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한라산 허리] (3) 신화역사공원, 야금야금 취지 변질...광활한 곶자왈 파괴

 해발 200~600m 지역인 ‘중산간’은 제주도의 해안 저지대와 한라산을 연결하는 생태축 즉, 허리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이다. 또한 제주만이 갖고 있는 숲, ‘곶자왈’과 지하수 충전지대인 ‘뱅듸’가 드넓게 자리잡고 있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하지만, 중산간은 그동안 대규모 개발로 끊임없이 파괴돼왔고 최근에는 중국 투기자본의 진입으로 더욱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실제로 현재 영업하고 있는 29개의 골프장 가운데 26곳이 중산간에 밀집해있다. 최근에는 골프장뿐 아니라 백통신원리조트, 차이나비욘드힐관광단지, 제주헬스케어타운 등 대규모 숙박시설이 중국자본의 주도로 우후죽순처럼 건설되고 있다.

특히, 최근 환경영향평가심의를 통과한 상가리 관광지는 해발 600미터에 근접한 중산간 최고 높이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한라산국립공원 바로 코밑에 위치해있다. 이 지역은 상가리 마을주민이 선대에서부터 사용하던 마을공동목장이다. 이처럼 제주의 중산간 지대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는 시점에서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인 제주환경운동연합 양수남 대안사회팀장이 6차례에 걸쳐 그동안 중산간 개발의 문제점을 돌아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연재순서>
1 - 대규모 관광개발로 무너지는 제주의 중산간
2 - 상가리 마을공동목장, 한라산 코앞에 들이닥친 관광지 개발
3 - 신화가 아닌 카지노타운으로 전락한 제주신화역사공원
4 - 벵듸, 또 하나의 제주의 보물
5 - 중산간 보전의 대안을 모색한다 1
6 - 중산간 보전의 대안을 모색한다 2


# 신들의 섬, 제주도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코끼리, 하마, 악어, 사자는 알아도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삵, 오소리, 너구리, 산양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동도서 중 많은 서적들이 다른 나라의 대형동물을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또한 서양산 장미는 알아도 우리나라 들꽃인 앙증맞은 쇠별꽃은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성인들도 그리스신화는 많이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신화, 그 중에서도 그리스신화에 전혀 뒤지지 않는 제주의 신화를 알거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아주 적다. 그리스신화의 제우스는 알아도 이승과 저승을 관장하는 대별왕, 소별왕은 모를 것이고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는 알아도 아름다운 농경의 신 자청비는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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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문대할망이 빠져죽었다는 신화가 있는 물장올. ⓒ양수남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알아도 바람의 신 영등대왕은 모를 것이다. 우리의 가치보다는 늘 서양 문명의 가치를 배워왔고 그에 경도돼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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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신인이 공주와 결혼했다는 건국신화가 깃든 혼인지. ⓒ양수남

그렇다. 제주는 자그마치 1만8천의 신들이 있는, 세계적으로도 드믄 ‘신들의 섬’이다. ‘천지왕 본풀이’라는 신화가 있는데 이것은 천지창조 신화다. 한반도에는 전혀 없을뿐더러 세계적으로도 흔치않은 신화인 것이다. 이른바 우주의 창조와 인간의 탄생 이야기다. 

그 다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섬의 탄생 신화와 건국 신화다. 제주섬의 탄생 신화는 ‘설문대할망신화’이고 건국신화는 ‘삼성(고·양·부)신화’다. 제주도를 창조한 설문대 할망은 옥황상제의 셋째딸이다. 설문대 할망은 어마어마한 거인으로서 흙을 몇 번 날라 만든 것이 한라산이고 흙을 나르다가 터진 치마사이로 떨어진 흙덩이가 368개의 오름이 되었다. 잠을 잘 때는 한라산이 베개였고 성산일출봉은 빨래 바구니였다.

‘삼성신화’는 고·양·부(高·梁·夫) 3신인(神人)이 땅에서 솟아나 제주에서 처음으로 살게 되었고 바다 멀리에서 온 공주 3명과 결혼하여 나라를 이루었다는 건국신화다. 이때부터 제주섬에서 오곡씨앗을 뿌려 농사를 짓고 소와 말을 기르는 목축생활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제주는 신화를 빼놓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는 신화의 섬이다. 조선시대 때 이형상 목사가 수많은 신당을 부수었지만 아직도 제주에는 400개 가까운 신당이 남아있다. 오름에, 바닷가에, 마을의 오래된 나무에 제주도 사람들은 신당을 만들고 아직까지도 제주도 신화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제주도의 신화를 활용한 사업을 하겠다고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이하 JDC)가 나섰다. 바로 ‘제주신화역사공원’ 사업이다.

