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시 한 편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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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레코드>(65) 유예 / 9와 숫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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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예 / 9와 숫자들 (2012)

시적인 노랫말을 만나면 몸이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어떤 가사는 시라고 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시보다 몇 배 더 나은 노랫말도 흔하디흔하다. 시에는 내재율이 있고 시는 곧 음악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아름다운 악보 앞에서 초라해진다. ‘산울림’의 노래 ‘너의 의미’에서 ‘슬픔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고’와 같은 절창의 구절은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에서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빛나는 비유인 걸. ‘9와 숫자들’의 노래 ‘문학소년’을 들어보면 쉽게 눈치 챌 수 있듯 그들의 노랫말은 한 편의 시다. 지루한 기타 리프엔 별로 흥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노래 ‘유예’와 잘 어울린다. ‘연체되었네’, ‘유예되었네’, ‘작은 종달새가 되고 말았네’ 따위의 체념하는 어조는 단념한 사람들의 공원 벤치에 비치는 햇빛을 지지한다. 지고 말았네, 떠나고 말았네, 끝나고 말았네, 헤어지고 말았네, 울고 말았네……. 송재경이 건조한 목소리로 ‘연체되었네’라고 읊조릴 때는 연체료와 강등된 신용등급으로 다가와 꿈과는 점점 서먹서먹한 관계로 발전한다.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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