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외항진입로·화북천정비사업으로 훼손우려…보전대책 시급

4.3당시 토벌대에 의해 29명이 몰살 당하고 마을 마저 불에 태워져 초토화 돼버린 '4.3 초토화 마을'인 제주시 화북동 곤을동 4.3유적지가 제주외항 진입도로 공사와 화북천 하천정비계획에 의해 또 다시 크게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제주시는 오현고 우측 진입로에서부터 제주외항을 잇는 폭 35m의 제주외항 진입로 공사를 시행할 방침으로 지난 2002년 4월 기본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하지만 이 진입로 공사과정에서 화북천 하류에 있는 4.3당시 토벌대에 의해 초토화 된 '곤을동 마을' 유적지가 포함돼 4.3유적지가 크게 훼손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와 함께 제주시는 화북천 하천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제2 거로교에서부터 화북천을 지나 바닷가까지 하천을 정비할 계획으로 이 하천정비계획으로 인해 역시 곤을동 유적지가 훼손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초토화된 곤을동

▲ 4.3 해원상생굿.
1949년 1월 4일 일시에 들이닥친 토벌대에 의해 골을동 마을 주민 대부분이 학살당하고 가옥마저 완전히 불에 타버린 곤을동 사건의 원인은 정확치 않다. 생존해 있는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만 할 뿐이다. 그만큼 곤을동 주민들이 토벌대에 의해 학살당한 데는 너무나 억울한 사연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생존에 있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요약하면 무장대에 의해 화북지서가 습격을 당하고, 토벌대의 차를 부셔버린 무장대 중 한 명이 곤을동으로 도망친 데 대한 보복으로 추정될 뿐이다. 그러나 도망친 무장대도 곤을동 주민은 아니었다.

1949년 1월 4일 오후 서너시쯤 군인 1개 소개가 곤을동을 포위하고는 누런 군복을 입은 토벌대가 서서히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안고을과 가운데고을로 들어간 토벌대는 집어 있는 주민들을 무조건 나오게 한 후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10명을 곤을동 바닷가에 세운 후 아무런 이유도 없어 총살 시켜 버렸다. 그리고는 안고을과 가운데고을을 하나도 남김 없이 불태워 버렸다.

토벌대는 나머지 남자어른들은 줄로 묶어서 당시 지서가 있던 화북초등학교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연대밑 바닷가에서 총살시켜 버렸다. 주민들의 기억을 종합하면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이틀사이에 곤을동에서 총살당한 주민은 29명. 3명은 여자였고 나머지 26명은 전부 남자였다.

당시 난리통에서 겨우 목숨은 건진 안명호씨는 그 당시를 이렇게 증언했다.

"원 원! 시벌겋게 집 하다도 없어. 하늘이 싯벌겋게 됐었지. 집이 벌겋게 밤잦 불 붙었어. 사람도 죽고 불도 붙었고. 그러니까 그곳에 사람이 없어져 버린 거라…(제주4.3유적기 기행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 중)"

제주도내에 산재해 있는 4.3관련 유적지 중 화북 곤을동은 4.3당시 원형이 거의 잘 보전된 몇 안 되는 유적지 중 하나로 외항진입로와 하천정비 공사가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상당한 훼손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4.3당시 곤을동은 약 70여호 가호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며 화북천을 경계로 하천 안쪽에 안고을(22호), 하천 사이의 가운데고을(17호), 그리고 동고을(28호)로 이뤄진 마을로 1949년 1월4일 불시에 들이닥친 토벌대에 의해 가옥이 완전히 불에 타 없어지고, 29명의 주민이 총살을 당하는 참담한 비극을 겪은, 지금까지 복구되지 않은 채 완전히 잃어버린 마을로 전락해 있는 실정이다.

곤을동 마을은 비록 불에 타 완전히 없어졌으나 지금도 각 집의 경계를 가르는 돌담이 뚜렷이 남아 있어 누가 봐도 이 곳이 과거에 마을이 있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지금은 억새풀만 무성히 자라있으며 공사를 위해 측량을 표시해 놓은 빨간 색의 깃발만 나부끼고 있다.

제주도가 제주4.3연구소에 의뢰해 4.3유적지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곤을동 유적지의 보전필요성을 강하게 지적했다.

4.3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곤을동은 제주시 중심과 인접해 있는 해안마을이면서도 군경토벌대의 초토화작전으로 모은 것을 빼앗겨 잃어버린 마을의 상징이 된 마을"이라면서 "곤을동에는 지금도 당시 마을 흔적이 비교적 잘 남아 있으며, 곤을동 출신 생존자들은 마을 복구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4.3연구소는 "당국에서는 이 마을에 대해 심층조사를 벌이고, 원주민들과 협의해 더 훼손이 되지 않도록 '현상을 보존'하던지, 아니면 마을을 '옛모습대로 복원'해 4.3평화공원과 연계한 인권교육의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곳 곤을동에서는 제주4.3 56주기를 맞은 지난 5일 제주민예총 주관으로 4.3당시 억울하게 숨진 원혼들을 해원하기 위한 4.3 해원상생굿이 칠머리당굿보존회에 의해 봉행됐으며, 민예총은 이곳에 방사탑과 '4.3해원상생거욱대'을 세우기도 했다.

▲ 4.3 해원상생 거욱대.
장윤식 제주4.3연구소 연구원은 "모든 4.3유족지가 그렇지만 곤을동은 곤을동 주민들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자 당시의 아픈 흔적이 고스란히 보전돼 있는 곳"이라면서 "아무리 공사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아무런 조치 없이 역사현장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장 연구원은 "제주시는 우선 유족과 관련 단체들에게 이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설명을 하는 한편, 유적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전방안을 먼저 강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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