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한라산 허리] (4) 골프장·숙박시설 잇따라 건설...보전 사각지대

해발 200~600m 지역인 ‘중산간’은 제주도의 해안 저지대와 한라산을 연결하는 생태축 즉, 허리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이다. 또한 제주만이 갖고 있는 숲, ‘곶자왈’과 지하수 충전지대인 ‘뱅듸’가 드넓게 자리잡고 있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하지만, 중산간은 그동안 대규모 개발로 끊임없이 파괴돼왔고 최근에는 중국 투기자본의 진입으로 더욱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실제로 현재 영업하고 있는 29개의 골프장 가운데 26곳이 중산간에 밀집해있다. 최근에는 골프장 뿐 아니라 백통신원리조트, 차이나비욘드힐관광단지, 제주헬스케어타운 등 대규모 숙박시설이 중국자본의 주도로 우후죽순처럼 건설되고 있다.

특히, 최근 환경영향평가심의를 통과한 상가리 관광지는 해발 600미터에 근접한 중산간 최고 높이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한라산국립공원 바로 코밑에 위치해있다. 이 지역은 상가리 마을주민이 선대에서부터 사용하던 마을공동목장이다. 이처럼 제주의 중산간 지대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는 시점에서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인 제주환경운동연합 양수남 대안사회팀장이 6차례에 걸쳐 그동안 중산간 개발의 문제점을 돌아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연재 순서
연재 1 - 대규모 관광개발에 의해 무너지는 제주의 중산간
연재 2 - 상가리 마을공동목장, 한라산 코앞에 들이닥친 관광지 개발
연재 3 - 신화가 아닌 카지노타운으로 전락한 제주신화역사공원
연재 4 - 벵듸, 또하나의 제주의 보물
연재 5 - 중산간 보전의 대안을 모색한다 1
연재 6 - 중산간 보전의 대안을 모색한다 2

# 아는 만큼 지킨다 : 오름·곶자왈의 개발과 보전운동의 흐름

아는 만큼 사랑하고 분노한다는 말이 있다. 즉, 그 대상을 알아야 사랑할 수도 있고 또 그만큼 분노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름과 곶자왈이 그랬다. 오름은 그저 한라산보다 작은 산이었고 곶자왈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쓸모없는 땅이라 여겼다. 

그래서 오름은 그동안 수많은 아픔을 감내해야만 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군사용 시설들로 인해 수많은 오름들이 파괴되었다. 현대에 들어서서는 골프장, 호텔 등 위락시설에 의해 오름의 허리가 잘려나가기도 했고 기지국, 송전탑 등 인공시설물에 의해서도 파괴되었다. 송이채취로 오름이 파이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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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과 수많은 습지, 동굴을 품었던 선흘곶에는 세인트포골프장이 자리잡고있다. ⓒ양수남

곶자왈도 마찬가지였다. 동서로 분포하고 있는 넓은 면적의 곶자왈은 특히, 대규모 관광시설에 의해 상당부분 잠식되었다. 현재 중산간의 많은 골프장들이 곶자왈이 있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최대의 상록활엽수림이라는 선흘곶자왈에는 세인트포 골프장이, 낙엽활엽수가 아주 풍부했던 교래곶자왈에는 에코랜드가, 서부지역 최대곶자왈인 한경-안덕곶자왈에는 블랙스톤골프장이 들어섰다.
 
제주녹색환경지원센터가 수행한 ‘곶자왈 보전관리를 위한 종합계획 수립(2014)’에 따르면 골프장을 비롯해 대규모 개발사업 영향으로 전체 곶자왈 109㎢ 가운데 18.78%에 이르는 약 20.6 ㎢가 사라졌다. 

이 중에 골프장은  10곳으로 이로 인한 개발면적은 약 7.9 ㎢로, 곶자왈 전체면적 대비 7.18%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화역사공원을 비롯한 관광시설은 8곳으로 그 면적은 약 6.03 ㎢로, 곶자왈 전체면적의 5.49%를 차지했고 제주영어교육도시를 비롯한 도시와 주택지 개발사업 면적도 약 4.22 ㎢(3.85%)에 이르고 있었다.

이처럼 오름과 곶자왈이 속수무책으로 파괴되었던 이유는 이곳의 가치가 제대로 조명이 되지 않았고 도민들 사이에서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행정당국의 법률제정과 정책수립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물론, 개발에 편중된 행정당국의 의지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오름의 경우,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제민일보 창간기획의 하나로 연재한 김종철의 '오름 나그네'가 오름에 대한 가치를 도민들에게 인식시켜 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오름나그네’라는 세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오름 산행을 하는 사람들의 바이블 역할을 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오름 기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도민들과 관광객들의 오름 방문이 늘어나면서 오름에 대한 가치에 눈을 뜨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오름의 파괴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시민단체들도 전면적으로 가세했다. 이에 제주도도 화답하였다. 1997년, 제주도가 주관하여 오름을 전수조사한 <제주의 오름>을 발간하였다. 오름을 제도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밑 작업이었다. 