# ‘신화’ 없는 신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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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림-신평곶자왈. ⓒ양수남

도내 3개 단지와 20개 관광지구를 중심으로 한 거점식 개발인 제주도종합개발계획(1991년)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후, 2000년 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 제정되고 JDC가 만들어지면서 지지부진한 관광지구 계획을 폐지하고 개별허가방식에 따른 관광개발이 허용된다. 

이때부터 대폭적인 규제완화가 이뤄지고 JDC에 의한,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행정에 의한 직접적인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제주신화역사공원도 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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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림-신평곶자왈을 밀어내고 신화역사공원이 건설되고 있다. ⓒ양수남

제주신화역사공원은 JDC의 7대 핵심 선도프로젝트 중의 하나로서 제주의 신화역사를 반영한 전통적 테마공원과 동서양의 신화역사와 관광을 연계한 세계적 수준의 테마파크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업계획은 초기부터 축구장 560개에 달하는 엄청난 면적(4,000,000㎡)의 곶자왈(월림-신평곶자왈)을 없애면서까지 만들어야 하냐는 논란에 휩싸였고, 기존의 사업계획마저 사업투자자를 찾는 과정에서 야금야금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당초 제주의 신화와 역사를 담는 계획은 대폭 축소되고 계획에도 없던 항공우주박물관이 뜬금없이 들어서는가 하면 대규모 리조트와 호텔건립 계획이 추진되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신화역사공원에 투자의사를 밝힌 겐팅싱가포르가 대규모 카지노 리조트를 제주도에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을 넘어서 신화역사공원을 카지노공원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 카지노타운으로 전락한 제주신화역사공원

1995년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지자체장들이 외자유치에 혈안이 되어있었다면 JDC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행정기관이 직접 개발 사업에 뛰어드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은 일반기업이 하는 개발사업보다 환경보전측면에 있어서 더 위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컸다.
 
왜냐하면 행정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JDC가 수행하고 있고 각 행정부처와 긴밀하게 연계해서 각종 인허가 등 사업을 손쉽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 없는 개발 기관차인 셈이다. 하지만 행정기관의 특성상 일반 기업보다 기민성과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공공예산 사용에 대한 도덕적 해이도 있어서 실패를 거듭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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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역사공원 리조트월드 기공식. ⓒ제주의소리

그러다보니 JDC는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다. 제주신화역사공원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경빙(競氷)사업을 하겠다고 해서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미국 투자사로부터 개발비용을 뜯기고 소송까지 패소해 수억 원의 피해를 떠안기도 하는 등 좌충우돌을 반복했다. 

신화역사공원을 추진했던 지난 10여 년 동안 무리하게 투자회사를 유치해 무려 15차례 넘게 업무협약을 변경하고 해제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심각한 손해를 자초했다.

이런 어지러운 상황에서 2013년, 부동산 개발 전문기업인 중국의 란딩그룹이 투자를 하겠다고 나선다. JDC에게는 호재였고 그들의 투자를 확실히 이끌어내기 위해서 무리한 요구까지 맞추다보니 당초 신화역사공원사업과는 전혀 다른 계획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영상테마파크는 복합리조트계획으로 둔갑하여 최초 숙박시설계획의 3배에 육박하는 대규모 숙박시설로 바뀌었다. 홍콩, 일본, 싱가포르의 복합리조트 2∼3배나 큰 규모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곳에 도내 총 8개 카지노를 합친 면적(15,000㎡)에 버금가는 도내 최대 규모의 카지노(10,683㎡)가 설치된다는 것이다. 임기 내에는 신규카지노 설치 불가를 선언했던 원희룡 지사가 입장을 바꿔 카지노 계획이 포함된 사업계획변경에 대해 승인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 법까지 위반하면서 승인된 카지노사업계획

그런데  카지노계획이 포함된 사업계획에 대한 제주도의 승인은 명백하게 제2차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이하 종합계획)을 위반한 것이다. 종합계획 상의 신화역사공원 사업계획에는 카지노 시설계획이 들어있지 않은데도 JDC가 자체 세부시행계획만을 변경하여 카지노시설을 추진한 것이다. 

신화역사공원에 카지노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제주개발의 최상위 법정계획인 종합계획을 변경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공청회 등 공론화 과정과 제주도의회 동의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또한 종합계획에는 신화역사공원과 랜드마크적 복합리조트를 구분하여 사업추진 주체 및 추진방식을 정하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와 JDC는 랜드마크적 복합리조트를 신화역사공원사업과 동일시하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종합계획에 따르면 랜드마크적 복합리조트의 사업 추진주체는 제주도가 ‘제주복합리조트추진사업단’을 구성하여 추진하도록 하고 있지만 현재 JDC가 사업추진주체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명백히 사업시행자를 무단 변경한 종합계획 위반이다. 

