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㉗>

의학자들은 요즘 떠들썩한 메르스(MERS)의 병원체인 ‘신종 바이러스’도 진화의 자연스런 결과라고 말한다. 새삼 다윈의 진화론에 주목하는 이유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자연계에서 ‘종이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종은 어느 것이나 따로따로 창조된 게 아니라 변종처럼 다른 종에서 유래한다는 것, 즉 하나의 종이 진화하면서 여러 종으로 분화한다는 것이다.(예컨대 비둘기의 종은 수십 가지이나 그 조상은 들비둘기이다)

『종의 기원』의 핵심 키워드=종+변이+생존경쟁+자연선택이다. 이 4가지 개념만 알면 이 책을 완독한 셈이다. 종은 서로 교배해서 2세를 낳을 수 있는 자연집단이다. 변이(메르스는 변이 바이러스에 의한 신종 전염병이다)는 같은 종의 생물 개체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서로 다른 특성인데, 변이의 원인은 유전자와 환경이다.(다윈은 유전의 원리를 몰라서 환경과 교잡으로 생각했다) 생존경쟁은 변이들 중에서 생존에 유리한 것들을 골라내는 역할을 한다. 생존경쟁을 통해서 환경에 가장 적합한 개체들만 살아남아 자손을 남길 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을 다윈은 자연선택 혹은 적자생존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종의 기원』에서 중요한 코드는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인데 다윈은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을 통해서 자연계에 수많은 종이 탄생한다고 설명했다. 종은 창조되는 게 아니라 다른 종으로부터 파생되고, 생물의 다양성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라 점진적인 종의 변화를 통해 가능하게 됐다는 다윈의 생각은 당시(19세기)의 통념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서 코페르니커스적 혁명에 다름 아니었다. 진화론은 기존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뒤흔든 엄청난 사건이었다. 모든 생명체가 진화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의 시계 바늘은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다윈은 최초의 생물(조상)이 어떻게 생겨나게 됐는지, 그리고 그 생물들이 어떻게 더 고등한 형태로 진화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유전자에 무지했던 그는 여러 한계를 보였고 자연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먹이사슬’과 각기 다른 생물의 수명도 해명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진화론은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신비의 문을 여는 만능열쇠가 아니라, 하나의 문을 열었을 뿐이다. 자연의 수수께끼를 다 풀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절대자 밖에는 없다.

다윈은 ‘진화’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고, 후세인들이 만든 말이다. 다윈은 진화라는 말 대신에 ‘변이를 수반한 유전’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에게 변이가 중요한 이유는 변이가 누적되면 변종이 나오고 변종의 변이들이 더 누적되면 새로운 종이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변이는 진화의 출발점이요,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의 기폭점이다.

진화론은 과학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기존의 인문학이나 사회학이 담당하던 문제들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인간심리의 진화를 연구하는 진화심리학도 생겼다. 이밖에 진화론은 정치학, 경제학, 인류학 등 다방면에 접목되고 있다.

해부학과 생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체는 소우주와 같다. 누가 봐도 이건 신의 작품이다. 자연(대우주)과 인간(소우주)을 이처럼 정밀하게 만든 건 초능력의 조물주가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성경(창세기)에 나오는 것처럼 태초에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했고, 만물은 다윈의 말처럼 끊임없이 변화(진화)해 온 것이다. 이리 되면 창조론과 진화론은 길항관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일반학교는 물론이고 기독교가 세운 학교(미션 스쿨)에서도 창조론과 진화론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 둘이 대척관계가 아니고 상호의존적이고 보완적인 관계임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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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찰스 다윈은 1992년 7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아마도 임종의 순간에서야 그는 깨달았으리라. “인간은 지구의 무작위적이고 우발적인 환경변화 속에서 자연선택이 지속적으로 일어난 결과, 우연히 탄생하게 된 종일 뿐”이라는 게 얼마나 오만하고 참담한 생각인지를.

그리고 인간 이성의 문턱을 넘어 저 먼 곳에, 인간 존재의 벽을 넘어 저 높은 곳에 단 하나의, 유일무이한 초월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신이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세계를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신이 없다는 것을 가정하고 세계를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모순투성이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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