결국 2004년에 368개의 오름은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개발행위가 제한되었다. 1990년 김종철의 ‘오름나그네’ 연재 이후 10여년만의 일이었다. 물론, 오름 자체에 대한 개발행위는 제한되었지만 오름에 인접한 개발은 가능한다는 점에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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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기행은 도민들에게 오름, 곶자왈의 가치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양수남

오름보전 운동의 확산에 김종철의 ‘오름나그네’가 길을 열었다면 곶자왈 보전의 여론형성을 위한 물꼬를 튼 것은 2002년도부터 연재한 제민일보의 ‘곶자왈 대탐사’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곶자왈의 개념조차 학술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았던 때였고 도민들에게도 생소했던 ‘곶자왈’을 제주도내에 확산시키는 계기가 된다. 

제주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도 곶자왈 보전을 위한 토론회, 곶자왈 기행 등을 개최하면서 곶자왈의 가치를 도민들에게 알려나갔다. 더욱이, 당시 골프장 등 대규모 개발계획들이 경관이 좋은 곶자왈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시민단체의 대응이 곶자왈 보전운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측면도 있다.  2005년에는 곶자왈 전문 보전단체인 ‘(사)곶자왈사람들’이 창립하면서 곶자왈보전운동에 불을 붙였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보전운동과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로 행정당국의 곶자왈 보전정책을 유도하고 있다. 2014년에는 곶자왈 보전관리조례가 제정됐다. 하지만 상위법에 근거 규정이 없는 한계를 갖고 있어 개발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 제주도의 또 하나의 보물, 벵듸

이처럼 곶자왈과 오름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고 관심도 많이 받고 있을 뿐더러 미흡하지만 법적인 보호 장치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벵듸’는 아직도 이름을 모르는 도민들도 허다하다. 학술적 정의도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무관심 속에서 벵듸는 개발에 무분별하게 노출될 수 밖에 없었고 개발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어려웠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지난 2007년에 중산간지역의 벵듸조사를 처음으로 시작하였다.(제주환경운동연합, 2007,「소똥구리, 벵듸에서 테우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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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평.빌레가 넓게 펼쳐져있다. ⓒ양수남
제주도에는 어느 마을치고 벵듸 없는 마을이 없다. 심지어는 마을 자체가 벵듸(평대리, 도평동, 월평동 등)인 곳도 여러 군데 있다. ‘벵듸’는 오름, 곶자왈과 함께 제주도의 독특한 지형을 형성하면서 마을과 한라산을 잇는 주요한 생태축의 역할을 하고 있고, 제주인들에게 중요한 생활터전이었다.

벵듸는 ‘주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하면서 그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비교적 넓고 평평하며 나무는 없고 잡풀만 우거진 거친 들판’이라고 2007년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조사보고서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벵듸와 관련된 마을 이름은 평대리, 도평동, 월평동(제주시, 서귀포시 2곳) 등 총 4곳에 이르며 벵듸가 들어간 지명도 180곳이나 존재한다. 
 
# 제주목장사의 주요 무대였던 벵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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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녹산장. 조선시대 최대규모의 마장이었다. ⓒ양수남

벵듸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온 제주목장사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다.  특히, 중산간 지역의 대표적 벵듸인 어림비, 수산평, 녹산장은 고려시대 이후 제주 목장사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고 파호이호이용암이 흐르면서 굳어진 벵듸의 지질적 특성상 내륙 습지가 많이 분포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또한 아직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알오름과 동굴들이 산재해 있다. 그리고 벵듸 곳곳에 보이지 않는 숨골들이 분포함으로써 청정 지하수를 함양하는 환경적 가치도 높은 지역이다.  

녹산장은 표선면 가시리 큰사슴이오름과 따라비오름에서 남원읍 물영아리오름 일대에 분포하는 벵듸로 현재도 마을공동목장이 여러 개 운영되고 있다. 조선시대 때 가장 규모가 컸던 마장이기도하다.

탐라순력도의 ‘산장구마’가 녹산장을 그린 그림이다. 산장구마는 말들을 일정한 장소에 모아 마필수를 확인하는 그림이다. 녹산장내에는 갑마장길이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옛 제주의 목축문화를 이끌어 왔던 ‘갑마장길’은 조선시대 궁중에 진상하는 최고급 말인 갑마(甲馬)를 사육했던 국영 목장인 ‘갑마장’에 광활한 초원과 억새밭, 따라비오름, 큰사슴이 오름(대록산), 잣성길 등을 두루 거치는 20㎞에 이르는 길이다.  

