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혁 칼럼] 곶자왈은 어디에서 온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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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 곶자왈. ⓒ양기혁
한때는 경작이 불가능해서 원시림 상태의 황무지로 방치되기도 했던 곶자왈이 이제는 우리가 소중하게 보존해야할 자원으로 그 생태환경적 중요성이 크게 부각됐다. 토양의 특성이나 거기에 자라는 식생의 분포와 같은 지질학적 생물학적 연구가 학자들과 공공기관에서 깊이 있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매우 특이한 제주어인 이 단어가 갖는 의미와 그것이 어떻게 생겨난 말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가 부족하고, 잘못된 해석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었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곶자왈의 의미에 대해서 제주어 사전이나 인터넷 검색에 나오는 해석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켜 있는 수풀’, ‘원시림을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 ‘숲을 뜻하는 ’곶’과 자갈을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인 ‘자왈’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 정도로 나타나고 있고, 자왈이 덤불을 뜻하는 사투리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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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 안내 표지판에 씌어진 곶자왈 풀이.

대부분의 방언들이 어원적으로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감안해도 이런 해석은 일부는 맞지만, 매우 부실하고 엉터리라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제주어 사전에서는 곶자왈이 ‘곶’과 ‘자왈’의 합성어로 보고 있으며, 그래서 자왈이 자갈, 혹은 덤불의 사투리라는 잘못된 해석이 나온 것 같다.

우선 자갈의 제주 사투리는 ‘자왈’이 아니라 ‘작지’라는 말이 쓰였고, 작지가 자왈로 변했다고 볼 근거는 전혀 없다. 작지는 예전부터 폭넓게 쓰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러 지명에서 나타나고, 일상의 대화에서도 쓰이는 단어다. 제주시 내도동 바닷가에 매끈한 돌멩이들이 깔린 해변은 ‘알작지’로 불리고, 한라산 윗세오름 아래쪽 아마도 화산 폭발로 생겨났음직한 돌들이 쌓여있는 곳은 ‘선작지왓’으로 한라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지명이다. 자왈이 덤불의 제주 사투리라는 것도 내 생각으로는 전혀 근거가 없는 잘못된 해석으로 본다.
  
나는 ‘곶자왈’이 ‘곶’과 ‘자왈’의 합성어가 아니라 ‘곶’과 ‘왈’이 결합한 단어이고, 왈은 왓의 변형된 형태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곶자왈의  원래 형태는 ‘곶왓’이며, 곶의 ㅈ받침이 왓과 연결되면서 아무 의미없이 발음상의 필요에 의해서 ‘자’가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왓’은 표준어 밭의 변형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한글 고어에서 쓰이던 ‘순경음 ㅂ’ 혹은 ‘가벼운 ㅂ’이라고 하는 ‘ㅸ’이 와/워로 바뀌는 현상이 제주어에 나타난 것으로 표준어에서는 보통 형용사에서 주로 보이는 것들이다. ‘춥다’가 ‘추워’로, ‘곱다’가 ‘고와’로 변하는 예가 있는데, ‘밭’ 앞에 새(억새), 빌레, 작지 같은 단어가 붙으면서 밭의 ㅂ이 순경음화 하여 새왓, 빌레왓, 작지왓으로 변했다. 밭이 앞에 다른 단어와 합성되는 경우에 ‘왓’이 아니라 ‘왈’로 변한 특수한 예가 곶자왈인 것이다.

새왓, 빌레왓, 작지왓등에서 쓰이는 왓은 작물을 경작하는 농토로서의 의미보다는 장소나 지역을 가리킨다. 억새가 많이 자라는 곳을 새왓으로, 암석이 넓게 분포하거나 자갈투성이의 땅을 빌레왓과 작지왓으로 불렸다. 같은 이치로 곶자왈의 원래 형태가 ‘곶’과 ‘왓’이 결합한 곶왓이라면 그 의미는 단순히 ‘숲이 우거진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원시림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라는 사전의 뜻풀이는 옳다고 볼 수 있다.

곶자왈의 ‘왈’이 ‘왓’의 특수하게 변형된 형태라는 것은 단순히 가설로 추정할 뿐, 국어나 제주어를 깊이 있게 공부한 학자가 아닌, 감귤 농사를 짓는 필부에 지나지 않는 나로서는 학술적으로 체계적인 논증을 할 능력이 없고, 엄정한 학문적인 검증을 요구하는 작업은 제주어 전문기관이나 학자들의 몫으로 앞으로의 연구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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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기혁.
필자 양기혁은 서귀포 출신으로 고등학생 때 상경해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바쁘게 살다 중년에 접어들자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방송통신대 중문과에 입학해 중국어를 공부했다. 이왕 공부한 김에 중국 횡단 여행까지 다녀와 <노자가 서쪽으로간 까닭은?>이라는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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