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좋은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 쪼개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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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발하며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예고한 데 이어 지난 17일 시민사회진영도 노사정위 합의안을 '노동재앙'으로 규정하며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24시간 농성에 돌입했다. ⓒ 오마이뉴스 손지은

백기를 든 한국노총

노동개혁안이 드디어 노사정 협상에서 전격 타결됐다. 이번 노동개혁에 대해 노측의 거센 반발이 예상됐으나 의외로 협상이 싱겁게 끝났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협상은 절차와 과정 그리고 내용 등 전방위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말이 협상이지 정부의 자세는 한마디로 노측에 백기를 들라고 윽박지르는 것에 다름없었다.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어렵고 중대한 문제니만큼 신중하고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 노동자들 전체의 자발적인 합의를 최대한 끌어내는 과정이 선행돼야 했다. 그러나 오랜만에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 지지율이 크게 오른 탓인지 정부의 태도는 기세등등했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한을 정해놓고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노사정 대타협이 최종 무산될 경우에 대비해 노동개혁 법안을 국회에서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여당까지 대기시켜 놓았다. 여당대표는 “노조가 쇠파이프를 안 휘둘렀으면 소득 3만불이 됐을 것”이라는 말의 몽둥이질로 노측의 기를 제압했다. 노측 대표에 주어진 일이라고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마련한 협상안에 ‘울며 겨자 먹기’로 도장을 찍는 것에 불과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미사여구의 성찬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노동개혁은 심할 경우 사용자가 직원들의 봉급을 마음대로 깎고 투덜대기라도 하면 해고까지 시킬 수 있는 규정이 포함돼 있다. 노사정 중 노동자들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것인 만큼 애당초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노동자들의 진정한 동의를 끌어내는 게 반드시 필요했다. 노동자들의 진심이 담기지 않은 노동개혁은 정부와 사용자들만을 위한 게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방적인 협상이 타결되자 나머지는 예상대로였다. 종편 등 이른바 친위 언론들의 추임새에 맞춰 노사정 타결에 대한 분칠이 시작됐다. 청와대는 “청년 일자리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노사정이 수용한 대승적 결단으로 평가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언론들은 일제히 “대타협”으로 받아쓰기 바빴다. 여당도 “역사적 결단”이라고 평가하며 미사여구의 성찬에 빠지지 않았다. 게다가 노동개혁에 대한 여론지지까지 압도적이니 그들은 표정을 관리하기에도 바쁠 정도였다.

그러나 제 살길에 급급한 일반 국민들이 복잡하고 어려운 노동개혁의 세부사항에 대해 제대로 읽기나 했을까. 부화뇌동하는 언론들을 동원한 요란한 선전에 국민들은 예전의 습성대로 “혹시나”의 심정으로 애써 믿으려 하는 것이나 아닌지. 더욱이 살벌한 노동개혁에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을 붙여놓으니 얼마나 그럴싸하게 보였던가. 

적반하장의 개혁

하지만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의 활로를 먼저 사회적 약자들의 해고와 임금삭감에서 찾는다는 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 우선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정부와 여당의 책임을 묻고 진솔한 사과를 하는 것이 없었다. 앞선 여당대표의 ‘쇠파이프’ 발언이 적반하장 격으로 들리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국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 공사와 부실 해외자원 투자 등에 수백조원을 탕진하느라 미래유망 산업에 대한 투자기회를 놓친 잘못이 어디 노동자들의 책임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번 노동개혁이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최선의 방도인지도 의문이다. 한 전문가의 분석에 의하면 임금피크제를 실시해 일인당 천 만원 내지 이천 만원 임금을 삭감할 때 약 10조원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반면에 10대 재벌이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둔 돈만 522조에 이른다. 이중 10%만 갖고도 52조를 일자리 창출에 투여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고물가와 주거난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을 쥐어짜기 하지 않고도 기업들의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을 이용해 훨씬 더 효율적인 해결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골목상권만 눈독 들이는 대기업

설사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고 일반해고의 빗장을 풀더라도 투자가 여전히 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기업들이 어디 돈이 없어서 투자를 기피하는가. 우리경제는 타 국가들에 비해 수출비중이 지나치게 비대한 기형적 구조다. 대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향후 세계경제 전망이 좋지 않은데다 수출국가들 간 치열한 경쟁에 뛰어드는 모험을 감수할 용기마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경기가 풀리지 않는 한 그들은 노동개혁과 관계없이 여전히 몸을 움츠러들 것이 뻔하다.

이익만을 쫓아다니는 기업들의 본성상 비록 이런 노동개혁이 없더라도 확실한 돈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 대기업들이 세계라는 무한의 블루오션을 피하고 국내시장의 골목상권으로 기어들어와 영세 상인들과 경쟁하며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치사한 구멍가게 장사를 하고 있는 행태가 이를 입증한다. 정부가 검증도 되지 않은 노동 정책을 섣부르게 강행하다간 기업들의 투자는 늘지 않으면서 노동자들만 임금이 깎이고 직장에서 쫓겨나는 참극만 합법화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

또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방안이라고 하면서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시킨 것도 개혁에 대한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4년 동안 기간제를 채용하면 반값임금으로 실컷 부려먹을 수 있는데 굳이 비싼 돈 써가며 정규직으로 채용할 선량한 기업이 있을까. 그러나 정부는 이를 법적으로 의무화하지 않음으로써 비정규직 청년들의 운명을 기업들의 선의에만 맡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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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개천에 용 난다?

여당 대변인은 이번 대타협을 이정표로 고용절벽에 절망하는 청년들의 밝은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정부와 여당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기껏 내놓은 방안이 ‘좋은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 쪼개기’인가. 청년들이 평생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다가 해고노동자로 인생을 끝마쳐야 하는 게 밝은 미래인가.

공정한 사회란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이 실현되는 곳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각종 정책들은 이러한 지상 과제와 자꾸 거꾸로만 가고 있다. 정부는 노동보다 부동산이나 자본 소득을 보존해주기 위해서만 애를 쓰는 것처럼 느껴진다. 노동개혁에 대한 어느 청년 네티즌의 자조 섞인 푸념이 가슴 아프게 들려온다. “이제 개천에서 용 나는 게 아니라 욕 나오게 생겼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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