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수의 복지칼럼] ‘유사 사회보장사업 정비’ 반자치·반민주 발상...폐기 마땅 

정부는 지난 8월 11일 국무총리 산하의 사회보장위원회를 개최하여 각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고 있는 사회보장사업의 ‘유사·중복사업 정비 추진방안’을 발표하였다. 이를 통해 연간 3조원의 재정절감 효과 및 사회복지사각지대에 재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맞춰 보건복지부는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지침을 전달하고 9월까지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하였다. 또한 자치단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변경할 때에는 보건복지부장관과 협의토록 하고 협의결과 정부가 수용하지 않는 사업을 자치단체가 시행할 경우 지방교부세 삭감 등 불이익을 주겠다는 입장이다. 

◇ 사회복지 유사중복사업 정비방안, 진짜 속내는? 

정부가 검토를 요구한 제주지역의 유사중복사회보장사업 정비 대상은 총 35개 사업, 약 125억원으로 파악된다. ‘어르신 장수수당, 장애인활동보조인 추가지원, 1급 장애인 및 신장장애인 의료비지원, 저소득 한부모가족 생활지원, 저소득 노인 생활안정지원. 장애인과 노인 등을 위한 고용장려금 지원’ 등 취약계층을 위한 보완적 사회안전망이다. 

1993년 제주도 특수시책으로 만들어진 ‘1급 중증장애인 의료비 지원책’은 20년 이상 시행되면서 중증장애인에게 체감도가 높은 시책으로 각인되어 있다. 장수수당의 경우 8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월 2만5천원을 자치단체가 추가하고 있는 정도이지만 어르신들에게 이 역시 각인되어 있다. 

중증장애인의 일상생활과 자립을 돕는 인적 지원서비스인 ‘장애인활동보조인 추가지원 사업’은 1인당 월 20시간이 추가되고 있는데 전라남도의 월 330시간 추가 지원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다. 이런 사업이 폐지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신장장애인 의료비지원책이 폐지되어 투석이 어려워진다면 이는 생명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들 사업은 정부의  사회안전망을 보충·보완하기 위해 지자체 스스로가 예산을 확보하여 지원하고 있는 사업으로서 중복과 유사라는 말로 논할 수 없는 최소한의 수준이다. 자살률 세계1위, 노인빈곤율 세계1위, 비정규직 22%로 OECD국가 평균의 2배 등 통계에서 보이듯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포함한 전방위적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 아랫돌 빼서 윗돌 쌓으려는 황당한 발상 

그러기에 유사중복사업정비를 통한 복지재정 효율화에 동의할 수 없다. 또한 절감된 예산으로 복지사각지대에 재투자하겠다는 발상 역시 아랫돌 빼서 윗돌 쌓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것은 이런 발상 자체가 반자치적이란 것이다. 

지역민의 대의기관인 의회에서 조례를 제정하여 시행하는 사업과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자치단체의 별도의 안전망 구축 노력을 정부에서 협의를 요구하는 것은 헌법과 지방자치법이 보장한 자치단체의 지역주민의 복지증진을 위한 사무 권한과 의무를 심각히 침해하고 위법하는 처사이다. 작금 상위법령 또는 조례에 구체적인 지원항목이 명시되어 있지 않으면 보조금을 지원할 수 없도록 하고 사업공모를 원칙으로 하는 지방재정법이 개정.시행되면서 창의적 지역 복지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 현장의 염려이다. 

지역에서 복지욕구와 수요가 발생하더라고 자치단체와 복지계는 복지사업에 대한 창의적 기획과 투자의지가 상실되어 조례에 규정하지 않는 사업은 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사업공모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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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현수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재정과 인력이 탄탄한 복지수행주체에만 권한을 주게 되어 지역단위의 특성과 다양성을 반영한 사업주체의 생성과 정책서비스를 제한할 것이다. 

정부의 연이은 처사의 속내가 뭘까. 행여 사회안전망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수준의 것, 소모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것아닌지 내심 궁금하다. 현재 제주도는 설령 교부세 불이익을 받더라도 기존 사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잘하는 행동으로 박수를 보낸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사 사회보장사업 정비방안’은 반자치적이고 반민주적이며 반복지적이다. 이런 발상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상임대표 고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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