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으로 기억한다, 꿩엿 한 숟가락

엿을 고는 아침, 고요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가만히 장작을 지피고 따뜻한 물과 좁쌀밥, 엿기름 가루를 섞는 손은 체에 걸려서 내려온 누런 엿물과 닮아 있었다. 어머니의 손은 그러나 이 날만은 날쌘 바람이 돌아다니는 밭의 흙 속에 있지 않고 따뜻한 부엌에 있었다. 부엌에 있는 어머니는 '돌아온 어머니'처럼 보였다. 집을 비워 두고 늘 바깥으로 도는 바람난 어미가 돌아온 것처럼 포근한 부엌에서 하루는 길게 신이 날 것이었다.

바람이 마른 날이었다. 그날 바람 속에는 축축한 바다의 물기도 없고 연신 바람이 저 스스로 마른 채 가지런했다. 가지런한 불이 아궁이에서 고요한 기도처럼 타올랐다. 은근하게 오래오래 불을 다스려야 했으므로 붉게 뒤채이는 불을 고를 때 어머니의 얼굴은 오랜만에 고요했다. 바쁘지 않고 버럭 소리도 크지 않은 어머니가 낯설고 반가웠다. 연통으로는 나무와 불의 흔적처럼 하얀 연기가 하루 종일 피어 올랐고 어머니가 앉아 있는 부엌은 종일토록 너그러웠다.

고요히 움직이며 분주하지 않은 어머니가 좋았지만 시간을 기도처럼 보내야 하는 이 음식의 법도떄문에 하루는 긴 여행처럼 멀고 멀었다. 하루가 그야말로 엿가락처럼 늘어졌다. 늘어진 하품이 나와도 아궁이에선 불이 졸고 솥 안에서는 엿이 더 깊이 졸았다.

외할머니는 가끔 이 음식에 돼지고기를 넣기도 했다. 엿물이 굳어 감주가 되고 다시 졸아들며 조청이 될 즈음, 언제 저게 다 될까 할 때쯤, 어머니보다 더 노련한 할머니는 솥 옆에 묻으며 진한 흙빛을 띠는 조청을 주걱으로 긁어 주었다. 아 이 맛이야. 작년에 먹던 엿 맛. 그런데 언제 다 이 많은 물이 졸아들 거지? 몰래 몰래 조바심이 날 때쯤이면 할머니는 엿이 고아지는 솥에다가 듬성듬성 썬 돼지고기를 넣었었다.

엿 속에서 졸아진 돼지 고기 비계는 신비한 영약처럼 맛이 맑았다.이 엿 속에서 이미 돼지고기는 고기가 아니라 하나의 믿음과 신비가 되었다. 할머니는 그것을 기침 해소 천식을 앓는 할머니의 보식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건 다만 할머니의 약이었으며 겨울 내내 할머니의 가슴을 후벼파는 천식을 달래 줄 위로였다. 가끔 할머니는 엿 한 숟가락을 크게 푹 떠서 입에 넣어 주었는데 할머니는 꼭 한 숟갈, 나는 두 숟갈을 끝으로 더 먹지 못했다. 그러므로 할머니는 겨울 내내 이 엿으로 나를 불렀다.

어머니의 엿이 우리 자식들 보다는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의 하루를 바친 셈이므로 할머니의 엿은 더 달고 떳떳했다. 특히 어머니의 눈치를 보던 큰 딸인 나에겐 더 그랬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두 분 다 엿을 고았을 경우엔 엿의 시간은 좀 더 오래 겨울을 달게 했겠지만 헐머니가 엿을 만들지 않고 어머니만 만든 해에는 엿은 너무 빨리 사라졌다. 어머니의 커다란 무쇠솥으로 할머니와 아버지와 우리들을 다 보살피기란 그 시절의 마음을 닯아 있었다. 마음은 크게 주고 싶은데 드리는 손은 작을 수 밖에 없는 그때, 우리 집 또는 아버지의 몫으로 조금 뗴어 둔 엿은 내가 훔쳐 먹지도 않았는데 금세 바닥이 나버렸다. 나는 괜히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아버지를 위해 만든 어머니의 엿이 금방 동이 나는 걸 어머니가 못견뎌 한다는 걸 자식 중에 나만은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돼지고기를 넣었지만 전통 음식엔 꿩으로 엿을 만들었나 보다. 민속전통이라고 쓰여진 엿 공장을 지나가다가 샀다.

이 음식의 맛을 전하려고 대구에 사는 시댁 식구에겐 선물로 보냈고 남편에겐 내가 먹을 때마다 한 숟가락 씩을 안겼지만 서울이 고향인 남편에겐 검은 색의 물렁한 이 음식을 엿으로 부르는 것조차 어색할 일이었다. 꿩엿을 사자고 조르면서 남편에게 꿩엿이 꿩을 넣어 고은 것이라고 했을 때 남편은' 뭐 엿에다가 고기를 넣어?' 하고 의아해 했고 이걸 어떻게 먹었었는지 추억을 공유할 수 없는 사람들은 쥬스에 타 먹는 것인가. 빵에 발라 먹는 것인가? 하고 물었다. 나는 그냥 숟가락으로 한 입 떠먹으라고 했지만 그 말을 할 때 내 눈 앞으로 펼쳐지던 유년의 겨울과 바람과 불과 기쁨을 전달하지는 못했다.
물론 할머니가 먹여주던 끈끈한 사랑에 대해선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그 할머니가 땅 에 누운 지 오래 되었고 내 기억의 저편에서는 자꾸 그 시절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먼저 세상을 버리고 간 사람들이 새봄의 풀처럼 돋아 나오고 있다는 것도 말할 수 없다.

다만, 나는 추억 때문에 이 엿을 샀고 숟가락을 이 엿 병에 넣어 한 입 떠먹을 때마다 할머니를 아주 많이 보고 싶어 한다. 그래도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추억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음식은 언제나 낯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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