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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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레코드> (68) 시간 / 미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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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ifting / 미선이 (1998)

어렸을 때 놀던 별도천에 오랜만에 가보았다. 수해상습지라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터파기를 하고 흙벽을 허물고 있었다. 오래전에 고은 시인이 머물렀다는 집도 철거 예정이었다. ‘사랑없이 미움없이’ 기억도 많이 허물어지고 있으리라. 포클레인으로 기억을 한 삽만 퍼가도 마음이 허할 텐데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공사를 멈추지 않는다. ‘미선이’는 ‘루시드폴’이 있던 밴드이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아프게 부드러운 음악을 하지만 그때는 둔탁하게 아픈 음악을 하고 있었다. ‘송시’는 암담한 미래를 예언하듯 너무 일찍 송가를 부른다. ‘이제 소리 없이 시간의 바늘이 자꾸만 내 허리를 베어와요’라며 토로하는 스무 살. ‘언니네 이발관’의 ‘유리’를 들으면 2002년의 군산이 떠오른다. 그해 군산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지. 기억에서 데려올 수 있는 건 음악이 유일하다. 그것은 다행이지만 참 슬픈 일. 이 노래는 만난 지 십 년이 지난 백화의 추천곡이기도 하다. 백화와 재준이와 나는 빨간색 마티즈를 타고 전국유랑을 했었다. 고속도로 종점까지 달리기도 했다. 청주 사과밭에서 잠을 자고, 대사관 건물 같은 곳으로 들어가 밤새 음악 얘기만 했다. 홍대 앞 ‘프리 사운드’의 연장선으로 이러저런 음악 얘기를 하며 해운대까지 갔다. 시간이 많이 흘러 ‘루시드폴’은 ‘평범한 사람’을 부르며 시간의 강물에 희석되어 간다. 별도천에서 놀다가 집에 왔을 때 우편함에 있던 편지 한 장 떠오른다. 성북동에 살던 열세 살 소녀 권미현은 애기엄마가 되어 있겠지. 그 펜팔의 마지막 편지는 아마도 우리 시간이 많이 흘러 다시 만나게 된다면…… 뭐 그런 내용이겠지. 서로 땅에 묻었던 타임캡슐도 개봉 시간이 훌쩍 지난 것 같은데……. 근처에서 거의 유일하게 녹슬지 않은 것은 ‘진달래타이머’.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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