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한라산 허리] (5) 중산간 보전의 대안을 모색한다 ⓵

해발 200~600m 지역인 ‘중산간’은 제주도의 해안 저지대와 한라산을 연결하는 생태축 즉, 허리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이다. 또한 제주만이 갖고 있는 숲, ‘곶자왈’과 지하수 충전지대인 ‘뱅듸’가 드넓게 자리잡고 있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하지만, 중산간은 그동안 대규모 개발로 끊임없이 파괴돼왔고 최근에는 중국 투기자본의 진입으로 더욱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실제로 현재 영업하고 있는 29개의 골프장 가운데 26곳이 중산간에 밀집해있다. 최근에는 골프장뿐 아니라 백통신원리조트, 차이나비욘드힐관광단지, 제주헬스케어타운 등 대규모 숙박시설이 중국자본의 주도로 우후죽순처럼 건설되고 있다.

특히, 최근 환경영향평가심의를 통과한 상가리 관광지는 해발 600미터에 근접한 중산간 최고 높이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한라산국립공원 바로 코밑에 위치해있다. 이 지역은 상가리 마을주민이 선대에서부터 사용하던 마을공동목장이다. 이처럼 제주의 중산간 지대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는 시점에서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인 제주환경운동연합 양수남 대안사회팀장이 6차례에 걸쳐 그동안 중산간 개발의 문제점을 돌아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연재 순서

연재 1 - 대규모 관광개발에 의해 무너지는 제주의 중산간
연재 2 - 상가리 마을공동목장, 한라산 코앞에 들이닥친 관광지 개발
연재 3 - 신화가 아닌 카지노타운으로 전락한 제주신화역사공원
연재 4 - 벵듸, 또하나의 제주의 보물
연재 5 - 중산간 보전의 대안을 모색한다 ⓵
연재 6 - 중산간 보전의 대안을 모색한다 ⓶


# 제주도 관광산업의 그림을 다시 그리자
 
제주도 경제의 두 축은 1차산업과 관광산업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2차 산업은 2.8%로 비중이 작지만 대신에 1차산업이 15%, 그리고 3차산업이 82.2%를 차지하고 있다. 3차산업이 압도적으로 높을 수 있는 이유는 제주도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생태계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지금까지 관광산업의 방향은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역경제의 선순환구조를 만들고 다음세대에게 미래자원을 남기는 구조가 아니었다. 

곶자왈이나 벵듸 등 자연경관이 좋은 곳에 골프장과 숙박시설을 짓는 형태의 대규모 위락관광단지가 관광개발의 중심이 되면서 자연경관과 생태계는 파괴되고 돈은 도외로 흘러가버리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개발이었다. 그리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개발이었다. 
 
서양 우화에 나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지금까지의 제주도 개발의 역사와 비슷하다. 하루에 하나씩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갖게 된 농부. 그 농부는 이 거위의 배를 가르면 더 많은 황금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거위의 배를 가르자 황금알은 커녕 거위는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연 천만 관광객이 도래하게 된 것은 아름다운 자연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모태를 없애고 더 큰 관광시설을 지으면 수익성이 배가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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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난에 처해있는 제주도 골프장 ▲ ⓒ양수남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미 제주에서 운영 중인 골프장 30곳 중 7곳 이상이 운영난으로 도산해 경매에 넘겨졌거나 공매를 신탁한 상황이다. 막대한 투자로 골프장을 개장했지만 골프장이 난립한데다 골프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체납한 지방세도 117억원(2013년)에 이른다. 아무 원칙도 없이 우후죽순으로 골프장을 허가해준 제주도당국의 잘못이 막중하다. 앞으로도 골프장의 도산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고 지역경제에도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러한 골프장 도산의 원인제공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제주도개발특별법에 근거해 수립된 1차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이 시작이었다. 이 계획은 도내 3개 단지·20개 관광지구를 중심으로 한 거점식 개발로서 제주도는 어떻게든 이 지역 안에 대규모 관광시설을 유치하려고 혈안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사업타당성 등 면밀한 검토 없이 골프장 건설 사업신청이 들어오면 승인 도장 찍기에 바빴다. 

