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촛불을 끄트리지 말고 '민주'와 '정의'를 증거하자

17대 총선이 코앞에 닥쳤다. 3·12 의회쿠데타로 촉발된 탄핵정국의 여파로 올 총선은 역대 그 어느 총선보다도 국민의 관심이 높았다. 건전 보수 세력과 수구냉전 세력이 분리되고, 철옹성 같은 망국적 지역주의가 해체되는 반가운 조짐도 보였다. 정국의 혼란은 빠른 시일 내에 수습되고 불안했던 대외신인도도 회복되었다.

 다수당의 반민주적 폭거는 계층과 세대를 초월해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정국의 위기감은 반세기 이상 고질화된 비합리적, 반민주적 한국의 정치 질서를 합리적, 민주적으로 재편하고 개혁하는 천금의 기회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런 기회가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 물거품이 될 공산이 커졌다. 정치는 다시 빠른 속도로 수구 보수로 방향을 틀고 있다.

전기는 박근혜의 한나라당 대표 선임이었다. 탄핵안 가결로 일시적인 민심의 이반을 보였던 영남권이 재결집 하고 있다.

박근혜는 당사를 천막으로 옮기고, 운동화 끈을 매는 정치 이벤트를 연출하며 고감도 이미지 정치 전략을 구사했다. 가는 곳마다 아버지, 어머니를 들먹이며 보릿고개의 향수를 자극했다.

한나라당이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박근혜의 브랜드 이미지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중 장년층의 감성을 파고들며 수구 부패 정당의 어두운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손에 붕대를 감고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얼굴에서 사람들은 차세대의 한 유망한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를 떠올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작달막한 키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일본 육사 출신의 친일 장교, 차가운 독재자 박정희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 독재자의 망령이 부활하고 있다. 18년 유신 독재의 음울한 기표는 많다.

교련복과 군홧발, 의문사, 남산(중앙정보부), 보안사, 대공분실, 국보법, 여기에 관객 1천만을 돌파한 '실미도'까지. 이를 함축하는 하나의 기호는 '반공·병영 국가'이다.

자주국방도 자주통일도 환경보전도 노동운동도 개발과 정권안보를 위해 깡그리 묵살되었고,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경제는 어땠는가. 국제적인 호황 속에서 미국과 일본에서 막대한 차관을 들여와 소수 재벌 기업들에게 특혜를 주고, 저임금, 저곡가 정책으로 노동자, 농민의 희생을 강요한 외연적, 불평등 성장이었다.

박정희의 추종자들이 늘상 치적으로 자랑하는, 보릿고개로 상징되던 절대 빈곤층의 해소와 '한강의 기적'은 순전히 노동자, 농민의 피땀 위에서, 부익부 빈익빈으로 대변되는 도시빈민의 극심한 상대적 박탈감을 댓가로 이뤄진 것이다. 그런 시대였다.

역사를 망각하는 국민에게, 어두운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국민에게 미래는 없다. 밝은 미래의 삶을 위해 오늘을 사는 자에게 과거는 망각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과 성찰의 대상이어야 한다. 한 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동시대인에게 과거의 망각을 강요한다. 여기에 동원되는 장치와 소도구는 이미지 조작이며, 수구언론 매체의 여론 조작이다.

박근혜의 눈물은 천박하다. 과거에 대한 엄정한 회개와 반성이 담긴 눈물이 아니기에, 진정 가슴 속에서 나온 눈물이 아니라, 머리 속에서 계산되어 나온 눈물이기에 그 눈물이 아름다울 리 없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어 정치 무대에 나온 그가, 유신 독재, 파시스트적 철권통치를 곁에서 지켜본 그가 아버지가 남긴 역사의 죄업에 대한 한 치의 회개도 반성도 없이 흘리는 눈물이 수구언론에 의해 확대 재생산된 현란한 이미지로 포장되어 역사의 망각을 부추기고 있다. 불과 한 달 전의 폭거도 잊혀져 가고 있다. 서글프고 착잡한 현실이다.

보름 동안 전국 방방골골 밤을 밝힌 150만 개의 촛불을 잊었는가. 그 지고 지순한 열정과 민주의 함성을 잊었는가. 바슐라르는 말한다. 촛불의 아름다움은 몽상의 아름다움에 있다고. 몽상가는 촛불의 아름다움에서 자아를 되돌아보고, 자아가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지평을 연다고 말한다. 그러나 철학자 바슐라르가 '촛불의 미학'에서 미쳐 살피지 못한 것이 있다.

하나의 촛불은 몽상의 자유를 통해 고독한 개인의 영혼을 정화하고 위무하지만, 손에 손에 밝혀든 150만 개의 거대한 촛불은 한 몽상가의 내적 자아를 뛰어넘어 오염된 세상을 광정하는 현실의 불꽃으로 점화된다는 사실을.

그 장엄한 불꽃의 파노라마는 우리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생생히 드러낸 쾌거였다. 어찌 그 감동의 물결을 잊을 수 있을 텐가. 아침이슬을 부르며 어둔 밤하늘을 수놓던 찬란한 마음의 촛불을 이대로 끄트릴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가슴 가슴마다에 다시 불꽃을 지피자. 4월 15일에는 꼭 3월 12일 그 날을 기억하자. 우리의 한표 한표로 민주와 정의를 증거해야 한다. 반민주와 불의를 심판해야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대로 민주정치의 퇴행을 좌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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