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홍 작가 ‘물음표의 사슬’ 소설집 발간…세번째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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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홍 소설집 『물음표의 사슬』. 삶창·304쪽·1만3000원 ⓒ제주의소리

작가에게 '제주4.3'은 운명의 탯줄이다. 음력 1948년 12월 출생인 작가에게 4.3은 마치 생의 업보 같은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스스로에게 4.3의 족쇄를 채웠고 소설쓰기의 원천으로 삼았다. 

국가폭력으로 점철된 4.3의 역사에서 양민학살의 중심에 섰던 제2연대. 4.3 광풍 속에서 작가의 아버지는 2연대에 입대한 병사였다. 당연히 진압작전에 동원됐을 터. 평생 울화병에 시달리던 어머니도 작가가 다섯 살 무렵 작가 곁을 떠나갔다.

작가는 이게 자신이 ‘4.3’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공동구역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이유라고 고해성사하듯 토로한다. 자신의 부모와 당시 폭력의 단두대에 원혼이 된 분들을 위한 위령비를 작품으로 세웠다. 소설집 『물음표의 사슬』의 출산 배경이다.  

고시홍(66) 작가가 최근 정국을 소용돌이에 빠트린 국정교과서 논란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한민국 현대사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집 『물음표의 사슬』을 펴냈다. 작가에겐 아무리 잘라내도 잘라지지 않는 탯줄일까? 4·3을 소재로 한 작품쓰기에 남다른 집착이 다시 이 소설집을 낳게 했다. 

이번 소설집은 아홉편의 단편과 중편 하나로 구성됐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배경으로 다룬 ‘망각의 곡선’, 군부독재의 언론탄압의 난센스를 다루고 있는 ‘귀양풀이’ 두 편을 제외하곤 나머지 작품이 모두 4.3의 이야기와 맞물려 있다. 

소설집은 원혼을 달래듯 ‘귀양풀이’로 시작된다. 이유도 모른 채 의문사한 어느 민완기자의 장례식 날, 무당을 데려다가 죽은 영혼이 저승으로 잘 가도록 밤새 비는 굿. 그러나 그 영혼이 아직도 이승과 저승을 배회하는 미아로 남았다는 것을 시사했다. 죽은 영혼이 살아서 남긴 마지막 기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朴正熙 大領은 維新 憲政의 生命力은  累卵의 國難에 대처하여 우리 힘으로 富强하고 건전한 福祉 國家建設과 民族 文化의 開花를 위한 民族中興의 基盤을 다지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朴正熙 大領’이 ‘朴正熙 大統領’의 오기임을 깨달은 독자라면 누구라도 귀양풀이로는 절대 한을 풀수 없었을 것임을 깨닫게 한다. 그렇게 물음표의 사슬은 시작된다. 양민학살이라는 참혹한 국가폭력을 사죄한 이 나라 정부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4.3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작가는 비극으로 점철된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으며 국가폭력은 끝나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현재 강정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의 배후엔 여전히 그 '폭력'이 작동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강정마을에서 4.3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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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시홍(66) 소설가 ⓒ제주의소리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승립 씨는 이번 소설집 발문에서 “고시홍의 세 번째 작품집 『물음표의 사슬』은 온통 질곡의 역사와 국가 폭력 앞에서 덧없이 스러져간 민초들의 희생과 수난을 다루고 있다”며 “많은 제주출신 문인들이 4.3을 테마로 한 많은 작품을 써왔지만 고시홍은 지속적으로 이 테마에 남다른 집착을 보여왔다. 힘겹지만 정직하게 기술하고 있고 우리가 새겨 읽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적었다. 

작가는 교사 출신으로 1983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대통령의 손수건' '계명의 도시' 외에 '고려사 탐라록'(공동 편역)이 있다. 탐라문화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제주작가회의,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 있다. 삶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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