 나와 있다. 결국, 원희룡 지사의 결단만이 이 문제의 해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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