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15) 아직 권위 못 배운 아이에게 탈권위는 독약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권위주의 시대 이후의 가족

한국의 현대사를 이끌어온 정치는 독재와 군사독재 같은 권위주의였습니다. 지금은 선거를 통해서 권력이 교체되는 체제이지만 그 흔적이 남아 있죠. 지금의 부모들은 오랜 권위주의 정권과 탈권위주의 정권을 모두 경험했죠. 30대 후반인 제 나이 또래의 부모들은 노무현 대통령 시기의 탈권위주의적인 분위기를 누렸기 때문에 권위에 대한 반감도 강한 편입니다.

가족의 역사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두 흐름이 우리 사회와  가족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공원이나 거리에서 가족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친구 같은 모습이 자주 눈에 띕니다. 교실에서도 선생님의 권위가 사라져 버렸죠.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권위’를 이용하는 자만 있을 뿐, 권위 자체는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제 권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죠. 심리학자와 교육이론가, 소아정신과 전문의들이 오랜 연구 끝에 협의한 최고의 육아 방식을 권위형 양육(authoritative parenting)이라고 합니다. 그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방법 중에는 독재형 양육(authoritarian parenting)과 허용형 양육(permissive parenting)이 있습니다. 공부방을 하고 많은 가족을 만나면서 우리나라의 육아 형태를 관찰해보니 독재형과 허용형이 대다수였습니다.

저 역시 허용형 양육과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권위가 필요할 때조차도 사용할 수 없게 됐죠. 교육자와 부모가 권위를 제대로 가지지 못할 때 아이들이 놓치는 게 상당히 많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이 있더라도 어른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춘추시대 강대국 중의 하나인 제나라의 경공이 공자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물었더니 공자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임금은 임급답게 행동하고, 신하는 신하답게 행동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행동하고,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하면 됩니다.
- 『논어』, 「안연」 편

너무나 간단한 대답입니다. 한문 원문도 단지 여덟 글자 “君君, 臣臣, 父父, 子子”일 뿐입니다. 제경공은 공자의 대답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정말 훌륭한 생각이군요!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게 행동하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게 행동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아버지답게 행동하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그 많은 곡식이 있더라도 내 몫은 남아나지 않겠군요. 
- 『논어』, 「안연」 편

아이가 아이에게 위로를 받을 수는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으로 다가가 눈을 맞추고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는 있죠. 하지만 아이가 아이(아이 같은 부모)에게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죠. 아이가 어른에게 배우려면 권위가 필요하고, 어른이 아이에게 배우려면 탈권위가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권위를 이해해야만 터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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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권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든든한 권위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오랜 시행착오 끝에 깨달았습니다. 권위를 내려놓고 다가가려는 노력은 권위를 익힌 아이들에게나 효과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직 권위를 알지 못합니다. 아직 권위를 배우지 못한 아이에게 탈권위는 독약과 같은 조치였습니다.

선생님을 우습게보고, 공부방 자체를 우습게 보는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다정한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권위를 세운 후에야 가능합니다. ‘친압(親狎)하다’는 “버릇없이 너무 지나치게 친하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아이들이 어른에게 친압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교육도 좋은 육아도 될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 어머니가 어머니의 권위를 얻지 못하고, 아버지가 아버지의 권위를 얻지 못하면 아이들은 마치 지붕이 없는 집에서 생활하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절제 역시 권위가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어른에게 함부로 대하고, 공공장소에서의 질서의식과 기초 질서의식이 없는 것은 가정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정 교육은 모든 교육의 으뜸이자 근본입니다. 가정교육이 있고 나서 학교 교육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가정에서의 권위가 없는 상태에서 학교와 학원, 공부방 등은 큰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가정 이외의 교육기관에서 어느 정도 잡을 수는 있지만 이미 머리가 굵을 대로 굵어진 중고등학생 이상의 경우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통화하거나 대화를 할 때 부모님의 모습으로 다가가시나요? 저는 아직 권위가 없다면 무슨 문제가 벌어지는지 이해했을 뿐입니다. 절제와 공공질서의 문제를 뒤적이다가 권위라는 근본원인을 찾았지만, 어떻게 권위를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아이들과 부딪치며 만들어가야 합니다.

부모와 교육자는 권위와 탈권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해야 하지만, 제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여기에는 저도 포함됩니다. 이제 집나간 권위를 집과 학교, 공부방으로 다시 데려올 때입니다.

[어부책]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

격주 간격으로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을 게재합니다. 특히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은 부모님들은 꼬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권 한 권 만지작거려봅니다. [글쓴이 주]

1. 『넉 점 반』이 말해주는 의식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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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중 (글) | 이영경 (그림) | 창비

흐름이 끊기는 기분은 어떤가요? 좋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흐름이 있습니다. 아이의 의식은 어디로 흘러갈지 모릅니다. 아이들에게 몇 시까지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면 장난을 치면서 시간을 허비합니다. 밖거리(바깥채)에 있는 할머니 집에 가서 밥을 먹으라고 보내놓고 보면 우영팟(텃밭)에서 채소 구경하고 새소리 들으면서 놀고 있습니다. 시간 낭비하지 말라며 호통을 쳐놓고 보니 『넉 점 반』 생각이 납니다. ‘좋은 부모라면 아이의 흐름을 따라 가다가 제대로 된 흐름으로 데려오는 거 아닌가?’라고 질문하는 것 같아서 얼굴이 새빨개집니다.

dajak97@hanmail.net 앞으로 육아고민을 보내주세요. 자녀와 본인의 나이와 성별을 써주시면 가명으로 처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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