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25) 책 친구 만들기 작전 2(재미의 계단)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즐거운 책 『논어』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시인, 「귀천」

천상병 시인의 시는 자연스럽고 어린아이 언어를 자주 써서 동시 같습니다. 특히 시인이 말년에 썼던 유고 시들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 깊이 묻어 있습니다. 어린이가 이 시를 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가서 ‘재미있었다고’ 말하리라.”라고 고쳤을 것 같아요. 어린이에게 아름다운 건 재밌는 거니까요. 저 역시 어릴 적부터 재미를 좇아서 살아왔습니다. 재미와 하루 종일 놀던 아이는 시간이 흐르며 ‘의미’를 만나게 되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의미를 받아들인다는 거죠. 마음속에 재미의 자리가 모두 사라지고 의미가 채워진다면 어린이도 함께 사라집니다. 저는 그게 두려웠어요. 그러니까 진짜 어른은 어린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며, 재미와 의미가 마음속에서 친하게 지내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논어』는 ‘즐거움’에 관한 책입니다. 자주 등장하는 말이 ‘즐겁다’[낙(樂)], ‘기쁘다’[열(說)], ‘좋다’[호(好)] 같은 글자들입니다. 울적할 때 『논어』를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즐거운 성질 때문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그걸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그걸 좋아하는 것은 거기 빠져들어 즐기는 것만 못하다
- 「옹야」 편

저는 제 아들들이 책을 사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것은 ‘의미’이자 부모의 욕망이죠. 부모가 이 마음을 품었다고 해서 아이들이 책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미’는 아이들의 팔에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계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재미의 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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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의 계단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가 책을 사랑하고 즐겨 읽었으면 하고 바랄 것입니다. 도서관에서 독서 강의도 하고 나름 독서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은 저는 한동안 아내의 핀잔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거든요. 아내의 불만은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은 때가 있으니까요.

아이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서점에 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서점에 처음 간 아이들은 서점을 놀이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과 책 사이를 뛰어다니다 보니 아내의 얼굴을 빨개지고 저는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느라 바빴습니다. 그래도 첫만남 치고는 괜찮았습니다. 아이들이 처음 도서관에 갔던 날도 생각납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서로 갖겠다고 싸우더군요. 아이들 싸우고 우는 소리에 모든 시선이 저희에게 집중되었고, 저는 도서관 직원의 주의를 받아야 했습니다. 역시 첫만남 치고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서점과 도서관의 차이를 구분했습니다. 당시 여섯 살, 네 살이었던 민준, 민서에게 서점은 책을 돈으로 사는 곳이고, 도서관은 공짜로 책을 빌리는 곳이라는 차이를 알려주니 제 말을 따라하면서 이해를 했습니다. 책을 사고 싶을 때는 어디로 가면 되는지 물었더니 민서가 ‘서점’이라고 대답하더군요. 책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책이 어디에 사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죠. 이제 재미의 계단을 밟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책을 친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책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책과 아이들이 생각하는 책은 다르죠. 어른들은 의미로 똘똘 뭉쳐 있는 물건이지만, 아이들에게 책은 장난감의 일부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접근 방법은 달라야 합니다. 저는 ‘도서관’이라는 공간, 그리고 산책로 같은 부대시설에 집중했습니다. 책은 도서관에 살고 있는 주민일 뿐이며, 도서관에는 책만 있는 게 아닙니다. 웬만한 도서관은 산책로나 정원이 딸려 있습니다.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이죠. 저는 아이들과 도서관 주변에서 한동안 놀았습니다.

당시 마법천자문에 빠져 있던 아이들은 흙을 파서 올망졸망한 돌멩이들을 꺼내면서 물 수, 흙 토, 사람 인 하면서 놀았습니다. 재미의 계단에는 시간과 공간이 반드시 묻어 있습니다. 이 결을 따라서 걷는 거죠. 당시 경기도 수원과 화성시 사이에 살고 있어서 저는 아이들과 영통도서관에도 놀러 가고, 동탄복합문화센터에도 놀러 갔습니다. 영통도서관에는 멋진 산과 산책로가 있고, 동탄복합문화센터 주변에는 놀이공원과 산책로, 분수 등이 있습니다. 그 공간을 충분히 즐긴 덕분에 아이들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호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일단 도서관에 호감을 가졌다면 책은 자연스럽게 따라 오는 거죠. 도서관 안은 공공장소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시키고 훈련하고 나서 드디어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도서관 안에서 아이들의 재미를 끄는 요소는 대출기와 반납기입니다. 아이들에게 도서관 카드를 만들어주면서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재미 있는 일이고,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대출 카드를 손에 쥐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자신의 카드로 대출기의 단추를 꾹꾹 누르면서 영수증까지 뽑는 과정을 여러 차례 한 끝에 스스로 책을 빌렸을 때 아이들의 표정은 환희로 가득 찹니다. 지금은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만 빼면 모든 과정을 아이들 스스로 합니다. 비밀번호를 스스로 누르려면 숫자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숫자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긴 거죠. 아이들과 함께 재미의 계단을 한 칸 한 칸 밟고 올라가는 일은 참 재밌습니다.

[140자 Q&A 상담코너]

19. 친구끼리 몰려다니며 공부를 안 해요

Q = 중1 남학생을 키우는 부모입니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좀 했는데, 중학생이 되더니 친구들과 몰려다니더라고요. 공부할 생각도 하지 않으니 성적은 바닥을 달렸습니다. 깜짝 놀라서 좀 엄격한 학원에 보내 하루 4-5시간씩 공부를 시켰습니다. 한편으로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네요.

A = 아이는 거울이면서 타임머신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어떻게 했는지 회상해보세요. 그 때의 감정과 경험을 최대한 기억해내고 복원하느냐에 따라서 아이와의 소통이 결정됩니다. 부모님께서 벽을 만드신 것 같네요. 그래서 아이와 단절돼 있습니다. 아이는 이 단절감을 잊지 않습니다. 대화의 손을 건네며 속히 아이의 마음을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dajak97@hanmail.net 앞으로 육아고민을 보내주세요. 자녀와 본인의 나이와 성별을 써주시면 가명으로 처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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