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금’ 제주를 바꾸려는가? 대한민국을 바꾸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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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16일 제주시 관덕정에서 제주지사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원희룡 지사 ⓒ제주의소리
“제주를 바꾸고, 그 힘으로 대한민국을 바꾸겠습니다”

2014년 3월16일 관덕정. 쉰을 갓 넘긴 ‘정치인 원희룡’의 도지사 출마 일성은 패기가 넘쳤다. 각자도생(各自圖生)하라! 권력의 무게추가 이동한 후 당 지도부에 의해 떠밀린 사람 답지않게(?) 결기가 느껴졌다. 비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제주’ 보다는 ‘대한민국’이란 낱말에 필이 더 꽂혔다. 아니,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금의환향(錦衣還鄕)은 아니었지만, 반응은 대단했다. 열렬한 환대는 표로 나타났다. 59.67%. 제주도지사 선거 사상 최고 득표율이었다. 해석은 두 가지였다. 상대가 너무 약하거나(혹은 그가 너무 세거나), 도민이 그를 통해 뭔가를 갈구하고 있거나. 나는 후자로 봤다. 

도민들은 어땠을까? 나열하기도 힘든, 20년에 걸친 ‘제주판 3김’의 폐해를 씻어줄 적임자로 여겼을 것이다. 60%에 가까운 득표율이 말해준다. 젊기도 하거니와, 판을 뒤엎을 강타자라는 방증이기도 했다.   

“더 큰 제주, 새로운 성장의 제주도가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하나된 제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고, 세계를 향하라는 도민의 기대와 꿈을 잘 알고 있습니다”

원 지사는 취임사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도로 개설→OO건립→OO유치 등으로 변천한 하드웨어적 공약에 익숙한 제주사회에 ‘자연, 문화, 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통찰에 의한 철학이 깃든 것처럼 보였다.

호기롭던 원희룡 지사, 지금 어디에...

이러한 도정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경제체제 재설계 △선별적 투자유치 △투기자본, 난개발 엄격 대응 △강정의 아픔 치유 △수평적 협치 △편가르기, 연고주의 배격 등을 주창했다.

어느덧 1년이 지났다. 호기롭던 원희룡 도정은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원희룡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서울(대권)만 바라보면서 이미지 정치에 기대고 있다”

양 극단의 평가를 배제할 경우, 주변의 대체적인 반응은 ‘아쉽다’로 요약된다. ‘관덕정의 원희룡’을 그리워한다면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다.

몇 가지 짚어보자.

도민과 권력을 나누겠다는 협치는 한차례 홍역 끝에 주눅이 들었는지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협치는 구호가 아니라 일상에서의 기능 작동의 문제라는 점을 간과한 건 아닌지 되새겨볼 일이다. 원 지사 자신도 29일 “협치가 기대 만큼 됐느냐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부족하지 않으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고백했다.

‘투기자본 대응’은 차이나머니 앞에서 주춤거렸다. 일정한 거리를 뒀던 카지노는 또 어떤가?  ‘난개발 방지’는 상가리관광지 등으로 인해 기준이 모호해졌다.  

강정 주민들은 시간과도 싸움을 벌이고 있다. 8년여를 버텼는데, 원 도정은 더 기다리라는 듯 말이 없다.

제주 신항은 소통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원 지사도 일부 인정했다. 나는 그보다는 방대한 바다를 메워 도대체 뭘 어쩌자는 심산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20여년전 ‘먹돌의 경고’를 모를리 없을 텐데 말이다. 다음과 같은 전제가 있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바로 사회적 합의다. 그 일대 어민 만이 아닌. 탑동은 온 도민-후세까지 아우른-의 것이기 때문이다.

백년대계라면서 자고나면(?) 구상이 바뀌었다. 수조원의 국비를 따낼 절호의 기회로 봤다면, ‘어머니의 땅’ ‘삶의 근본’을 부르짖었던 ‘관덕정의 원희룡’ 답지 않은 발상이다.

