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㉛>

전기 작가 프레드 캐플런에 의하면 링컨은 셰익스피어와 바이런을 즐겨 읽은, 작가와 시인을 사랑했던 대통령이다. 그는 수많은 문학적 산문을 남겼고, 그의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의 바탕에는 이렇듯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길러진 문학적 감성과 창의력이 있었다.

링컨은 평생 학교를 일 년도 다니지 못했지만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올바른 신념을 키워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다. 책을 살 돈이 없었기에 걸어서 다른 마을까지 찾아가 책을 빌려 읽은 이 가난한 소년에게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품성을 가르쳐 주었다. 윌리엄 포크너의 말처럼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난관을 극복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친다” 이것이 문학의 위대한 힘이다.

동양의 정치인들에게 시는 선택이 아닌 필수과목이었다. 조선조의 과거제는 작문 실력(구체적으로는 시 창작)으로 관료를 선발하는 제도였다. 시인이어야 관직에 등용되었다는 말이다. 일본의 인재양성소인 ‘마쓰시타 정경숙’의 커리큘럼에 시학(詩學)이 있었고 서양에서도 정치학도에게 시를 가르친다고 한다.

일전에 어느 정당 대표가 기자회견 말미에 시를 읊었다는 기사가 났다. 우리나라 정치인이 드물게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찾고 공식 석상에서 시를 암송하는 건 쇼맨십에 불과하다는 걸 사람들은 간파한다. 그들에게는 근본적으로 시심(詩心)이 결여돼 있으며, 단지 시는 쇼윈도에 걸린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정치가 이처럼 타락하고 천박해진 것은 진·선·미의 산물인 문학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다. 대다수 정치인이 국가와 민족보다는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 골몰함으로써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진실과 정의의 파수꾼인 문학예술을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말 할 필요없이 이 땅의 정치에 극적 반전이나 감동이 없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제 어떤 정치가가 기타를 치며 눈물을 흘려도 우리는 따라 울지 않을 것이다. 그 눈물이 ‘악어의 눈물’임을 알기 때문이다.

정치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란 걸 우리는 안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세상을 바꿔달라고 주문하는 건 쓰레기통 속에서 장미가 피는 걸 기다리는 것처럼 무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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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이 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 아니 도지사나 시장 중에 링컨처럼 진정으로 작가와 시인을 사랑한 사람이 있었을까? 있을까? 극작가 하벨을 대통령으로 뽑은 체코 국민들이 한없이 부럽고 소설가 보르헤스를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임명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한없이 존경스럽다. 우보다 국민소득이 낮은 두 나라 국민이 우리보다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지도자를 가진 국민이 행복할 것은 당연지사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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