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편지(18)] 웰빙에 무참히 잘리는 아픈 사연

   
 
 
봄이 오면 피워 내는 꽃처럼 아름다운 게 있을까요.

 

기나긴 겨울, 인고의 세월을 건너 황량한 숲속을 밝히는 호롱불처럼 수줍게 꽃망울을 터트리는 이른 봄의 꽃들을 보면 겨우내 웅크렸던 마음의 앙금도 아침햇살에 녹는 이슬처럼 사라집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고 꽃은 핀다고들 하지만, 실상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혹독한 겨울의 깊은 어둠을 이겨내고 기어이 꽃을 피워내는 봄꽃들의 지난했던 수고로움을 올곧게 이해하는 이 몇이나 될는지요.


한라산 둔덕에 파릇한 새순이 돋아나고 화사하게 일렁이던 벚꽃들이 일순간의 바람에 꽃비로 내릴 무렵이 되면 숲속의 나목마다 연두색의 봄 잎이 살아납니다.

 

이 생성의 물결은 하루아침에 온 산을 초록으로 물들이지요. 

 

기나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나른한 봄의 기지개를 펴는 봄 숲의 몸짓은 소리도 없이 고요하지만, 전염병처럼 무서운 기세로 온 숲에 번져갑니다. 

 

게으른 봄바람의 침묵으로 고요해진 숲속에는 부지런한 새들이 하루 종일 숲속을 쏘다니며 봄노랠 불러대고 둥지를 파는 오색딱따구리들의 힘찬 드러밍 소리가 봄 숲에 메아리칩니다.

 

이렇게 한라산의 봄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모든 존재들이 일시에 불러대는 합창소리에 한바탕 잔치가 벌어지는 느낌입니다.


   
 
 
이 찬란한 봄의 향연에 불협화음처럼 어정쩡한 잎을 피우는 존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두릅나무이지요.

 

줄기에는 비수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촘촘히 달고 가지 끝에 수줍은 듯 두툼한 봄 순을 펼쳐냅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어정쩡한지 화사하게 단장한 도회지의 맵시 있는 봄 처녀들의 가든파티에 얼떨결에 얼굴을 내민 화장기 없는 산골소녀라고나 할까요.

 

봄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이 찬란한 봄 햇살 아래 두툼한 겨울 외투를 걸친 듯한 새순이라니.


그런데 이 연둣빛 두릅나무의 새순은 꽃을 피워내기도 전에 수난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막 피워낸 새순을 살짝 데쳐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라 피워내자 마자 누군가의 손길에 꺾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요즘에는 이 두릅나무의 새순이 몸에 좋다는 소문 때문에 새순이 돋고 어느 정도 자라기도 전에 잘려나갑니다.

아마도 지금 아니면 이 두릅나무가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겠다는 심산으로 이제 갓 나온 새순을 꺾어버리는 것이지요.

새순이 잘려나간 자리엔 투명하고 하얀 점액질이 흘러나옵니다. 잘려나간 상처부위를 치료하기 위해 두릅나무 스스로 흘려내는 눈물의 약 같은 것이지요.

 

제 스스로 상처를 보듬은 두릅나무는 또 다시 새순을 피워냅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또 다른 누군가의 손에 꺾이고 말지요.

 

봄 내내 두릅나무는 이렇게 새순을 피워내고 잘리기를 반복합니다.

 

이 미련한 두릅나무가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줄기에 돋아난 날카로운 가시인거 같군요. 줄기를 빙 둘러가며 독기를 품은 듯한 가시들이 ‘손 대면 찔려!’ 라고 항변하듯이 돋아나 있습니다.

 

도망갈 줄 모르고 말 할줄 모르는 야생의 나무들이 수억 년을 이어오며 나름대로 생각해낸 지혜인 셈이지요.

 

그래서 초식동물들도 순하디 순한 이 두릅나무의 새순을 함부로 범접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 가시 덕분에 두릅나무는 어느 정도 자라날 수 있었겠지요.

 

초식동물들이 닿지 못할 정도로 자라나면 나무 밑동의 가시들은 날카로운 독기를 스스로 털어내며 껍질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가시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스스로 떠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래된 두릅나무의 수피는 고단했던 삶의 깊이만큼의 주름살만 남고 부드러워 집니다. 

 

 

   
 
 

그러나 이 날카로운 가시들 때문에 두릅나무는 또 다른 수난을 당합니다.

 

  사람의 키 보다 훨씬 높게 자라난 나무들이 이제는 초식동물들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가시도 덜어내고 새순을 키웠건만, 탐스러운 두릅나무의 새순을 따기 위해 나무의 밑동이 잘려버리는 것이지요.

두릅나무로서는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지요. 건강에 좋다는 이유만으로 다 자란 야생의 나무를 밑동으로 잘라서 그 맛 나는 두릅나무 새순을 데쳐 먹는 것이 과연 참다운 ‘웰빙’인지요.

 

오랜 세월 가시를 돋아내며 지켜낸 두릅나무의 운명은 그렇게 단 한번의 톱질로 끝나버립니다.


한 열매에서 다섯 가지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해서, 한때 한라산의 명품으로 유명했던 오미자나무의 열매, 지금은 눈 씻고 찾아봐도 만날 수 없습니다. 멸종되었거나 인간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아주 깊숙한 산속으로 피신했을 것입니다. 

다른 나무의 등걸을 타고 높은 곳에 올라가 열매를 맺은 오미자의 특성 때문에 오미자나무 뿐 아니라 오미자에게 제 몸을 내어준 나무까지 무참히 잘려나갔기 때문이지요.

 

두릅나무의 운명도 우리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들판에서 숲속에서 새순을 피워내는 대로 꺾이고 톱질로 잘려나가 버린다면 두릅나무도 오미자나무처럼 우리들 곁을 아예 떠나버릴지 모릅니다.


   
 
 

흔할 때는 소중한 법을 모르는 법이지요.

 

이제 고사리 장마가 내리고 나면 제주의 들판과 곶자왈엔 고사리가 새순을 밀어 올립니다.

 

들판으로 산으로 고사리를 캐기 위해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들 것입니다.

 

웰빙에 대한 열망으로.

 

   
 
 

날카로운 가시를 달고 새순을 피워낸 두릅나무를 보면 왠지 반가움이 앞섭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그 달콤하고 알싸한 맛이 기억나서 나도 모르게 침을 흘기며 입맛이 다셔지곤 합니다.

 

이런 거 부탁해도 될는지요.

 

어린 두릅나무 새순이 탐나실지라도 나무마다 한 두 송이의 새순은 꼭 남겨두시기를.

 

그래서 두릅나무가 여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어서 내년에도 연둣빛 고운 새순을 피워낼 수 있기를.

 

그것이 두릅나무 가시의 간절하고 절실한 소망이 아닐는지요.

※ 오희삼 님은 한라산국립공원에서 10년째 청원경찰로 근무하고 있는 한라산지킴이입니다. 한라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좋은 글과 사진으로 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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