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인문학 기자단 '와랑'] 곤을동을 다녀와서 / 김수빈 서귀중앙여중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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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곤을동의 모습. ⓒ 김수빈

지난 8월 30일, 여름의 끝자락에 나는 청소년 인문학 기자단 ‘와랑’ 탐방 취재에 따라갔다. 나는 처음 ‘와랑’이라는 이름만 듣고 마음이 두근거렸다. 현장학습은 학교에서도 해봤지만 인문학 현장에 가서 취재를 하고 글을 쓰고서 신문에 내 글이 올라간다는 것이 마음을 떨리게 했다. 

제주시 문학의집에서 열린 ‘문장강화’ 글쓰기 수업도 받았고,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로부터 기사문 쓰기 교육을 받긴 했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처음 탐방 취재에 함께한 곳은 화북에 있는 곤을동이다. 그곳은 제주 4·3 사건으로 불타 없어져 ‘잃어버린 마을’이라는 안타까운 이름이 붙은 마을이다. 꽤나 많은 가구가 거주했던 곤을동은 1949년 1월 4일과 5일 사이에 불바다가 되고 주민들은 포위당해 학살당한 곳이다. 그런 마을을 폐동이라고 한단다. 끔찍하고 상상하기도 힘든 기억들이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수면에 완전히 잠기지 않은 돌들을 다리삼아 건너 들어선 곤을동은 ‘잃어버린 마을’이라는 이름의 암울한 분위기와는 달리 생각 외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푸른 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시간이 많이 지나 이제는 사람이 살았다고 생각하기는 조금은 힘들게 느낄 수 있을 만큼 자연에 많이 가까웠다. 곤을동에 들어설 때나 들어서기 전이나 곤을동은 아름다웠다.

나는 돌담처럼 보이는 것이 집터인 줄 모르고 그저 돌담이 멋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4·3 때 불타버린 집들의 흔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곤을동에 나 있는 길을 걷는 동안 안타까운 감정이 들어 절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했다.

곤을동은 제주도에 살면서도 4·3의 아픔에 대해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나에게 4·3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들게 해 준 곳이었다. 정말 아름다웠고, 그랬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곤을동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라 만조와 간조 시간을 알아보지 않고 찾아가기에는 불편했던 곳이었다. 곤을동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찾아가기 쉽도록 한다면 4·3의 아픔이 있는 곤을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 해안선을 공사해 그전의 자연스러움이 사라졌다는 말도 들었다. 자연을 보호하면서 길을 내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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