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교과서 국정화로 나라가 들끓고있다. 각종 조사에서 반대 여론이 확인됐는데도 정부는 대통령까지 나서 "국정화!"를 외치고 있다. 범위를 좁혀, 제주에서는 4.3 왜곡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정화 추진의 배경과 몰고올 폐해 등을 릴레이 칼럼을 통해 짚어본다. <편집자 주>


[한국사 국정화 ] 국민 의견은 안중에도 없어...만인의 생각을 바꾸려는가?

▲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결의대회 및 시민사회 문화제에 참석한 한 시민이 국정교과서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희훈.

국사책의 종북화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정말로 강행할 모양이다. 국민들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다. 얼마 전엔 국회의 감시를 피해 국사편찬 준비에 예비비를 투입하는 꼼수를 쓴 게 들통 났다. 그러다가 그저께는 정부가 교육부 내 전담팀과는 별도로 지난 9월부터 국정화 추진을 위한 비밀 아지트라는 곳이 가동됐다가 발각됐다. 공론화가 필수적인 정책을 권력만을 위한 음습한 비밀첩보전으로 때우고 있는 것이다. “이 정부가 국민과 소통한 것은 청와대 진돗개 이름을 지을 때뿐이었다”는 어느 정치평론가의 한탄이 문득 떠오른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불가다. 여론으로만 봐도 그렇다. 국정화에 대한 여론이 찬반이 역전된 후 반대는 날이 갈수록 더욱 우세해지고 있다. 현재 모든 여론조사기관들의 결과는 일제히 반대여론의 압도적 우위를 가리키고 있다. 심지어 전국역사교사 모임의 98%가 국정화에 반대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들과 종편, 그리고 보수신문 등 우호적 언론들이 일제히 지원에 나선 데다 엄청난 세금까지 이미 국정화 홍보에 쏟아 붓고 있지만 별무신통이다.  

국제적으로도 망신살이 뻗쳤다. 국정화 폐지는 유엔의 권고사항이다. 공산국가인 베트남마저도 이를 받아들여 국정교과서 폐지를 결정한 마당이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국정화 회귀는 더욱 도드라진다. 해외언론들도 연일 대서특필이다. 이제 아시아에서 국정을 시행하는 나라로서 한국이 북한과 방글라데시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전망이다. 살다보니 ‘국사책의 종북화’까지 보게 된 것이다. 더욱이 검정에서 국정으로 거꾸로 가는 세계 유일의 나라가 된다고 하니 이 역시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 할 역사라고 할 것인가. 

호위무사의 오월동주

하지만 정부와 여당만큼은 국정화에 목숨이라도 걸겠다는 결연한 태세다. 여당대표가 ‘역사전쟁’으로 선전포고까지 해놓은 상태다. 이제는 국정화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아예 전쟁터에서 쳐 부셔야 할 철천지원수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코앞에 닥친 총선도 걱정되지 않는 것 같다. 하기야 지역감정과 이념갈등으로 먹고사는 정치판인데다 시멘트 지지층마저 있으니 무엇이 두려울까. 오히려 어느 여당의원은 최고권력층의 국정화 강행에 대해 ‘신의 한수’라고 칭송하며 용비어천가를 불러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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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전공한 교수, 학자, 교사, 대학원생들이 10월 24일 오후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집회를 가진 뒤 거리행진을 벌였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적의 적은 동지라고 했던가. 그동안 공천제로 티격태격하던 대통령과 여당대표의 관계도 이번을 계기로 완전히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사이로 바뀌었다. 아니, 그 보다는 대통령의 눈 밖에 난 여당대표가 이번 일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대통령의 호위무사가 되는데 성공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대통령은 뒤에 숨은 채 여당대표가 대신 앞에서 총알받이로 나서고 있는 게 지금의 형국이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국정화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것은 여당대표도 마찬가지다. 선친들이 친일파라는 것에 그 분들의 소원했던 관계가 접점을 이룬 것이다. 이런 분들이 국정화를 주장하는 것은 누가 봐도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오인하고 있는 것을) 바로 잡는 게 자식의 도리이다”라는 대통령의 옛 인터뷰나 “내 아버지는 친일이 아니다”라는 여당대표의 며칠 전 강변은 앞으로 국정교과서가 어떤 내용을 담게 될 것인지를 짐작케 한다.  
반성 없는 역사

