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0551.JPG
▲ 27일 열린 JDC대학생아카데미 강사로 나선 철학자 강신주씨. ⓒ제주의소리

[JDC 대학생아카데미] 철학자 강신주 “공동체 가치 모르면 나치 전범과 다를바 없어"


어느 순간부터 한국 사회는 어릴 때부터 경쟁을 먼저 가르치고 있다. 타인을 돕기보다는 꺾고 올라가는 방법을 보여주며, 함께 사는 공동체 대신 나만을 생각하는 가치를 우선시 한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타인을 품을 수 있는 공동체적 가치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며, 그렇지 않다면 수백 만명을 학살한 나치 전범들과 다름없다는 따끔한 지적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주최하고 제주대학교와 [제주의소리]가 공동주관하는 'JDC 대학생아카데미' 2015학년도 2학기 일곱 번째 강연이 27일 오후 4시 제주대학교 국제교류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강사는 철학자 강신주 씨. TV, 라디오, 팟캐스트 등 각종 매체에 출연해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한국사회의 부조리에 따끔한 일침을 날려 많은 인기를 얻고있다.

강 씨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날카로운 말로 대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철학에서 보면 주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 노예는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다. 여기 앉아있는 대학생들을 보면 노예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자발적인 노예”라며 “여러분은 언제부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선생님들이 원하는 대로, 취업 후에는 상사가 원하는 대로 산다. 정말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은 월급으로 대신 만족한다. 대학교에 입학해도 여전히 고등학교 4학년, 5학년, 6학년이나 다름없다. 죽을 때까지 시키는 대로만 하는 고등학생으로 산다”고 일침을 날렸다.

많은 청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계획하기 보다는 타인에 의존하거나 권위에 굴복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 강 씨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서 중책을 맡았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이야기를 통해 청년들의 모습을 비판했다.

유태인 학살 과정에 책임자로 있던 아이히만은 개인적으로 보면 말단 공무원에서 고위직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다. 그가 처리한 서류들을 통해 숨진 유태인과 집시들의 수는 약 400만명에 달한다.

강 씨는 아이히만이 전범 신분으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 주목했다. 당시 기자이자 철학자였던 한나 아렌트의 입을 빌려 “아이히만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강 씨는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광주 5.18민주화항쟁 당시 시민들을 곤봉과 총으로 사살한 공수부대원들도 소대장이, 중대장이 시켜서 했을 뿐”이라며 “실제 아이히만은 굉장히 성실한 직원이었다. 서류정리는 늘 깔끔했고 일찍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근면과 성실은 주인의 덕목이 아닌 노예의 덕목이다. 유신독재 당시 지도층에서 무엇보다 강조한 것이 근면과 성실”이라고 밝혔다.

아이히만을 통해 ‘악은 평범하다’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강 씨는 “아이히만의 죄는 무엇일까. 성실함? 아니면 히틀러의 말을 고분고분 따른 것? 바로 생각하지 않은 죄, 무사유”라고 지적했다.

얼마나 수용소를 넓힐 지, 어떻게 업무를 효율적으로 할지 일반적인 생각은 했지만 공동체적 가치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회 전체적으로 자신의 행동과 위치가 미치는 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할 일만 바라봤기에 수백 만 명을 학살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저질렀다는 것이다.

강 씨는 “지성이란 사회적 가치,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여러분 국정교과서 문제를 고민하느냐. ‘내가 볼 것도 아닌데’라고 신경 쓰지 않고 있나? 나중에 그 교과서를 볼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 고민해본 적 있느냐”며 “한나 아렌트는 사유에 대해 내 앞에 주어진 것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위치에서 고민할 때 사유가 된다고 정의했다. 지금 여러분은 사유하고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사회의 중심이 될 청년들은 사유하는 자세를 가지고 현재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개혁 등 주요한 사안 모두 자신과 관계없다고 등 돌리지 말고 사회구성원 모두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긍정적인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IMG_0496.JPG
▲ 이날 대학생들과 만난 강신주씨는 동물과 사람의 차이는 타인을 배려하는지 안하는지에 있다고 강조했다. ⓒ제주의소리
IMG_0555.JPG
▲ 강신주씨의 농담에 강의 학생들이 미소를 보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강 씨는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이 왜 탄생했을 것 같나.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했기에 친일파가 된 것이다. 과연 우리와 친일파가 어떤 차이가 있냐”며 “어른들은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무슨 위인이라고 된다고 그러냐. 그냥 나와라’라고. 하지만 명심할 것은 나이가 든다는 것, 선배가 된다는 것, 높은 위치에 오르는 것은 위험한 일에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자세를 말한다. 만약 정반대로 행동한다면 옳지 못한 사람이다. 마치 직원들을 먼저 해고하는 한국의 많은 CEO들과 세월호 선장처럼”이라고 예를 들었다.

그는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다. 인간 이성이 사사로운 이익과 관계된다면 새의 날개나 사자의 이빨과 다를 바 없다. 우리가 동물보다 낫다는 것은 공동체를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이제부터 각자 자리에서 ‘아니오’라고 말하는 연습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강 씨는 “항상 ‘예, 예’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아니오’라고 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예’가 더욱 가치가 있다. 억울하고 불의를 겪으면서 ‘나중에 아니오라고 해야지’라고 마음먹으면 또 그 상황이 와도 실제로는 안된다. 작은 것부터 지금부터 ‘아니오’, ‘NO’라고 해라”며 “나치 시절 많은 사람들이 ‘NO’라고 말했다면 히틀러가 그렇게 했을까? 유신독재 시절 많은 우리 국민들이 ‘아니오’라고 했다면 독재가 가능했을까?”라고 반문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행동을 애인이, 선후배가, 가족이, 국민이, 후손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보다 비겁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 한다”며 “내가 아닌 우리로 생각하는 것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극단적인 경쟁으로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지도층의 전략이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어렵더라도 꼭 연애하며 사랑하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