그리고 랜드마크적 복합리조트 사업은 종합계획에 의해 공모를 통해 사업자 선정을 해야 하지만 별도의 공모절차 없이 단순한 투자유치로 신화역사공원 사업부지를 매입한 것도 절차를 위반한 것이다. 특히 JDC는 사업자에게 신화역사공원 사업부지를 법정매매가보다 헐값에 판매해 버렸다.

이처럼 제2차종합계획을 위반한 것은 모법인 특별법을 위반한 것으로 법률적으로는 무효 또는 취소의 사유가 된다는 것이 법조계의 의견이다. 이에 지난 2월 11일, 제주지역 23개 시민사회·노동단체, 정당은  '신화역사공원 조성사업 변경승인처분 취소소송'을 법원에 제기했고 현재 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제주도의 대규모 관광개발 

제주신화역사공원처럼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관광사업은 한 두 개가 아니다. 의료관광을 목적으로 했던 헬스케어타운 개발사업은 중국 녹지그룹의 요구로 ‘힐링’이 아닌 숙박사업이 중심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약과에 불과하다. 제주도의 대부분의 대규모 관광사업들은 투자를 조건으로 행정으로부터 여러 혜택을 받게된다. 그 혜택 중 하나가 바로 ‘유원지’ 지정인데, 이를 통해 세제혜택을 받게 된다. 국토계획법에 정한 기반시설인 ‘유원지’는 광장, 공원, 녹지 등과 함께 공간시설 중 하나로서 ‘주로 주민의 복지향상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치하는 오락과 휴양을 위한 시설’이다. 즉, 주민을 위한 공공적 성격이 강하다. 제주도의 수많은 관광사업은 이 유원지 지정을 받아 개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시설들이 주민의 복지향상과 휴양을 위한 시설이 아닌 기업의 영리만을 좇아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3월 23일, 예래휴양형주거단지조성사업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은 주민의 공공적 복지와 휴양을 위한 유원지 목적에서 벗어난 예래휴양형주거단지가 국내외 관광객, 특히 고소득 노년층을 타깃으로 한 시설로서 유원지의 기능을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제기한 토지수용재결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을 내리고 개발사업승인을 취소한다. 

이것은 제주도 개발사에서 매우 중대한 판결의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현재 도내의 수많은 관광사업이 예래휴양형주거단지처럼 유원지로 지정되어 있으면서 주민에 대해 배타성을 갖는 영리성 사업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공공의 이용을 위한 공간으로서  혜택을 준, 유원지사업을 영리추구 개발사업에 이용하는 행태에 대해서 분명한 제동을 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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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래휴양형주거단지 대법원 판결에 대한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제주의소리

제주도내에서 유원지로 지정되어 있으면서도 주민에 대해 배타성을 갖는 분양형 숙박시설을 포함하는 사업은 예래휴양형주거단지와 제주신화역사공원, 헬스케어타운, 송악산뉴오션타운, 이호분마랜드, 무수천 블랙파인리조트, 섭지코지 오삼코리아 오션스타 등이다. 사실상 대부분 제주의 대규모 개발사업들이 포함된 것이다. 

신화의 원형을 간직한 중산간의 생태적 활용이 필요하다.

지난 6월 4일, 제주도가 주최한 '제주도 관리보전지역 재정비 용역' 착수 보고회에 따르면 제주지역 개발사업은 표고 100m 미만에서 가장 많았지만 중산간(해발 200~600m)에서 진행되는 개발 사업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600m 이상에서도 2건의 개발사업이 허가됐다. 

용역수행자측에서도 이날 보고에서  “중산간지역은 지형적으로 봤을 때 도민 생활권과 한라산권의 완충공간의 기능을 가진다. 완충공간이 지속적으로 잠식된다면 제주의 자연경관은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드러냈다. 

그런데, 이미 중산간의 잠식은 상당부분 진행되었다. 상가리관광지처럼 이미 한라산 코앞까지 다가간 개발계획도 있을뿐더러 신화역사공원처럼 중산간의 중요한 숲인 곶자왈을 밀어내고 신화 대신에 카지노가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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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에 신화가 풍부할 수 있었던 것은 중산간의 신비로운 오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양수남

제주에 그리스신화에 버금가는 신화가 있는 것은 땅위의 섬처럼 봉긋봉긋 솟아난 수많은 독립화산체(오름)와 드넓은 벵듸 그리고 원시림 곶자왈을 간직한 중산간의 신비스런 경관이 있었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인간의 영성과 상상력은 결국 자연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산간에 대한 원칙 없는 무분별한 대규모 관광개발사업이 아닌 문화적․생태적 활용이 필요하다.

독일 내륙 중앙부에 위치한 산간지방인 뢴 (Rhon) 지방의 사례는 제주도 중산간의 문화적․생태적 활용 방안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5~6번째 연재 '중산간 보전의 대안을 모색한다' 편에서 이에대한 자세한 내용을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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