이후, 이 사업조차도 지지부진하자 제주도는 방향을 틀어 관광지구 계획을 폐지하고 개별허가방식에 따른 관광개발로 바꾼다. 마찬가지로 골프장 사업 신청은 일사천리로 승인되었다. 더불어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는 7대 핵심 선도프로젝트란 이름하에 직접 대규모 관광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중국 등 외국의 거대자본을 끌어들인 대형 프로젝트들이 추진된다. 주로 중산간을 중심으로 한 골프장과 숙박시설, 카지노 위주의 개발계획이다. 이미 골프장 줄도산이 증명하듯이, 위의 사업들도 면밀한 사업타당성 검토 없이 진행되다보니 업체간의 과당경쟁이 심화돼 또다시 도미노 파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렇듯 지금의 제주도 관광산업은 한계에 봉착했고 이를 바꿔내지 않으면 제주도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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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중산간 곶자왈 지대를 파괴하는 대규모 개발. 대규모 위락시설 중심의 관광개발정책은 폐기해야한다. ⓒ양수남

그렇다면 지금의 관광산업의 방향을 대폭 수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미 30년 가까이 추진해온, 외지자본 유치를 통한 대규모 위락시설 중심의 관광개발정책은 폐기해야 한다. 개발정책의 토대인 제2차 제주도종합개발계획도 당연히 전면 수정해야 한다. 제주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지역경제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관광산업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생물권보전지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생물권보전지역에 열광하는 국내 생물권보전지역 지자체들

제주도는 유네스코 3관왕을 거머쥘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자연경관과 생태계를 갖고 있는 곳이다.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2007년 세계자연유산 등재 그리고 2010년에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을 받았다. 이 중에 생물권 보전지역은 지정된지 10년이 훨씬 넘어가지만 제주도는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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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는 생물권보전지역이다. 사진은 어승생악 ⓒ양수남
생물권보전지역은 인간이 자연을 보전함으로써 자연으로부터 여러 가지 혜택을 얻고, 거기에서 얻어진 이익을 다시 자연을 보전하는데 목적이 있다. 실제로 국내외에서 생물권보전지역 브랜드를 활용한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 중이다. 물론 제주도에서도 생물권보전지역내 1차 생산물과 가공품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한 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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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돈천 상류. 효돈천은 생물권보전지역 핵심지역이다 ⓒ양수남
이미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의 지위를 얻은 전국의 지자체가 앞다퉈 구역 확장과 브랜드 창출에 나서고 있지만 제주도의 경우는 정책우선순위에서 많이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지자체는 아예 지자체 전 지역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거나 추진 중일 정도로 생물권보전지역 프로그램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도 말이다. 국내의 지자체들이 생물권보전지역에 열광하는 이유는 환경도 보전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성장 동력으로 생물권보전지역이 훌륭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2009년에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전라남도 신안군은 올해, 군 전역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존의 4개 면에서 14개 읍·면 전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신안군 내 1000여개의 섬 모두를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려는 것이다. 

첫 지정 당시 반대가 극심했던 지역 주민들도 추가 지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민들에게도 생물권보전지역의 긍정적 효과가 미치고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신안군이 생물권보전지역을 확장하려는 이유는 지정 이후 관광객 증가와 특산물 판매에 괄목할만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플랜 : 생물권보전지역

생물권보전지역은 ‘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이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생태계를 대상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육상, 연안 또는 해양 생태계’를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119개국 631개 지역이 지정되어있고 국내에서는 제주도와 설악산국립공원, 신안·다도해, 광릉숲, 고창 등이 선정돼있다. 

생물권보전지역은 ‘생물다양성과 생물자원의 보전을 지속가능한 이용과 어떻게 조화 시킬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제주도처럼 개발과 보전의 갈등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현실이 제주도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과제라는 것을 반증해 준다.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으로 인한 가장 큰 의의와 변화는 해당 지역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고 전 세계의 관련 지역들과 협력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다고 해서 유네스코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대신하여 관리와 보전을 대행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전략과 행동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치단체가 철학과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지 않으면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의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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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물권보전지역 구분. 중산간은 전이지역이다 ⓒ양수남

생물권보전지역은 핵심지역, 완충지역, 전이지역 3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핵심지역은 환경교육 등 엄격히 제한된 이용만을 허가하는 절대보전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완충지역은 핵심지역을 둘러싸고 있거나 그것에 인접해 있으면서 환경교육, 레크리에이션, 생태관광, 학술 연구 등의 건전한 생태적 활동에 적합한 협력활동을 위해 이용되는 지역이다. 그리고 전이지역은 농업활동이나 주거지로의 이용이 가능하며 지역사회, 행정기관, 학술단체, NGO, 이해 당사자들이 함께 지역자원을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제주도의 경우, 핵심지역은 한라산국립공원, 영천 및 효돈천 천연보호구역, 섶섬, 문섬 등이다. 완충지역은 한라산과 인접한 국유림과 국립공원 북측 일부 등이다. 그리고 전이지역은 중산간 전역이 해당된다.

