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62) 그때 그 노래 / 장기하와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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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집 / 장기하와 얼굴들 (2011)

봄여름가을겨울은 완벽한 운율이다. 아침점심저녁은 3음보의 음보율을 보인다. 외형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름이나 사람의 마음에도 내재율이 있다. 시와 삶에는 운율이 있다. 가락(리듬)이 있어서 시는 음악성이 있다. 좋은 시는 좋은 노래로 만들기 좋다. 시를 읽을 때 낭독이라고도 하지만 낭송이라 하는 것도 시의 음악성이 있어서 가능하다. 힙합에 주로 등장하는 라임은 시의 각운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시를 악보 없는 음악이라고 어떤 시인이 말했다. 그 시인은 기타를 치지 못해 시를 쓴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 시인은 첫 시집 제목을 ‘지구 레코드’라고 할 정도로 음악을 시보다 상위어로 둔다. 오해할까봐 말하는데 음악의 상위어에는 시는 없지만 ‘시적’이 있다고 그가 말했다. 강가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내재율을 느낄 수 있다. 시적이다. 운율만 있다고 해서 또 시적인 것은 아니다. 삶의 의미를 보여줘야 한다. 근사한 영화는 시적이다. 때론 아주 시적인 노랫말을 만나기도 한다.‘산울림’의‘너의 의미’, ‘동물원’의 ‘잊혀지는 것’,‘브로콜리너마저’의 ‘앵콜 요청 금지’,‘가을방학’의 ‘한낮의 천문학’, ‘짙은’의 ‘고래’등. 그 중에서‘장기하와 얼굴들’의 ‘그때 그 노래’도 시적이다. ‘알고 보니 나는 오래된 예배당 천장을 죄다 메꿔야 하는 페인트장이였구나’하는 표현은 추억의 아픔이라는 정체성을 승화시키는 근사한 장면이다. 더욱이 거의 그냥 말하는 것에 가까운 장기하의 읊조리기 창법은 한 편의 시를 읽는 것과 같아서. 브레히트의 시‘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는 각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해서 시적인 것을 찾는지도 모른다. 1993년‘한국수필’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는 박근혜 수필가는 문단으로 치면 나의 선배니 한 마디 하겠다. 선배님, 문학은 곧 삶의 반영인데 그렇게 삶의 의미도 모르고 전혀 시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니 후배로서 참 부끄럽습니다. 화법은 왜 그 모양입니까.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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