원 도정의 구호는 대부분 거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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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소통, 협치의 문제

예산전쟁으로 번진 예산개혁이 그랬고, 감귤 구조조정과 농지기능 강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거창한 구호를 탓할 일은 아니다. 명분은 그럴듯했다. 발상도 참신했다.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 감귤의 미래는 없다거나, 경자유전 원칙에 입각한 ‘법대로 정책’ 자체에 누가 돌을 던진단 말인가?

정교함이 떨어진게 아쉬웠다. 예상되는 문제, 보완대책까지 동시에 세웠어야 했다. 하루아침에 관례를 깨기란 여간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반발이 따르자 제주도는 “완벽히 갖춘 뒤 시행하는 정책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했다.   

이해는 가나, 그래서 더더욱 소통이 필요했다. 결국 본질은 정교함이 아니라 소통, 즉 협치의 문제였다. 좀 깨지고 더디가면 어떤가? 어차피 ‘그들’을 안고가야 할 사안이다. 

원 도정에 대한 도민 평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민심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통계가 하나 있다. JTBC와 리얼미터가 매월 실시하는 ‘직무수행 지지도’ 설문조사다. 출발은 무난했다. 지난해 10월에는 65.5%로, 전국 17개 시·도지사 중 1위에 올랐다.  

올 4월까지도 양호했다. 1월 56.7%, 3월 56.9%, 4월 52.4%로 줄곧 50%대를 유지했다. 그러더니 5월(49.4%)에 처음으로 50% 밑으로 떨어졌다. (제주의소리 6월9일자 ‘원희룡 직무수행 지지도 49.4%’ 참조)  

원희룡이 누군가? 홀연히 나타났지만, 기대가 컸을 것이다. 원희룡이라고 다를까? 1년이 흐르도록 그만한 뭔가를 보여주지 못하자 실망도 컸으리라. 

100% 동감하기 어렵지만, 혹자는 원 지사의 지지율 하락 원인을 대권 행보에서 찾는다. 중국자본이 대표적이다. ‘대권주자가 외국자본의 국내 투자를 막는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치명적’이라는 얘기다. 그것도 글로벌시대에.

대권 행보를 운운하는 이들은 여당 소속 도지사로서 ‘운신의 폭’을 거론하기도 한다. 복합리조트, 카지노, 영리병원, 해군기지 등은 정부, 여당과 달리가기 쉽지 않은 사안이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1년 성적표, 아직 봐줄만...‘현실직시’ 중요

제주도민으로서 원 지사의 대권 도전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변방’(?)의 자치를 발판으로 국가적 리더로 성장한다면 헌정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하나, 전제가 있다. 현재 발을 딛고 선 곳이 어디인가를 냉정히 깨달아야 한다. 자치단체를 잘 이끌어야 대권도 가능하다.

다시 ‘관덕정의 원희룡’으로 돌아가보자.

“제주를 바꾸고, 그 힘으로 대한민국을 바꾸겠습니다”

맞다. 제주를 바꾸지 않는 한 대한민국을 바꾸지 못한다. 그런 ‘힘’이 생길리 만무하다. ‘지금’ 원 지사는 제주를 바꾸려는가, 대한민국을 바꾸려는가?

야박하다 여길 필요가 없다. 역대 도정과 비교하면 이만한 성적도 괜찮은 편이다. 여전히 원 지사에 대한 기대는 높다. 좀 더 지켜보자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제주 사회의 변화를 위한 의제 설정도 나쁘지 않다. 원 지사 자신도 젊고 진보적이다. 각종 연고에 포위된 과거 도정처럼, 얽매일 그 무엇도 없지 않은가?

“요즘 원 도정 어떻게 보십니까?”

즉석 질문에 대한 지인의 대답이 긴 여운을 남겼다.

“과거 도정은 뻔했습니다. 일관되게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볼 것도 없고, 그래서 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가령 어떤 현안에 대처하는 도정의 태도에 있어서 물어보나마나 예상한대로 가는 식이었죠. 원희룡 도정은 다릅니다. 특정 사안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이겁니다. 나중에 실망하는 부분도 있지만. 이것도 변화라면 변화 아닌가요?”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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