# 생물권보전지역 전이지역 중산간 지대 : 제주에서 난개발이 가장 심한 지역

해발 200m~600m에 이르는 중산간지대가 생물권보전지역에 지정된 것은 의미가 있다. 핵심지역과 완충지역은 생물권보전지역 지정과 상관없이 국내법으로도 개발이 제한된 곳이다. 하지만 전이지역으로 선정된 제주도의 중산간은 보전과 개발의 갈등사이에서 가장 첨예한 지점에 놓여있다. 

생물권보전지역에서 정의하고 있듯이 전이지역은 농업활동이나 주거지로서의 이용은 가능하지만 지역자원을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하지만 현재 중산간지대는 이 지침의 실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오히려 제주도내에서 가장 난개발이 심한 지역이 중산간 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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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중산간지대 전경 ⓒ양수남
 
이것은 제주도당국이 생물권보전지역의 취지와 지침을 실행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산간 보전과 이용에 대한 그림이 다시 그려져야 되는 이유이다. 지금까지의 개발중심 일변도의 전략에서 보전과 이용의 조화를 통한 전략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제주도와 조건이 비슷한 생물권보전지역 우수 사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 유기농업과 환경산업을 자원화한 엘이어로

스페인의 라팔마와 엘이어로 모두 제주도처럼 화산섬이다. 세계최초의 생물권보전지역인 라팔마는 지정된 후 지역의 인지도가 높아져서 관광산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여기서 벌어들인 수익은 다시 환경보전으로 재투자되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라팔마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업생산품에 대해 생물권보전지역 로고를 통한 라벨링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라벨링을 적용하려는 제품들은 지역전통성을 가져야 하며 제품의 질이 좋아야한다. 물론, 현재 제주도에서도 생물권보전지역 라벨링제도를 시도하고는 있지만 효과가 미미한 상황이다.

엘이어로의 경우 생태뿐만 아니라 에너지, 교통, 농업, 폐기물정책 등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진보를 이룬  ‘지속가능한 발전 모형’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풍부한 부존자원을 활용하여 100% 재생에너지 이용계획을 추진하면서 독특한 관광상품과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복원하여 상품화하는 전략을 택하여 추진하고 있다. 이를테면 과거의 전통공예, 공업제품을 복원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며 수공예를 후원하고 있다. 풍력발전을 깅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제주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또한 엘이어로는 유기농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농업인구 증가정책으로 새로운 농업활동을 창출하고 있으며 젊은 농민을 육성하고 교육하기 위해 유기농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농업기술 훈련을 포함한 생태농업을 장려하고 있다. 더욱이 기존 목축업을 재평가하고 유기목축을 지원하고 꿀 및 치즈 등 유기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개인소유 및 렌터카를 억제하고 대중교통을 확대하려는 계획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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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산간지역에서 방목되는 말. 제주도는 친환경목축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양수남

제주도도 엘이어로의 목축산업 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의 축산물이 전국적으로 인기가 있는 이유는 청정한 초지에서 자라는 가축의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로 중산간 중심으로 있는 초지와 공동목장지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내 공동목장 116곳 중에 현재 남아있는 곳은 불과 65곳 정도에 불과하다. 50여곳은 이미 매각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가속화 될 전망이다. 오히려 상가리공동목장처럼 제주도가 소유한 공유지조차 사기업에 매각하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제주도당국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에 대규모 관광시설이 마을공동목장 등 중산간을 잠식하고 있다. 엘이어로의 방향과는 정반대이다. 제주도는 지금이라도 사라지고 있는 마을공동목장을 살려내고 자원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제주도의 미래산업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축산업을 중산간을 중심으로 더욱 확대하고 이를 통일된 상품브랜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중산간 개발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 목축의 현장을 관광자원으로 : 뢴 생물권보전지역

독일의 뢴 지역은 해발 800m~950m에 이르는 ‘호펜 뢴’이라고 하는 고원에 있다. 이곳은 굽이치는 언덕과 숲, 농업지, 목초지, 과수원, 작은 거주지 등이 어우러진 풍경을 갖고 있다. 제주도의 중산간 풍경과 유사한 면이 있다. 

