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59) 이층에서 본 거리 / 다섯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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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lden Hit / 다섯손가락 (1992)

어렸을 때는, 이층을 동경했다. 단층집에 살면서 이층집에 사는 부잣집 아이가 부러웠다. 교실은 2층이 좋았다. 창밖 풍경이 좋았다. 2층은, 현실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고층 빌딩 제한법이 있었던 내가 살던 도시에는 높은 건물이 흔치 않아서 2층에만 올라가도 동네가 다 보일 정도였다. ‘다섯손가락’의 이두헌은 노래한다. '수녀가 지나가는 그 길가에서 어릴 적 내 친구는 외면을 하고, 길거리 약국에서 담배를 팔듯 세상은 평화롭게 갈 길을 가고…… 해묵은 습관처럼 아침이 오고, 누군가 올 것 같은 아침이 오고…….’ 옛 친구가 왜 외면을 했는지, 어떻게 약국에서 담배를 팔 수 있는지, 노랫말에 의문을 품었지만 이 가사는 내게 아름답게 각인 되었다. 1980년대, 아직 어려서 알 수 없었지만 막연하게 암담한 시절이라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니 '안개만 자욱한' '2층에서 본 거리'는 그 시대의 노래이자 내 유년의 노래가 되었다. 내 시의 감성은 ‘다섯손가락’이나 ‘들국화’ 같은 이른바 언더그라운드(요즘은 인디라고 하는)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 난 첫 번째 시집 맨 앞에 '동아기획에 바침'이라고 썼어야 했다. 상가리에서 만난 화가 안민승이 내 첫 시집 ‘지구 레코드’를 읽고 ‘나에게 쓴 편지’ 같았다고 했다. 나는 놀랐고 반가웠다. 그 몇 사람을 독자로 생각하고 쓴 시였기 때문이다. 그 몇 사람의 독자 중 한 명이 안민승 화가이다. 우리는 음악이라는 준거집단으로 모였다. 그런데 그는 천사에 대해서 인상적인 정의를 했다. ‘천사란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 그래, 지금껏 할 일이 너무 많았다. 2층만 동경하면 되는데 지금껏 너무 높은 고층 건물을 올려다보며 살았다. 버리면 되는 일인데 바쁜 척 살아왔다. 낮에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을 가서 2층 교실 유리창으로 운동장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다신 그 풍경을 바라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MP3로 '2층에서 본 거리'를 반복재생으로 들었다. 강원도 양양 말고 포크 가수 ‘양양’도 노래했다. ‘이만큼만 이만큼만 이만큼도 충분해’(‘이 정도’).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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