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의 또 다른 이야기> 
우리의 미래전략은 ‘제주사람의 삶’을 지키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노력이어야 합니다.

미래는 의지의 산물
꿈이 없는 삶은 삭막합니다. 꿈은 일상의 고달픔을 견디게 하는 희망의 다른 언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칫 발밑의 땅과 자기 자신의 현실에 눈멀게 합니다. 그럴 때 꿈은 언제나 몽매가 됩니다. 이게 바로 꿈을 이야기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입니다.


우리의 미래전략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미래는 ‘우리의 의지’속에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 하는 기획과 노력에 따라 우리들의 내일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사회의 현실을 무시한 ‘정치적 설계’가 지나치게 강조될 때는 미래의 실효성은 상실되고, 별개의 기능과 별개의 의미로 전락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건 우리들의 실존적 경험입니다.

미래전략의 새로운 구성을 위해서도 ‘우리의 의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것은 현재를 바라보는 의식의 총합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들의 마음에 남겨놓은 흔적입니다. 그것은 매우 복합적입니다. 제주의 바람직한 미래를 열망하는 우리들의 의지가 마치 미래와 틈 없이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엔 현재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의 사고와 느낌과 감정이 어우러져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편협한 신념으로 굳어진 즉물적인 시선으로는 결국 아무 것도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도 마찬가집니다. 그건 우리의 문화 속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호흡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시대, 나의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가 부여해준 결과로 그냥 이곳에 주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확인되는 것이지, 밖에서 설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미래전략은 우리 속에 있는, 혹 있을지도 모를 의식과 가치의 흔적을 찾아내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들을 규율하고 있는 허위의식을 확인하고, 미래 새 삶의 비전을 열어 줄 원리를 창안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수척해진 자연과 인심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과거보다 생활이 좀 나아졌다고 하여 과연 오늘 우리 지역사회의 건강성이 좋아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새로운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과 같은 질적인 변화는 가능하기나 한가? 어렵습니다. 일부러 개념을 우회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제 의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지’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우리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추상적 신화의 틈을 헤집고 들어가 그 견고한 허위의식을 읽어내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망설거립니다. 무성한 개념규정과 복잡한 논의는 실상 불신이 낳는 정신소모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목표와 방법에 관한 논의가 없다는 것이 그 지역사회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신뢰를 확인하는 척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고장의 발전 전략이란 게 도정책임자의 즉흥적이고 조급한 판단에 좌우돼 왔기 때문입니다. 그게 우리들의 진정한 위기입니다. 우리 고장의 각종 개발 사업이 오로지 자연 파괴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렇습니다.
▲ 제주의 각종 개발사업이 오로지 자연파괴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실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개발에 대한 수많은 언설이 만들어내는 환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실패의 더 큰 원인은 우리들의 인간이해의 천박함에 있습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실패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진행형으로 표현하는 것은 지금도 도내 곳곳에서 그것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개발에 대한 수많은 언설이 만들어내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따지고 보면 실패의 더 큰 원인은 우리들의 인간이해의 천박함에 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주제넘습니다. 그러나 ‘문화의 높이’는 ‘자연과의 거리’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자연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들의 삶이 거칠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웃과의 의미 있는 관계가 퇴색되고, 난개발로 제주 자연이 날로 수척해 가고…. 아닙니다. 이건 결코 아닙니다. 이런 저의 생각을 더러는 시대착오적으로 치부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한, 경제여건이 좀 나아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불만족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수척해진 게 어디 자연뿐이겠습니까. 더욱 거세게 쇄도하는 외풍이 이 여름만큼이나 뜨겁습니다. 남아 있는 울타리마저 스스로 허물어야 할 난감한 현실입니다. 외래 자본이 들어오면서 더 급속하게 해체돼 가는 것이 바로 ‘제주사람의 정신’입니다. 덩달아 지역사회를 바라보는 사회인식까지 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영역의 변화는 충분히 열중할 수 있는 우리들의 공동의 관심사마저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한 번 우리를 좌절시킵니다. 그러나 오해 없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하여 어설픈 지역폐쇄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연과 함께 하는 미래
짧은 글이라 어차피 많은 것을 담을 수 없습니다. 다만 미래의 바람직한 전략을 구상하는 이 시점에서 주제넘지만 한마디 말을 화두삼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핵심가치가 ‘청정’이든 ‘공존’이든, 우리 고장의 전통을 계승하고, 우리들의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고, 그곳에서 살아온 ‘제주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키울 수 있는 진정한 삶의 고장을 만들 수 없을까하는…. 참으로 제 생각이 부질없기가 이와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중산간에 제주사상 최대의 복합리조트가 개발된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세우기 위해서는 부수어야 합니다. 양(量)을 늘림으로써 질(質)을 높일 수 있다는 그 완고한 허구를 걷어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 우리들의 이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그런 미래를 그려놓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미래전략은 저 한라산과 함께하는 우리의 삶을 지키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노력이어야 합니다. 거창한 전략은 오히려 해롭습니다. 비록 ‘우물 안 개구리’소리를 들을지 모르지만, 욕망의 거품으로부터 진솔한 인간적 가치를 지키는 그런 우물을 새롭게 파냈으면 합니다. ‘좁은 우물’이지만, 그곳에서 삶의 여백을 만들 수 있다면,
▲ 강정홍 언론인.
세상의 넓음을 부러워할 바는 아닌 듯싶습니다. 좌절감을 달래는 제 ‘가난한 마음’탓이 아닙니다. 세상은 그 넓이로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서두의 ‘꿈 이야기’입니다. 꿈과 삶 사이의 간극은 해롭지 않습니다. 만약 꿈꾸는 자가 진지하게 꿈을 생각하고, 삶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자기가 관찰한 바를 꿈속의 환영과 비교하여 아주 양심적으로 꿈의 형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꿈은 미래가 됩니다. 꿈과 삶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존재하고 있다면, 모든 것은 최상의 질서 속에 존재하게 될 터입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꿈이 드믄 게 유감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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