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그놈아만 와 이리 좋게 됐노”

원내대표 찍어내기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결국 물러났다. 국무회의 공개석상에서 ‘배신자’의 낙인이 찍힌 후 불과 13일만이다. 노한 대통령의 심기는 초입에 선 한 여름의 무더위를 일거에 얼어붙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백 육십 명의 콧대 높은 여당 의원들이 일사불란하게 그 분의 추상같은 영을 받들어 유 원내대표의 사퇴권고안을 가결시켰다.

윗분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이 남달라서 국회의원들이 된 것인지 자신들이 투표로 선출한 원내대표를 물러서게 하는데 표결이 아닌 박수로 결정했다.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을까. 사퇴이유가 대통령이 화를 냈다는 것 때문인가. 그 바람에 모양새가 사임이 아니라 찍어내기가 돼 버렸다. 한 논객은 “마치 북한식 인민재판을 보는 듯 했다”고 말했다. '누워서 침 뱉기'가 따로 없었다.

사감(私感)의 국정

조폭영화에서나 보던 의리와 배신이 민주국가 국무회의 석상에서 국정보다 더 중요한 의제처럼 힘주어 언급된 것도 어이없었다. 세월호 유족들의 고통과 절규를 입막음하며 창조경제와 민생경제를 그토록 내세웠던 정부였다. 이젠 민생경제보다 사감(私感)이 더 중요하게 됐는지. 정치(政治)가 아니라 정치(情治)를 하는 유치한 정치판이 한심스럽다.

여당의 원내대표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문제의 국회법 개정안은 여당 의원총회에서도 충분히 논의됐고, 여야의원들의 압도적 찬성으로 본회의를 통과됐다. 대통령의 마음이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을 읽은 것이 잘못일까. 그래서 그의 사퇴를 반대하는 국민들의 여론도 훨씬 높았다. 민주국가라면 국민을 이기는 대통령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머리를 굽히지 않았다.

자발적 순망치한(脣亡齒寒)

그리고 입만 열면 민의를 받든다고 떠드는 여당. 정작 그들은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만을 받들었다. 자신들도 함께 동의한 국회법 개정안이다. 당연히 자신들의 정치적 판단과 행위에 소신을 가져야 하고 책임을 져야 했다. 자신들의 책임을 다른 애꿎은 사람에게 떠넘기는 모습이 얍삽하고 비굴해 보였다.

이번 사태의 승자는 단연 대통령이다. 연달은 대형사고와 무능한 대처로 초고속 ‘레임덕’을 우려하던 실정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하던 당대표까지 대통령의 일갈에 벌벌 떨며 이른바 ‘순망치한(脣亡齒寒)’이었던 원내대표를 자진해서 끌어 내리기에 앞장섰으니 말이다. 떠나는 원내대표를 포옹하며 건넸던 당대표의 위로의 ‘덕담’은 이번 사태로 형편없이 쪼그라든 그의 초라한 처지를 그대로 드러냈다.

“우리가 와 이래 됐노”

순교자가 되는 법

하지만 그리 된 건 그만의 몫이었다. ‘사즉필생(死卽必生), 생즉필사(生卽必死)’는 괜한 말이 아니었다. 혼자만 살려고 바둥대는 자는 죽고, 기꺼이 죽으려 하는 자는 살아남는 법이다. 이번 사태의 결과는 이러한 승자와 패자의 역설을 여실히 입증했다. 유 의원이 당대표를 물리치고 여당내 차기 대권주자에서 단박에 선두로 등극한 것이다. 또 다른 그는 남 몰래 이렇게 자문(自問)하지 않았을까.

“그놈아만 와 이리 좋게 됐노?”

‘순교자의 법칙’엔 그의 전형적 수법인 ‘악어의 눈물’도 통하지 않았다. 작가 조지 오웰은 순교자란 자신의 진실한 신념을 포기하는 대신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물러난 원내대표는 가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사퇴의 단두대에 선 그의 표정만큼은 장렬했다.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는...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입니다.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친절한 항변

어느 정치평론가는 그의 사퇴의 변이 새로운 출사표로 들렸다고 평했다. 그러나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 드디어 찍어내기에 성공한 것에 은밀한 회심의 미소를 짓던 친위부대들이 발끈했다. 원내대표의 사퇴의 변이 선문답 같았던지, 그들의 항변은 우둔한 필자의 수준으로도 행간(行間)의 숨은 뜻까지 알기 쉽게 풀이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면 우리가 법도 원칙도 지키지 않았고 정의롭지도 않았다는 것인가”

중세에서나 자행되던 마녀사냥 식 종교재판이 또 다른 정치인 순교자를 잉태한 것일까. 오웰은 신념을 끝까지 지킨 희생자들에게는 결국 영광이 돌아갔고 그에게 화형을 선고한 재판관에게는 비난만 퍼부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 의원이 진정 순교자일까. 지난 2주일간 그가 보여준 것은 대통령의 분노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모습이었다. 대통령에게 사과를 하는 그의 허리는 90도로 숙여 있었다.

요원한 세월호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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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그가 순교자로 각광받는 현실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지조 있는 지도층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그 똑똑한 정치인들이 이렇게 단순한 진리를 모를 리 만무하다. 그러나 현재의 우물 안 권력은 포기하기엔 너무나 달콤한 반면, 미래의 큰 꿈을 위한 모험은 너무나 위험스럽고 두렵기만 하다. 그리고 제사보다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순교 아닌 순교는 또 다른 ‘악어의 눈물’일 뿐이다.

우리 정치판이 이러할 진데,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올바른 시행령을 마련하는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누가 말했는가. 메르스 같은 역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자신밖에 모르는 정치인들이라고.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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