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위령제에서 가슴을 쓸어내린 1만 유족들

▲ 4.3평화공원 위령제단으로 향하는 노무현 대통령.
하늘도 4.3 영령들을 도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첫 참석한 제58주기 4.3위령제가 열린 4.3평화공원에는 어제 한때 내렸던 억수같은 비와 늦겨울 만큼 쌀쌀했던 날씨는 간데 없이 화창한 봄볕이 내리쬐었다.

두터운 외투를 준비했던 유족들은 입고 온 옷을 벗어 손에 들기 바빴고 마음은 이미 상생을 넘어 평화의 기운으로 뻗는 듯 표정마저 밝아 보였다.

이날 공식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유족들은 (사)제주민예총 4.3문화예술제사업단이 준비한 '초혼'과 '역사와 기억' '해원'이라는 세 마당으로 펼쳐진 식전 문화행사를 보며 58년 전 4.3의 상흔과 역사의 진리를 풀어내면서 미래로 가는 희망을 메시지를 느꼈다.

또 공식행사 중간에 상영된 '4.3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4.3영상물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날 아라중학교 강나영 양의 4.3백일장 수상작 '4월의 눈물' 낭독에 이어 위령공연으로 펼쳐진 '진혼무'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 (사)제주민예총 4.3문화기획단이 마련한 식전행사 공연.

대통령 '위령제'에 '감동'...'제주도의 새로운 문화' 강조

'분노.불신.증오 넘어....사랑.믿음.화해의 상징물' 언급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유족들의 모습과 공연 및 행사 분위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추도사에 없는 발언을 했다.

대통령은 추도사가 끝나자 "이날 행사를 지켜보면서 엄청난 고통과 분노가 시간이 흐르면서 돌이켜 볼 수 있는 역사가 되고, 역사의 마당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보면서 수십년이 흐르면 이것 또한 제주도의 새로운 하나의 문화로써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이날 위령제에 대해 강한 여운을 남겨 주목을 끌었다. .

이어 "그것이 우리 모든 국민들에게 분노와 불신과 증오가 아닌, 사랑과 믿음, 화해를 가리키는 그런 중요한 상징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됐다"며 감동을 전했다.

이날 김두연 4.3유족 회장은 주제사를 낭독하며 "국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고맙습니다"라고 크게 외치며 이날의 감동을 억누르지 못했다.

   
▲ 공연을 지켜보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 식전 문화행사 '초혼굿 꽃넋으로 살아'

▲ 이날 날씨는 어제와 다르게 햇볕 가리개를 해야할 만큼 눈이 부셨다.

'희생자는 영면...유족들에겐 희망과 용기'

▲ 이날 사회를 맡은 윤희길 KBS제주 아나운서부장.
대통령의 행사장 도착에서 배웅까지 내내 자리를 함께한 김 유족회장은 "58년 동안 영령들과 유족들이 한이 맺히고 질곡의 세월을 보냈다"며 "오늘 헌화와 분향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유족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그는 "58주년의 긴 터널을 지난 새로운 햇빛을 맞는 느낌"이라며 "이로인해 영령들은 오늘 영면하셨을 것이며 유족들에겐 희망과 용기를 주는 날이 됐을 것"이라고 대통령 참석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주제사를 통해 "저희에서 화합의 힘을 주소서"라며 아픈 역사를 딛고 밝은 미래로 나아갈 것임을 천명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각 방송사에서 중계방송을 통해 위령제 현장의 모습 속속 전하며 대통령의 참석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 헌화와 분향하고 있는 유족들.


날씨 해석?... 어제 날씨는 '왜 이제야 오시느냐'는 통한의 눈물
오늘 날씨는 '이제라도 와주셔서 고맙다'는 환영의 뜻

▲ "대통령이 와주셔서 고맙다"는 박경생 할머니.

이중흥 제주시유족회 부회장은 "오늘 날씨마저 은혜를 베풀어 준 것 같다"며 "어제의 추운 날씨는 '왜 이제야 오시느냐'는 회환의 눈물이었다면 오늘의 따스한 날씨는 '이제라도 와주셔서 고맙다'는 뜻이 담겨있는 환영의 의미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제주시 봉개동에서 온 박경생 할머니(87)는 "대통령님이 와주시니 너무도 고맙다"며 "고마움 밖에 달리 할말이 뭐가 있겠느냐"고 눈시울을 붉혔다.

4.3 때 아버지와 외할아버지를 잃었다는 홍춘자씨(71)는 "오늘 대통령님의 참석을 보니 58년 동안 억눌렸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며 그 동안 응어리진 가슴의 한을 쓸어내렸다.

▲ 유족 홍춘자씨.
대정읍 영락리에 살다 가족 모두 목숨을 잃은 문춘자 할머니(84)도 이날 "대통령이 온데서 왔다"며 "나라에서 가장 높은 분이 왔다간 것만 하더라도 더 이상 무슨 표현을 하겠느냐"고 감격해 했다.

