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24) 책 친구 만들기 작전 1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아이, 어른, 책... 관계의 재구성

주말을 이용해 아이들과 도서관에 갔습니다. 두 아이가 어린이 서가에서 책을 수십 권 빼고 옵니다. 그 중에서 빌려 갈 책을 다섯 권씩 고르라고 했더니 한참을 살펴봅니다. 첫째가 고른 책을 보니 선구안(?)이 좋습니다. 가끔 그림책을 보는 취향이 편협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느꼈을 때 첫째가 고르는 그림책을 보면서 힘을 얻기도 합니다. 책을 고른 아이들은 도서 대출기에서 버튼을 누르며 대출 영수증까지 출력합니다. 자신의 대출증이 있다는 사실과 스스로 책을 대출했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운가봅니다. 저도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빌리기까지 많은 계단을 밟았기 때문입니다.

책(冊)이라는 한자를 보면 나무에 실이 꿰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나무를 쪼갠 죽간(竹簡)에 글을 새겼기 때문에 책이라는 한자가 이런 모양이 되었습니다. 실이 죽간을 이어주듯, 책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준다고 상상해보세요. 한 시대에는 최소한 세 세대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과 조부모까지 하면 삼대(三代) 90년입니다. 공자와 맹자는 ‘선각자(先覺者)’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논어』(「헌문」 편)와 『맹자』(「만장 상」편)에 모두 나옵니다. 먼저 깨달은 사람이 뒤이어 깨달은 사람을 깨우치는 게 세대의 올바른 연결입니다. 올바르지 않은 연결은 세대가 단절되고, 뒤의 세대가 앞 세대의 아류가 되거나, 앞 세대가 뒤 세대의 규탄 대상이 됩니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세대 간 대립은 내전 수준으로 격화될지도 모릅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1차적 원인은 어른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 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공자가 말했다. “덕을 정성스럽게 닦았는지, 공부가 몸에 제대로 녹아들었는지, 옳은 것을 잘 전달했는지, 잘못된 점이 제대로 고쳐졌는지. 이것만 생각하면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듯 근심스럽다.”
- 「술이」 편

공자가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깨달은 것을 혼자만 감춰둔다고 생각하겠지? 난 숨기지 않아. 나는 인생의 깊은 지혜를 깨닫는 순간에도 그렇지 않은 순간에도 모두 너희들과 함께였단다. 이게 바로 공구라는 사람이야.”
- 「술이」 편

저는 이 구절만 보면 부끄러워집니다. 공자의 수제자 안회가 “나의 모든 열정을 쏟게 만드시는 선생님”(「자한」 편)이라고 말한 것처럼, 진정한 어른이란 자신의 모든 열정을 다 쏟아냄으로써 남의 열정까지 뽑아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어른이 있어야만 대한민국의 열정의 곳간이 가득 찰 텐데! 우리의 열정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책에 대한 열정 역시 우리 세대와 아이들 세대 간의 온도차가 극명합니다. 부모 세대에게 책은 문화이자 양식이었고 거부할 수 없는 의무였습니다. 책을 끼고 다니지 않고 읽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전통은 오래 전부터 있었죠. 『춘추좌전』에 보면 춘추시대의 외교관들이 시(詩)를 인용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당시의 시는 교양이었습니다. 만약 이를 못 알아들으면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습니다. 이런 전통은 멈췄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은 귀찮은 잔소리 같은 물건입니다. 워낙 어른들이 강조해서 읽어야 할 것 같지만 손이 가지 않죠.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 책이라는 다리를 놓는 방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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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아이를 이어줄 때 주의할 점

아이와 책을 이을 때 가장 피해야 할 첫 번째 원칙은 ‘조장(助長)’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장’이라는 말은 『맹자』에 나오는데, 어리석은 농부가 자기 밭의 모가 이웃보다 짧아 보여서 하나씩 뽑아 길게 만들었다가 모를 다 죽게 만들었다는 고사에서 나왔죠. 아이들의 마음 밭에 ‘책’을 심으려면 어리석은 농부처럼 조장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배움은 미치지 못할까 여기듯이 하고, 또한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 <논어>, 태백 편

공자는 배움에 관해서는 절대적인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마치 깨지기 쉬운 그릇을 대하듯 했죠. 제자들에게 할 말 역시 오랫동안 관찰하고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의 권위와 전국적인 인기에 눌려 스승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스승이 당신만 알고 자신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은 비밀 기술 같은 게 있다고 의심할 정도였으니까요. “나는 숨기는 게 없다. 어느 하나도 여러분과 함께 하지 않는 게 없다.”(「술이」 편)고 해명할 정도였죠. 공자는 제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상대에 대한 집중력과 진심어린 마음을 잃지 않아야 책과 아이를 친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한 엄마는 책 파는 아줌마 말만 믿고 아이의 취향이나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전집을 덜컥 사버렸죠.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책 자체를 거부하는 행동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부모들이 아이와 책을 친하게 하려고 많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도서관과 책을 멀리하는 아이들이 많은 까닭은 부모의 욕망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책을 읽으라고 하면 진전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번에는 아이들이 어떻게 해서 책과 친해지게 되었는지 과정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부책]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

매달 한 권씩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을 게재합니다. 특히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은 부모님들은 꼬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권 한 권 만지작거려봅니다.

6. 우리동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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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할머니 | 샬롯 졸로토 | 김명숙 (지은이) | 제임스 스티븐슨 (그림) | 시공주니어 | 1997-12-01 | 원제 I Know A Lady

언제나 나무처럼 바위처럼 그 자리에 있으면서 나를 알아봐주고 사랑해주는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시나요? 아이들도 그런 어른이 있을까요? 그 어른은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고, 하는 일을 응원해줍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는 외삼촌을 좋아합니다. 자기 말을 잘 들어주고 장난감도 사주고 가끔 혼도 내줘서 좋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부모와 어른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편안함’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일이 많은 세상에서 자신들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있다면 마음이 얼마나 편해질까요? 제가 혹시 아이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게 만드는 그림책입니다.

dajak97@hanmail.net 앞으로 육아고민을 보내주세요. 자녀와 본인의 나이와 성별을 써주시면 가명으로 처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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