이 지역도 최근 주민들이 생물권보전지역을 확장하는 것을 원해서 원래 면적보다 1/3이 더 늘어난 곳을 확장 신청하여 승인을 받았다. 생태관광과 농업이 주로 이뤄지는 이 지역은 생물권보전지역이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어떻게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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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뢴 지역 전경. 뢴지역은 목축문화를 자원화한 생물권보전지역이다. ⓒ 사진 제종길

뢴 지역은 이농으로 인구 감소와 함께 경제적으로 낙후가 진행되던 곳이었다. 하지만 1991년에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을 때 뢴 당국은 이를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았다.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을 발전계획의 중심에 두고 생물권보전지역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당시에는 주민들도 반신반의하였다고 전해진다. 핵심지역 2%와 완충지역 중 20%를 절대보전지역으로 정해서 생물권보전지역 전체 면적 중 10%만이 법적 관리를 받고 있지만, 이 10%가 지역을 먹여 살리고 있다. 

뢴 지역의 주된 보호대상은 경관이다. 자연 그대로의 원시 자연 그 자체는 아니지만 목축하면서 형성된 독특한 풍경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이 초원지대에는  수없이 다양한 풀들이 자라는데 일 년에 한 번씩 베어주고, 나무들이 초지대에 침입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관리방법이다. 베어낸 풀들은 가축들의 먹이로 쓰이는 선순환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제주도내 공동목장의 경우처럼 이곳이 오랜 세월동안 초지대로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도 주민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일부 농민들은 생물권보전지역 관리사무소의 지원을 받아 사과조합을 만들어 사과를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다. 이 사과를 가공하여 다양한 음료를 개발하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생물권보전지역에서 생산한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한 때 멸종 단계에 이르렀던 토종 양을  번식시켜 뢴 지역을 상징하는 축산물이 되게 한 것이다. 

# 결국 자치단체의 의지 : 뢴과 제주도의 차이

대규모 관광시설(상가리관광지 조성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상가리공동목장의 경우, 뢴 지역처럼 해발고도가 높은 초원의 형태를 띠고 있다. 오랫동안 목축을 하면서 형성된 독특한 경관을 갖고 있다는 것도 비슷하다. 오랜 세월동안 주민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도 비슷하다. 다만, 다른 점은 자치단체의 철학과 의지이다.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을 받은 이후 지속가능한 발전 철학을 바탕으로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한 ‘뢴 당국’이 있는 반면에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을 받고서도 중산간지대의 난개발을 심화시킨 제주도당국이 다른 것이다.

바리메오름 바로 아래에 상가리마을공동목장이 자리잡고 있다. 제주도심하고는 가깝지만 해발 500m가 넘는, 중산간에서도 가장 높은 지대 중 하나다. 이곳은 마소가 먹는 다양한 풀이 많고, 가축을 괴롭히는 진드기가 꼬이지 않아 가축을 키우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상가리 뿐만 아니라 여러 마을들의 소들도 이 목장에서 방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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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가리관광지구 예정부지 ⓒ양수남
초지대의 오염되지 않은 풀을 먹고 자란 소가 똥을 싼 곳에만 서식하는, 멸종위기야생동식물인 애기뿔소똥구리의 집단 서식지이기도 하다. 멀리는 조선시대부터 지역주민들은 마소를 키우며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고 동시에 뭇생명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초지대 생태계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소유권은 주민이 아니라 제주도에 있다. 공유지라는 얘기다. 실소유주처럼 조선시대부터 이곳을 관리해온 마을주민들의 권리가 전혀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현재 이 사안은 소송 중에 있다)하지만, 제주도는 공동목장 실소유주에 대한 소송이 진행중임에도 불구하고 상가리관광지조성사업을 추진중인 청봉인베스트먼트에 상가리공동목장을 매각할 방침이다. 상가리 관광지 조성은 상가리공동목장 44만㎡ 부지에 사업비 2000억원을 들여 한류문화복합시설을 짓는 사업이다.