"4.3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러왔다"는 강정웅씨(68.제주시 월평동)도 "대통령 참석을 계기로 억울하게 희생된 조상 모두가 양지바른 볕으로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6000여명 유족 멀티비전으로 대통령 참석 지켜봐'

이날 4.3평화공원을 찾은 유족들은 1만여명. 추념광장에 앉지 못한 6000여명의 유족들은 멀티비전을 통해 대통령의 헌화와 분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감격을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이날 대통령 참석으로 인해 상당수 유족들은 '왜 못들어가느냐' '우리는 유족이 아니냐"며 거칠게 항의하는 안타까운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들 유족들은 대부분 올해 위령제에 대통령 참석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이다.

이날 경호팀과 보안팀은 대통령 방문에 따른 사전 경비차원에서 탄탄한 보안검색을 벌였다. 

▲ 이날 참석한 유족들은 검색대를 통과해야만 했다.

한 유족은 "행사준비측에서 안내방송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신분확인을 한다면서 유족들을 차별하는 기준이 뭐냐"고 운영상 미흡함에 대해 볼멘소리를 냈다.

어릴적 서귀포 고아원에서 살았다는 김연옥씨(65.한림읍 협재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 남동생 등 일가 친척이 모두 돌아가셨는데 적어도 한 명은 참석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 헌화하고 있는 유족들.

日반전평화운동가 오다마꼬도 부부, 4.3생각하는 모임 '조동현씨도 '분향'

지난 2일 ‘생명꽃 피어 평화를 노래하다’란 주제로 열린 4·3  전야제에 참석한 일본 반전평화운동가 오다 마코토(74)·현순혜씨(53)부부도 재일본 '4.3을 생각하는 모임'의 조동현씨와 함께 이날 위령제를 찾았다. 오다씨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 오랫동안 반전 평화운동을 실천해온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이자 작가.

김지하 구명운동 등 한국민주화운동과도 적극적으로 연대해 온 그는 몇해전 놀이패 한라산이 서울, 일본 등에서 공연한 ‘아버지를 밟다’의 원작자로 제주에 알려졌다.

부인 현순혜씨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출신 부모를 둔 재일 한국인 화가로.국내에서 ‘내 조국은 세계입니다’란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해마다 4.3 주간에 제주를 찾는 조동현씨(도쿄거주)는 "올때마다 제주4.3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며 "하지만 여전히 4.3의 그늘에 가려 신음하고 있는 유족들이 많다"며 재일본 4.3유족에도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했다.

▲ 재일본 4.3을 생각하는 모임의 조동현씨와 일본 반전평화운동가 오다 마꼬도의 부인 현순혜씨가 위패봉안소로 향하고 있다.

"4.3인권의 나무를 어떻게 키울 지 고민해야"

'4.3평화재단' 보다 '4.3인권재단'이어야...섬사회의 '문명화' 기여 과제

이날 위령제를 지켜본 고창훈 제주대 교수는 "제주도민으로선 국내 차원의 진상규명은 대통령 참석을 계기로 매듭을 지은 것으로 봐야한다"며 "국제적으로 4.3을 어떻게,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세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제주도민과 유가족이 슬픔을 딛고 '4.3인권의 나무'를 어떻게 키워야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4.3평화재단'도 '4.3인권재단'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4.3이 한국의 통일정부와 연관지어서 1948년 당시 통일정부가 보여줬던 역사적 연계성과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며 "4.3이 한국정부의 통일에서 무엇을 가져다 줬는지를 앞으로 연구하고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특별자치도의 지향점은 3개  국의 통합연합일 수 있다"며 "남한, 북한, 제주도가 서로의 합의하에 아시아 공동체까지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를 던져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오키나와, 제주도, 하와이, 대만 등 모든 섬들이 강대국과 대륙에 의해 희생을 당해왔다. 그 희생중의 하나가 4.3"이라며 "섬 사회의 문명화에 대해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느냐가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과제를 던졌다.

   
▲ 대통령이 입장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유족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지켜보고 있다.

 

▲ 참석자와 인사를 나누는 노무현 대통령.

▲ 이날 통제로 인해 정작 (사)제주작가회의가 마련한 시화전을 볼 수 있는 유족들은 많지 않았다.
   
▲ 이날 각 방송사는 4.3위령제 현장소식을 중계방송 하느라 분주했다.
   
▲ 나란히 앉은 열린우리당 강창일, 김우남, 김재윤 국회의원.
 
▲ 행사가 끝난 후 위패봉안소로 향하는 유족들.
▲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대통령.
   

▲ 그 뒤를 김태환 제주도지사와 김두연 4.3유족회장, 경호팀이 따르고 있다.

 

▲ 행사가 끝난 후 위패봉안소로 향하는 유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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