그분들이 검정 교과서를 공격하는 이유로 부정사관이나 자학사관을 들고 나오는 것도 그렇다. 모든 역사적 사실에는 공(功)과 과(過)가 있는 법이다. 정당한 비판을 부정사관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사실(史實)을 무시한 채 과오보다 성과를 중시한다고 긍정사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긍정사관이란 말 자체가 가치중립적이어야 할 학문의 기본적 성격을 저해한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왜곡일 뿐 아니라 근거 있는 반성에 대한 또 다른 부정사관일 뿐이다. 

더욱이 억지로 과거의 공만 취하는 ‘반성 없는 역사’는 망국으로 가는 길이다. 역사로부터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오히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치열한 비판과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정부와 여당이 애써 긍정사관을 갖자는 주장은 수십 년 전 개발독재의 케케묵은 망상에 의존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대통령의 유엔 방문 때 반 총장과의 뜬금없는 ‘새마을운동’ 찬양타령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나라의 총체적 위기는 수십 년 전 새마을 운동에 대한 감상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거론할 여유도 능력도 없지만 그것은 대체로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독선적 정치와 그리고 구태의연한 삽질 경제 등도 이유라 할 것이다. 결국  상명하복 식 체제와 함께 우리의 단선적이고 경직된 사고방식 탓으로 귀착된다.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창의성을 말살할 가능성이 높다는 단일 교과서를 더욱 반대해야 할 이유다.  

누워서 침 뱉기 

검정교과서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입에 닳도록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우습다. 그분들이 별로 책을 읽을 것 같지도 않지만, 어쨌든 국사책을 읽으면 학대받는 기분이 든다는 게 기이하기만 하다. 도둑이 아니라면 왜 그렇게 제 발이 저릴까. 선대의 과오를 진심으로 반성하는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민족과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을 갖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우리 아부지는 친일한 게 아니다”라고 우겨대며 아예 역사책 자체를 뜯어고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최고의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될까. 자신의 생각보다 만민의 생각을 바꾸려 들지도 모른다. 아니 백성들의 사고를 자신에게 맞춰 개조하려고 들 것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는 그래서 일어난 것이다. 진시황은 자신의 생각과 달리 한다는 이유만으로 거의 모든 책들을 불태우고 수백 명의 유생들을 생매장함으로써 사상최악의 폭군으로 등극했다. 

개인적으로 기분이 나쁘다고 역사책을 통째로 바꾸는 것은 현대판 분서갱유에 다름 아니다. 조선의 임금님들도 사초는 건드릴 수 없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더라도 최고 권력이라고 함부로 자신의 역사를 평가하거나 간섭할 권리까지 주어지는 나라는 없었다. 이성적인 문명국가라면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연산군과 세종대왕

하물며 국사책의 모든 내용들은 전문적인 식견을 지닌 국사학자들이 평생 역사를 연구한 실적들을 수렴하고 엄격한 검증을 통해 결정된 결과다. 설사 사실(史實)에 대한 해석이 잘못됐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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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더라도 그것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학자들의 전문적인 검증과 치열한 토론을 거쳐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진정으로 역사에 남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사관들을 탄압했던 연산군과 학자들을 존중했던 세종대왕에 관한 역사책을 다시 한 번 정독하길 권한다. 지구가 거꾸로 돌더라도 사사로이 역사에 간섭했던 권력은 앞으로도 영원한 폭군으로 기록될 것이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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