녹산장 일대에는 산마장의 구조물인 상잣성, 중잣성, 하잣성 등이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 현재까지도 제주도 일원에서 마산업이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축산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환경에서 멸종위기야생동식물인 애기뿔소똥구리가 많이 관찰되고 있고 람사르습지인 물영아리 습지 주변으로는 양서·파충류가 대량으로 서식하고 있다. 

해발 400m의 전형적인 온대기후대에 속하는 녹산장의 서쪽으로 형성된 숲 지대와 목마장의 초원지대가 혼합된 특성으로 제주도 동식물의 중요한 서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녹산장에는 서중천, 솔천, 가시천의 하천이 있고 물영아리습지, 신물습지 등 습지가 풍부하게  분포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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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평 내 한못. 수산평에는 수많은 습지가 있다. ⓒ양수남

수산평은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동거미오름에서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2리까지 이어지는 제주도 최대의 벵듸로서 성산·수산곶자왈, 좌보미오름, 뒤굽은이오름, 낭끼오름, 궁대오름, 영주산, 모구리오름, 유건에오름, 나시리오름 등으로 둘러싸인 넓은 초원지대이다. 

제주도 최초의 목장이기도 하다. 고려 충렬왕 2년(1276년)에 몽골에서 말 160필과 말 전문가인 목호들이 탐라국에 들어와 수산평 일대에 마목장(馬牧場)인 탐라목장을 건설한 것이 제주도 목장의 기원이다. 현재에도 수산평 일대는 하도공동목장을 비롯하여 여러 마을공동목장이 있으며 경주마, 조랑말, 한우 등을 사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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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림비안에 있는 빌레못굴. ⓒ양수남

수산평은 동거미오름과 좌보미오름의 암설사태층, 성산·수산 곶자왈 그리고 표선리현무암이 지표에 노출되어 있는 지대로서 제주도 화산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지형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곶자왈과 동굴, 습지가 풍부하게 분포할 수 있었다.

수산평에는 수산2리 주민들이 오랫동안 식수와 우마용으로 이용해왔던 ‘한물’을 포함하여 아직 조사되지 않은 습지도 풍부하게 분포하고 있다. 

특히, 세계 7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수산굴이 수산평 내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수산평은 동거미오름과 좌보미오름 암설사태층에서 형성된 알오름들이 100여개 넘게 분포하고 있는 곳이지만 아직 알오름들은 법적인 보호시스템에서 열외되어 있는 실정이다.

어림비는 제주시 애월읍 바리메오름에서 한림읍 귀덕리까지 이어지는 벵듸이며 바리메오름, 새별오름, 이달이오름, 누운오름, 꾀꼬리오름, 천아오름, 어도오름과 빌레못굴 그리고 금성천이 분포하고 있다.

어림비는 애월읍 어음리의 마을이름을 탄생시킨 모태이며 고려 말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에 상륙한 최영장군과 이에 대항하던 목호들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일어났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 대규모 개발의 위협에 노출된 벵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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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림비에 들어선 에버리스골프장. ⓒ양수남

이러한 벵듸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벵듸는 보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아직, 제대로운 학술조사도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게다가 중산간에 분포하는 벵듸의 특성상, 대규모 개발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도로개발과 골프장, 대규모 숙박시설 등이 가장 큰 위험요소이다. 어림비의 경우에 최영장군과 목호의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이지만 에버리스골프장이 한 부분을 잠식해버렸다. 녹산장도 현재 정석비행장이 들어서 있고 주변에 더클래식골프앤리조트가 있다. 

수산평의 경우에는 동굴과 습지가 풍부하게 분포하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운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언제든지 개발의 위협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녹산장안에 있는 솔천은 예전에 열대우림같은 분위기를 자아낼 정도로 생태계가 잘 보존된 하천이었다. 

하지만 2012년에 산불진화용 헬기의 취수를 위해서 물가두기 사방댐을 만들면서 주변의 생태를 고려하지 않고 공사를 하여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필요성이 있는 사업이라 할지라도 보다 세밀한 접근이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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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방댐을 만들면서 솔천의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양수남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오름과 곶자왈의 보전운동의 경우에 언론-시민사회-학계가 의제를 설정하고 여론을 확산시켜 나가면 행정당국이 이를 수렴하는 형태를 보여왔다. 즉, 첫 출발은 늘 보전대상에 대한 가치의 조명이었다. 

벵듸도 마찬가지로 가치의 조명이 이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2014년 11월에 방영된 KBS제주총국의 특선다큐 ‘한라산 보고서, 중산간 벵듸가 무너진다’는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앞으로도 언론과 시민사회 그리고 학계에서 벵듸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벵듸에 대한 난개발이 결국 중산간의 난개발로 이어지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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