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사회과목에 약한 까닭?
아이들이 사회과목에 약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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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의 어·부·가](28) 아이와 부모는 서로 연결돼 있어야 합니다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뿌리의 기억을 잃어가는 가지들

가정은 사회의 기본 단위입니다. 다분히 사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아이를 사회적 존재로 키우고 있나요? 자기계발서가 우리 사회를 강타한 후에 ‘우리 아이’보다는 ‘내 아이’라는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공부방은 작은 사회입니다. 부모가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에 신경 쓰는지, 아이에게 사회에 대해서 가르치는지 잘 나타납니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 실수하는 것을 보고 ‘우습다’며 웃었습니다. 실수한 아이는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상했습니다. 우습다고 웃은 아이에게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더니 그런 얘기를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물건에 대해서는 더 심합니다. 연필이나 지우개 같은 물건을 함부로 다룰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물건에 손을 먼저 댑니다. 일단 다른 사람의 물건에 손을 대려면 먼저 허락을 받고 상대방이 동의했을 때 만지는 게 기본이라고 몇 번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물건도 쉽사리 만집니다.

제가 어렸을 때도 사회는 암기과목이었습니다. 사회책, 사회과부도 안에 있는 국내의 여러 지역과 그 특징들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주말을 이용해 아이들과 함께 동네를 탐방했습니다. 제주도의 노형동이라는 곳이었습니다. 노형이라는 마을 이름은 어떻게 유래되었고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는지 살펴봤습니다. 아이들에게 왜 ‘원노형’이라고 부르는지 아냐고 물었습니다. 동그랗게 생겨서 원노형이다, 원하는 게 있다 등 엉뚱한 대답이 많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이름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이름을 대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뿌리의 기억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노형동 사람들이 뿌리를 기억하기 위해서 원노형이라는 표지석을 세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수학, 과학 같은 과목들은 마치 진공상태처럼 자신의 삶과 연결이 많지 않습니다. 사회와 역사는 자신의 생활과 연관이 매우 깊습니다. 연관이 매우 깊기 때문에 아이에게 공감이 가는 내용을 가르쳐야 하죠. 하지만 교과서도 교육도 아이들을 공감시키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역사와 사회 과목을 싫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죠.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사회를 느끼게 하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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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사회를 생각하던 옛 교육

유학(儒學)이라는 학문 자체가 사회활동을 목표로 합니다. 『논어』의 제1장 「학이」편에는 진짜 공부와 글공부를 명확히 나눌 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생각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배우는 학생들은 집에서는 부모께 효도하고 밖에서는 어른께 공손해야 하며 행동거지를 신중히 해서 믿음을 쌓아야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인격자를 가까이 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을 실천하는 데 힘을 쓰고 나서 나머지 힘으로 글공부를 해야 한다.”
- 「학이」편

공부라는 게 삶에 보탬이 되고 가치 있는 일들을 배워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교과서 공부보다 훨씬 중요한 공부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집 밖에 나간다는 것은 집을 대표하는 것이며, 나라 밖을 나간다는 것은 나라를 대표하는 셈입니다. 집 밖에서, 나라 밖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은 그 집의 교육과 나라의 풍토를 가늠합니다.

이것이 상식이 되었던 게 공자 시대의 사회 분위기였습니다. 집안의 사람이 어떻게 집안의 주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논어』에 나옵니다. 위나라 영공(靈公) 때 대부를 지낸 거백옥(蘧伯玉)은 몸가짐이 좋아서 공자가 위나라에 머물 때 거백옥의 집에 거처를 정할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거백옥이 공자에게 심부름꾼을 보냈는데 공자가 안부를 묻자 심부름꾼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부께서는 잘못을 줄이고 싶어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 「헌문」 편

심부름꾼은 말 한마디로 주인의 명예를 드높였습니다. 공자는 “훌륭한 심부름꾼이다!”라는 찬사를 연거푸 했을 정도로 크게 칭찬했습니다. 가족은 서로를 대표합니다. 아이가 밖에 나가면 부모를 대표하고 가족을 대표합니다. 부모가 바깥일을 하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가족을 대표합니다. 아이가 밖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부모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도 있고, 명예를 드높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이 관계가 깨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부모를 대표하고, 부모가 아이를 대표하려면 아이와 부모와 서로 연결돼 있어야 합니다. 소통이 잘 안 되는 가족은 서로를 대표할 수 없죠. 때로는 정말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이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때는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아이가 부모 자신의 대표선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부모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어부책]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

2주에 한 권씩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을 게재합니다. 특히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은 부모님들은 꼬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권 한 권 만지작거려봅니다.

9. 지각대장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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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닝햄 (지은이) | 박상희 (옮긴이) | 비룡소 | 1999-04-06 | 원제 John Patrick Norman McHennessy: The Boy Who Always Late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Where Is The Friend's Home?, 1987)』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무서운 담임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퇴학’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쓰시던 선생님이셨습니다. 『지각대장 존』에 나오는 선생님은 무척 상식적입니다. 우리는 존이 학교에 가면서 어떤 일을 겪는지 직접 보았기 때문에 선생님의 잘못이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저는 앞서 소개한 두 명의 선생님을 가슴 속에 아주 깊이 새겨놓았습니다. 일종의 경보장치입니다. 공부방을 하면서 두 명의 선생님과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되면 마음속에서 경보가 울리면서 한 번 돌이킬 기회로 삼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그렇게 되기는 아주 쉽거든요.

상식의 문을 꼭 닿고 있으면 아이와 소통할 수 없습니다. 아이가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 너무 엉뚱해서 황당한 행동을 하더라도 아이의 생각을 들어보면서 대화를 하려는 자세가 합니다. 요즘 어른들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면서도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미덕입니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와 지금의 아이들은 다릅니다. 우리는 고분고분했지만, 아이들은 더 강하게 저항하고 분노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힘과 영향력이 생겼을 때 우리 어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할지 생각하면 식은땀이 나는 듯합니다. 아이들과 소통을 게을리 한 죄는 우리 어른들의 부모 세대가 했던 것보다 더 무섭게 받을 것입니다. 아이들과의 소통 문제가 더욱 엄중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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