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27) 부모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말 잘 듣는 아이에 대해서

성경을 보면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뭇 생명들을 태어나게 한 일이 등장합니다. 창조를 마치시고 나서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세기」)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이 무척 맘에 들었습니다. ‘좋다’라는 말이 이토록 깊은 뜻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낳을 때 정도가 이에 비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위를 보십시오! 그 위대한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세계도 섭리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람이 낳은 아이가 창조자(부모)의 뜻대로 살아가겠습니까?

저는 어른이 아이에 대해 하는 말 중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말 잘 듣는 아이’입니다. 가족 놀이 수업을 할 때면 도입으로 칭찬놀이를 자주 합니다. 부모는 아이 칭찬을 하고, 아이는 부모 칭찬을 하는 놀이입니다. 한 아버지가 “우리 아이는 말을 잘 들어서 좋습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어두워지는 제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며칠 동안 속이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표정이 잊히지 않습니다. 정말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게 생겼죠. 그래서 슬펐습니다. 아이라면 아이다운 독특한 점이 있잖아요. 그 아이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저는 부모가 아이다운 모습을 지켜줄 수 없다면 자신이 맘에 드는 모습을 강요하는 것만이라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라나는 세대야말로 두려워해야 하니, 그들이 어찌 지금의 우리만 못하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 「자한」 편

공자 제자를 대할 때 그다운 모습을 존중합니다. 공자가 제자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공자다운 모습이 있고, 제자다운 모습이 있습니다. 공자다운 모습이 제자다운 모습을 위협하지 않습니다. 공자는 공자고, 제자는 제자죠. 이런 태도가 『논어』 전편에 이어집니다. 제자들이 공자를 그토록 존경한 까닭은 공자를 통해서 자기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논어』에 나오는 제자들은 스승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왜 자기 말을 듣지 않느냐고 따지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가르칠 뿐입니다. 스승으로서 조언을 하되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제자들은 자존감이 참으로 강해서 공자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안회의 장례를 후하게 지내지 말라”(「선진」 편)는 말도 아랑곳 않고 제자들은 안회의 장례를 성대하게 렀습니다. “군자에게 요구되는 과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산 모으기에 열심”인 자공은 어떻습니까? 재아는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삼년상이 너무 과하다고 불평했습니다. 말을 듣고 있던 공자는 화가 나서 “삼년상을 줄이고 너는 마음이 편하겠느냐?”고 따져 묻자 재아는 “편할 것 같습니다.”(「양화」 편)라고 대들었습니다. 이렇게 개성 강한 제자를 길러낸 공자는 위대한 스승이자 어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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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게 대해주세요

공부방을 하다 보니 부모님들께 아이를 잡아 달라, 독하게 가르쳐 달라, 혼을 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습니다. 저는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자아’만큼은 건드려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방의 관리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모님께 칭찬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잡으면 됩니다. 아이다운 활력이 다 사라지고 평온함만이 남은 공부방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부모 말을 잘 듣기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어른 말을 고분고분 잘 들어서 자아가 거의 없어진 아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공부 잘 하는 고등학생들이었는데 자신의 생각을 글에 옮길 줄 몰랐습니다. 문제푸는 기계처럼 그저 문제만 풀 뿐,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들과 몇 년 공부하고 나자 ‘초등학교’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등학생들은 아직 때가 묻지 않았고, 자기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현장에서 아이들을 겪어보니 “말 잘 들어서 좋아요.”라고 했던 아버지가 이해되었습니다. “독하게 가르쳐 주세요.”라고 조언한 부모님의 생각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이들을 잡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잡지 않고 존중하고 대화하며 공부하고 생활한다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무척 반항적인 중1 학생이 있었습니다. 조금만 지적해도 불 같이 화를 내고 울어버리기도 하는 아이였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기다렸습니다. 공부하기 싫은 날은 말도 안 하고 나가거나 결석을 자주 했지만 저는 아이를 잡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를 6개월 정도 공들이자 아이가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안 좋았던 가족사를 꺼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말 맑고 경건한 눈물이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선물했습니다. 글쓰기와 문학만이 너를 위로해줄 것이라고 말했더니 글쓰기를 부지런히 하더군요.

부모도 사람이기에 완벽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결함투성이인데 어떻게 자식에게 자신이 맘에 드는 것을 하라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마음을 먹자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야 할지 감이 왔습니다.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것입니다. 부모는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아이 인생의 주인공은 아이 자신이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만 부모님의 방식과 다를 뿐입니다.

[어부책]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

2주에 한 권씩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을 게재합니다. 특히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은 부모님들은 꼬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권 한 권 만지작거려봅니다.

8. 내 멋대로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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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빗 콜 (지은이) | 노은정 (옮긴이) | 비룡소 | 2005-05-17 | 원제 Princess Smartypants (1986년)

철이 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과일이 익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저희집 텃밭에는 하귤이 있습니다. 하귤은 겨울철 노랗게 무르익기 시작해서 여름까지 먹는 시큼한 과일입니다. 우리는 계절이 찾아오면 과일은 저절로 익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수원이나 선과장에서 일해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무르익지 않고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수한 귤들을. 철이 든다는 것은 하나의 귤이 햇빛과 바람, 시간을 받으며 스스로 자란다는 뜻입니다. 저절로 식탁에 오르는 귤이 없는 것처럼, 저절로 성인이 되는 아이는 없습니다. 『내 멋대로 공주』는 철든다는 것에 대해서 어른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과년한 공주를 시집보내야겠다고 생각하는 왕과 왕비. 그리고 왕국의 재산이 탐이 나 결혼에 도전하는 수많은 왕자들. 공주의 테스트를 받고 대부분 탈락하지만, 끝까지 살아남은 능수능란한 한 왕자님. 공주의 어려운 시험을 너무나 쉽게 해결하니 얄밉기마저도 합니다. 공주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이죠. 아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압박감을 받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면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면서 점점 무거워지죠. 이 때 부모님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아이의 삶과 부모와의 관계를 결정짓는 신의 한 수가 되기도 합니다. 즉, 아이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느냐, 더 무겁게 하느냐. 등하교하는 아이들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면 부모님들의 선택이 무엇인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어깨를 가볍게 해줄 방법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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