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룡 작가, 제주 불기도서관서 '글쓰기' 강연...“자주 쓰는 표현 단단하게 다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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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제주 불기도서관 특강에 나선 이강룡 작가. ⓒ 제주의소리

[기사수정=5일 08:00]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시 확인해볼 것, 특종.속보 경쟁에 매몰되지 말 것, 한가지 사건을 몇 년을 주기로 꾸준히 취재할 것. 언론인 출신 글쓰기 작가가 현직 기자들에게 건넨 조언은 간단명료했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가 주는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제주치과의사신협(이사장 신용래)은 3일 오후 7시 불기도서관에서 이강룡 작가를 초청해 '좋은 문장, 좋은 기사'를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한겨레신문 온라인 뉴스 기획자였던 이 작가는 그 동안의 경험과 나름대로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좋은 글의 조건, 실무에 필요한 문법 지식, 양질의 기사 작성법 등에 대해 생생한 사례를 들어 실전 팁을 제공했다. 

그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만원사례’(滿員謝禮), ‘묘령’(妙齡), ‘재원’(才媛) 등을 흔히 기자들이 잘못쓰기 쉬운 단어의 대표적 사례로 소개했다. ‘만원사례’는 만원을 이루게 해준데 대한 감사를 뜻하지만 단지 ‘만원’과 같은 의미로, 묘령은 ‘꽃다운 나이의 여성’을 말하지만 마치 ‘미스테리한 인물’ 정도의 의미로, '재주가 뛰어난 젊은여자'를 뜻하는 ‘재원’은 여성에게 한정된 말이지만 남성에게 사용되는 것처럼 오용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단어들이 실제 기사에서 잘못 사용된 사례들을 끄집어냈다.

그는 “보통 기자들은 자신이 모든 걸 다 아는 것으로 착각한다”며 “평소 당연하게 안다고 여기는 것도 꼭 한 번은 (사전을 통해 정확한 의미를)찾아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새로운 표현을 많이 익히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쓰는 표현을 단단하게 만드는 게 바람직한 자세”라며 “이미 자주 쓰는 말은 앞으로도 자주 쓰게 된다”고 강조했다.

하나의 사안을 깊이 있게, 지속적으로 다루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최초'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는 충고도 곁들였다. “글쓰기에서 중요한 건 최초가 아니라 최대”라며 “다른 기자가 좋은 주제로 글을 썼다고 하면, 더 파고들어서 풍부하게 쓰면 그게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증기기관의 선구자로 불리는 제임스 와트를 예로 들어 “그 이전에 증기기관을 고안한 사람은 많았지만, 와트는 그 잠재력에 눈을 떠서 역사에 남았다”며 “증기기관을 무료로 보급하되 로열티를 얻는 방식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게 최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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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제주 불기도서관 특강에 나선 이강룡 작가. ⓒ 제주의소리

단발성 ‘특종’에 매달리지 말라는 조언도 나왔다.

그는 “평소 사람들이 뻔하게 썼던 것들을 더 깊게 파고들면 좋은 기사가 나온다”며 “예전에 벌어졌던 사건을 다시 취재하는 것, 소위 애프터서비스를 하는 것. 좋은 언론사들은 그런 기획이 서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부분의 언론사는 사건을 1차적으로 보도하는데서 끝나지만, 좋은 언론사는 물고 늘어진다”며 “처음썼던 기사를 1년 뒤에 다시 보완하고, 다음 해 다시 보완하는 식으로 차츰차츰 자기가 썼던 글에 A/S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강조한 것은 ‘맥락’이었다. 비단 기사문 작성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글쓰기에 관련된 내용이다.

그는 “우리는 보통 ‘실재’의 모습은 완벽한데 이것을 글로 쓰거나 이론을 만들 때 미처 다 담지못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며 “거꾸로, 진실은 희미하고 뿌옇지만 그것을 관찰해 기사나 글로 쓰면 매끄럽다”고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이어 “실재의 모습은 흐릿한데 기자들이 만드는 건 정연하다”면서 다만 이 과정에서 “어쨌든 정보의 오류를 겪지 않나. 원래 맥락을 발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기자들은 그 원래 맥락에 충실히 접근하려고 한다. 그 태도를 명심하는 게 글쓰기에서 중요하다”고 조언을 건넸다.

이번 강의를 주관한 불기도서관은 2012년 10월 제주치과의사신협 조합원들이 만든 인문·고전 전문도서관으로 4000여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매달 저명한 인문학자를 초청해 다양한 분야에서 강의를 진행하는 등 회원과 제주도민들의 인문학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도서관의 이름 ‘불기(不器)’는, ‘특정한 것을 담는 그릇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논어’의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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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제주 불기도서관 특강에 나선 이강룡 작가. ⓒ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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