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사과 약속에서 참배에 이르기까지
2000년 후보 당시 공약…탄핵·경호문제로 지연

제주4.3위령제 공식행사인 봉행제 직전 "노무현 대통령이 도착하셨습니다"란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가 나오면서 1만여명의 유족과 도민이 운집한 4.3평화공원에는 벅찬 감동과 회한이 몰아쳤다.

제주4.3이 발발한지 58년. 그 오랜 세월동안 4.3유족은 형제와 부모, 친척이 아무런 영문도 모든 채 군·경의 총칼에 숨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억울한 죽음을 토해내기는 커녕 자칫 '빨갱이'로 몰리지나 않을까 가슴조려 왔던 인내의 세월, 죽어도 죽었음을 말하지 못하고, 살아 있어도 죽은 이나 마찬가지였던 제주의 4.3.

음지에 있던 4.3이 양지로 옮겨온 것은 1987년 6월 민주화항쟁과 궤를 같이했다. 87년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그동안 숨죽여 일해왔던 4.3진상규명 노력은 수면위로 떠올랐고 그 이후 10여년에 걸친 진상규명 노력과 특별법 제정운동으로 마침내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 의해 2000년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오늘의 물꼬를 텄다.

대통령 후보시절 섯알오름 방문, 국가권력 잘못 사과·도민명예 회복 약속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4.3에 대해 공식사과 의지를 공식표명은 한 것은 지난 2002년 12월.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당시였다.

대선 유세를 위해 제주에 온 노무현 후보는 대선 후보로는 처음으로 모슬포 섯알오름 학살터를 찾은 자리에서 "현재 진행 중인 진상조사 결과에 당시 국가권력이 잘못한 점이 드러난다면 4.3 영령과 제주도민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이고 사과할 것이고, 대통령이 되면 기필코 제주도민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고 도민들에게 약속했다.

그해 12월 대선에 당선된 노 대통령은 그동안 수 차례 공·사석에서 제주4.3평화공원 참배를 이야기했으나 번번히 미뤄져 왔다.

4.3 55주년을 목전에 둔 2003년 3월29일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이 작성한 '4.3진상조사보고서'를 일부 수정해 심의의결하면서 노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은 현실화되는 것으로 보였으나 당시 4.3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고건 총리가 진상조사보고서 확정을 유보시키고 "진상조사보고서가 유보됐으니 위령제 방문과 사과를 6개월 후로 미루는 게 좋겠다"고 청와대에 보고했고 청와대는 결국 이를 받아들여 대통령의 첫 번째 방문이 무산됐다. 이 때는 고건 총리가 참석했고 고 총리는 4.3단체와 시민사회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아야 했다. .

2003년 공식사과 불구하고 대통령 탄핵·경호 문제로 몇 차례 평화공원 참배 무산

숱한 논란 끝에 4.3진상조사보고서는 그해 10월 15일 확정됐고 노무현 대통령은 당초 약속대로 10월31일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한 후 라마다프라자 제주호텔 오찬장에서 4.3유족을 비롯한 400여명의 도민이 참석한 가운데 55년전 발생한 4.3사건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 공식사과했다.

이 때문에 도민들은 2004년 56주년 4.3합동위령제 참석을 기대했으나 그해 3월11일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에 의해 사상 최초로 ‘탄핵’을 당하면서 두 번째 기대도 무너지고 말았다.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이 재논의된 것은 2005년 1월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 선포하는 자리에서 이성찬 제주4.3유족회장이 57주년 4.3 위령제에 참석해 줄 것을 건의한데 대해 “일단 일정이나 여러 가지 검토를 해 보고 참석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고려를 해 보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최근 방송 뉴스를 보니까 독일의 슈뢰더 수상이 아우슈비츠에 찾아가서 다시 사과하는 모습을 봤다. 60년 전의 일을 다시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며 4.3위령제 참석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줬다.

이 당시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을 적극적으로 검토했고 실무팀도 제주에 내려왔으나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경호'문제 에 부딪혀 이해찬 총리가 대신 참석함으로써 또 다시 도민들을 아쉽게 했다.

올 2월 청와대에서 4.3위령제 참배 결정…극비리에 준비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의 4.3평화공원 참배 논의가 극비리에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월 중순.  그무렵 김두연 회장을 비롯한 유족회 회장단이 청와대를 방문,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을 공식 건의했고, 제주도 차원에서도 같은 건의를 했다.

대통령의 임기가 이제 2년밖에 남지 않았고 특히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제주에서는 특별한 시범도를 추진해 봤으면 좋겠다"고 밝힌 특별자치도 출범을 목전에 두면서 대통령이 4.3평화공원에 참배할 최적기라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었고 이는 내부 논의를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4.3위령제 참석의지를 확인한 청와대팀은 이 때부터 분주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3월 초부터는 제주도와 구체적인 행사일정을 놓고 협의가 시작됐으며, 하순에는 경호팀이 직접 제주에 내려와 대통령의 제주공항-제주평화공원-오찬장-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 이르는 동선과 함께 경호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통령은 마침내 3일 오전 9시40분쯤 대통령 전용기편으로 서울공항을 이륙, 50분 후인 10시30분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한 직후 청와대 경호팀들의 경호 속에 대통령 전용차에 탑승, 곧바로 58주년 4.3위령제가 열리는 제주4.3평화공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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