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강남에 테헤란 로(路)가 있듯이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도 서울 로가 있다. 우리나라의 중동 건설 붐이 불고 있던 1977년, 양 도시의 자매결연을 추진하며 붙였던 이름이다. 당시의 이란은 친미적인 팔레비 왕조(1925-1979)가 집권하고 있었다.

미국과 이란이 적대국으로 변한 것은 이란이 왕정에서 공화국으로 바뀌는 1979년부터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지금 역사가 다시 바뀌고 있다. 지난 14일 P5+1, 즉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다섯 나라(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와 독일은 이란과 중요한 약속을 교환했다.

요약하자면, 이란은 우라늄 원심분리기의 숫자를 대폭 줄이고 농축우라늄도 핵무기로 사용할 수 없는 아주 낮은 농도의 것만을 만들기로 약속했고 이를 검증하기 위한 국제사찰단의 활동을 무제한 허용하기로 했으며 이에 대해 서방측은 그 동안 동결되었던 이란의 해외 재산을 풀어주고 무역과 투자도 단계적으로 재개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이란의 약속이 최장 15년에 걸친 것일 뿐이고 중도에 약속을 저버리더라도 응징할 장치가 없으므로 이번 협상의 성과는 이란 핵 무장의 시기를 늦춘 데 있을 뿐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견해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란과 국제사회의 사이가 벌어진 것은 핵 문제 보다 훨씬 이전에 석유산업의 이권을 둘러싼 다툼이 발단이었다.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수상을 선거로 뽑던 시기에 1951년 수상으로 선출된 무하마드 모사데크가 이란의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는 법을 의회에서 통과시키자 이란 군대의 일부가 봉기하여 정부군을 무찌르고 모사데크를 반역 혐의로 체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영국의 MI 6 및 미국의 CIA가 이들을 도왔는데 그것은 이란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며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늦추어진 이란 핵 무장

이때로부터 1979년 이란 혁명까지 장장 20여 년 동안 팔레비 왕조는 석유산업을 외국 업체에 개방하였고 전제군주로 탈바꿈 하면서 종교지도자 호메이니를 투옥하고 비밀경찰을 앞세워 대내적으로 공포정치를 자행함으로써 스스로 왕정 몰락과 반미의 싹을 키웠다.

이란의 문제가 핵무기 개발의 문제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우라늄 농축 중단을 요구하는 유엔에 대해 이란이 핵의 평화적 개발의 권리를 주장하며 불응하는 과정에서 2006년 유엔 결의문을 채택하면서부터다.

이란은 북으로 카스피 해, 남으로 인도양을 접하는 큰 면적(한반도의 7.5배)의 나라다. 원유와 가스는 각각 세계 4위와 2위의 보유국이다. 중동 어느 나라보다 교육 수준이 높아 하산 로하니 내각에는 미국의 오바마 내각보다 미국 박사학위 소지자가 더 많다.

이번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는 크다. 1천억 달러가 넘는 해외 동결자산이 풀리고 원유 수출이 재개되면 한동안 연 8% 이상의 경제성장 이 가능해 10년 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를 추월할 수 있을 것이고 이란-터키-유럽을 연결하는 가스관을 설치하면 유럽의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대폭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금지되었던 외국 자본의 대 이란 투자가 재개되면 이란의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개방이 뒤 따르게 되고 내년의 총선 및 2017년의 대선에서 로하니가 이끄는 중도파가 승리하여 이란의 변화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을 기대하기도 한다.

중동의 힘의 균형 흔들릴 것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중동의 힘의 균형에서 발생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전세계에 이슬람 종교 보급을 위해 물질적 지주로 자처함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슬람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 종교운동이 와하비즘(Wahhabism)인데 그 시조 와하브와 사우디 왕가의 유대는 15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와하비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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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이러한 사우디의 금전적 지원의 일부가 알 카에다, 심지어 "IS"(이라크-시리아 국경을 중심으로 이라크와 시리아의 일부씩을 장악하고 있는 자칭 이슬람 국가)와 같은 국제 테러리스트 단체에게도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정황이 없지 않았다. 전직 CIA 요원 로버트 베어는 워싱턴과 사우디 왕가와의 거래를 악마와의 동침이라고 불렀다(2003년 그의 책 제목).

이제까지 사우디 왕가와 미국과의 공존의 구도에 이란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게 되었다. 2009년 1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란이 주먹을 펴면 우리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할 것"이라고 말한 이후 이번의 협상으로 그 첫 악수가 이루어졌다. 핵보다 더 큰 의미가 여기에 있다. /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

* 이 글은 <내일신문> 7월 22일자 '김국주의 세계경제' 에 게재됐습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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