이처럼 상가리 관광지 조성사업은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에서도 주민협의 부족, 입지 부적정성 등의 이유로 두 차례나 재심의 결정을 내렸었다. 하지만 2015년 4월17일 열린 상가리관광지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 세 번째 회의에서 제주도의 도를 넘는 월권으로 결국 통과되고 말았다. 논란이 불거지자 원희룡지사가 일단 도의회에 안 넘기겠다고 밝히면서 소강상태이기는 하지만 도의회로 넘기는 것은 시점의 문제일 뿐이라는 관측이 많다. 

# 상가리공동목장에서 뢴을 상상하라

상가리공동목장이 여론의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이곳이 앞으로 제주도가 취할 중산간 보전·개발정책의 잣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취임사에서 산록도로 위쪽은 개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원희룡지사이다. 상가리공동목장은 중산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공동목장이다. 오랜세월, 주민들과 함께해온 상가리공동목장과 목축문화를 없애고 대규모 위락시설로 개발된다면 사실상, 중산간에서 개발 못할 곳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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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뢴 지역. 뢴은 제주도의 중산간과 비슷한 풍경을 갖고있다. ⓒ 제종길
이제라도 제주도는 방향을 돌려 새로운 제주미래비전을 정책으로 보여줘야 한다. 상가리공동목장을 없앤 자리에 대규모 위락단지를 만들것이 아니라 이곳의 장점을 살려 새로운 꿈을 그릴 수 있다. 상가리공동목장의 경우, 한라산국립공원과 인접한 중산간 최고높이에서 키우는 ‘소’라는 상징성이 있다. 애기뿔소똥구리가 서식할 정도로 환경성이 좋은 초지대라는 장점도 있다.  더욱이 이곳은 생물권보전지역이라는 큰 이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청정이미지와 생물권보전지역이라는 브랜드를 활용하여 상가리공동목장 친환경축산물 브랜드를 제주도의 지원으로 마을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상가리공동목장은 제주도가 소유권자라는 점에서 충분히 가능성 있는 그림이다. 물론, 이것은 상가리공동목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상가리공동목장으로 상징되는 제주도내 중산간 마을공동목장과 벵듸와 초지대를 말함이다. 

또한 이 공간에 담겨있는 목축문화의 보전과 활용도 필요하다. 마을공동목장에서 이뤄진 대표적인 제주 목축전통은 방앳불 놓기와 윤환방목, 낙인, 백중제, 상산 방목, 바령밭, 번쉐, 멤쉐, 밭 고르치기, 말 모는 소리, 잣성 등으로서 보전하고 자원화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바다에 해녀가 있었다면 중산간에는 테우리가 있었다. 하지만 테우리도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질 위기에 있다. 결국 공동목장이 사라지면 테우리를 포함한 제주도의 목축문화가 소멸 되어감을 의미하며 이것은 제주도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의 ‘뢴’생물권보전지역과 제주도의 공동목장을 포함한 중산간 경관은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제주도는 화산섬이 갖고있는 더 아름답고 독특한 중산간의 경관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제주도 중산간 지대에서 ‘뢴’을 상상할 수는 없는 걸까? 자연적 조건은 비슷하지만 자치단체의 철학과 의지가 달랐기 때문에 전혀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면 이것을 바꿀 수는 없는 걸까?

친환경축산물 브랜드뿐만 아니라 상가리공동목장과 주변 풍경도 충분히 생태관광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수림이 풍부한 바리메오름, 노꼬메오름, 궷물오름 생태기행과 함께 상가리공동목장의 목축문화를 경험하는 것도 좋은 생태관광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제주목축문화역사관을 만들어서 관광객들과 도민들이 제주목축문화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다면 더 좋은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프로그램과 함께 지역의 축산물·농산물판매와 연계하여 소득원을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보전과 이용 시스템을 상가리공동목장뿐만 아니라 도내 마을공동목장 전역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서 한 군데를 하는 것보다는 중산간 전체 공동목장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제주도는 지원을 하고 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형식이어야 한다. 먼저, 상가리공동목장에서부터 ‘뢴’을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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