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김헌준 - 세계적 진상규명운동과 4.3(하)
"4.3은 민간학살 뿌리,진상규명은 끝나는 시점이 없다"

이 글은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헌준님이 제주4.3 58주년을 맞아 '제주의 소리'에 특별기고 한 내용입니다. 김헌준님은 비록 제주출신은 아니지만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국제정치와 정치사상을 전공하면서 '제주 4.3과 남아공의 진상규명운동과 진실위원회 비교 연구'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고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사과한 제주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를 모색하는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김헌준님께 감사의 말을 드리며 두 차례에 나눠 싣습니다. [편집자]


  각 국의 진상규명 과정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한다. 대표적인 예가 남아공의 진실과화해위원회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의 영향이다. 남아공의 성공적인 사례 이후, 이것의 직간접적인 영향으로 진실위원회는 각국에 전파된다.

  4·3의 진상규명 과정을 연구하면서도 국제적 환경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볼 수 있었다. 대만 2.28 사례의 영향도 그렇고 또한 1990년대 ‘인권’이라는 개념으로 4·3논의와 운동을 전국적으로 이끌어 간 것에도 국제적인 인권 개념의 확산이란 점이 분명히 작용하였다. 이제 4·3이 세계를 향해 말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4.3 진상규명 지속성·집중력,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모델

  4.3의 진상규명 과정과 그 힘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느낀 점은 4.3 진상규명 운동의 놀라운 지속성과 집중력이다. 대부분의 국제적 사례가 민주화된 직후에 진상규명이 되거나 혹은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논의가 된 반면, 4.3의 사례는 민주화 이후 10여 년이 지나고 또한 사건 이후 50여 년이 지나 정책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그 특수성이 있다.

4.3이 억압되었던 상황에서부터 사회적 공론화가 되고 또한 입법이 되어 정책이 실행되는 그 모든 과정이 진상규명 과정에 있어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4.3의 진상규명 과정은 6.25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에 있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었고 또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과정을 보면서 느낀 점은 진상규명의 노력과 의지, 그리고 열정이 끊임없이 공동체 내부에 있어 왔고 축적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힘과 그 과정을 정리하는 작업을 통해 인간성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들 이성을 잃은 상황에서 따듯한 마음을 갖고 그것을 대담히 행동으로 옮겼던 사람들, 탄압과 협박, 금전적인 손해까지 당해가면서도 자신이 믿는 것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 이들의 노력에 열린 마음으로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 이들 모두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이들이 이야기는 4.3이라는 끔직한 인간성 상실의 순간에 우리에게 다시금 희망을 주었다.

이렇기 때문에 4.3 사건과 함께 4.3의 진상규명 운동도 하나의 모델로 국제적으로 알려져야 하고 연구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이러한 사건이 다시는 인류에게 일어나지 않는 것, 그리고 이미 이런 사건을 겪은 곳에서 올바르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하는 것이 훌륭한 모델로 정립된 4.3이 인류에게 할 수 있는 공헌인 것이다.

국가범죄 4.3은 6.26 전후 민간인 학살의 '뿌리'

  이런 의미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관해 자그마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 4.3 진상규명 과정을 연구하며 2006년 현재 제주도에서 4.3은 소수의 전문가 집단과 유족들의 문제라는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1999년도의 전 도민과 전 국민이 4.3 특별법을 위해서 보여준 집중적이고 폭발적인 힘이 이제는 특별법 제정과 위원회의 구성과 함께 조금은 잠잠해진 느낌이 든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연구하며 깨달은 점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라는 것, ‘이행 후 정의’라는 것은 끝나는 시점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번 나락에 빠지고 상실된 인간성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나오려고 한다. 이것을 막는 것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운동이다.

  학문을 지칭하여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노를 젓지 않으면 후퇴하는 것이다. 나는 진상규명 운동을 이것에 비유하고 싶다. 현상유지라는 것은 절대 없다. 끊임없이 나아가지 않으면 다시금 되돌아가는 것이다. 남아메리카에서도 그렇고 아프리카에서도 그렇고 그런 사례는 너무나 많다. 한 번 역사에서 정치적 수단으로 등장한 민간인 학살을 이용하려는 과격한 정치가는 언제 어디에나 있다. 유태인 학살이 끊임없이 기억되고 알려지고 또한 연구되는 것은 그것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과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전 인류를 향한 최악의 범죄가 유태인 학살이라면 나는 한반도를 향한 최악의 국가 범죄를 4.3 시기 민간인 학살이라고 규정한다. 6.25 전후 다른 모든 민간인 학살의 뿌리가 4.3시기의 국가 범죄인 것이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끝나는 시점이 없어야 한다

  연구를 위해 만나는 분들에게 항상 질문한다. 왜 1999년 당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서 더 나아가 처벌, 배상과 보상을 포함하는 법을 만들지 않았냐고. 많은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그 당시 실현 가능한 지점까지 가기 위한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더 가야한다고.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반도의 특수한 제주 4.3을 위해서도 그렇고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제주 4.3을 위해서도 그렇다.

최근 정치학에서는 약속을 연구하는 논의가 활발하다. 사회 세력들이 약속의 힘을 믿고 운동을 전개하고 그것이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논리이다. 4.3 진상규명의 진행과정에서도 김대중 당시 대통령 후보의 1987년 11월 30일 공약이 그 역할을 하였다.

이제 4.3이 다음 단계로 가야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 공약보다 더 크고 강력하고 확실한 약속과 근거가 있다. 국가기관에 의해 확정된 4.3 진상조사보고서이다. 전 세계적으로 채택되고 있는 진실위원회, 그것의 가장 큰 힘은 확정된 보고서에 있다. 세계적 흐름 속에 제주 4.3 진상규명운동도 이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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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준
서울대 외교학과 졸,미네소타대 정치학 박사과정 재학 중
국제정치와 정치사상을 전공하고 논문은 「제주 4·3과 남아공의 진상규명운동과 진실위원회 비교 연구」에 대해서 쓰고 있다.
기타 연구주제로는 민간인 학살 (보도연맹원 학살), 아렌트(Hannah Arendt)의 정치사상, 고대 및 중세 서양정치사상, 국제 인권 문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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