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① 신보헤미안의 등장과 제주문화의 황금기


2015년 가을, 제주의 문화현장은 뜨겁다. 원도심의 문화센터 역할을 맡은 (가칭)제주종합문화예술센터가 국가사업에 선정돼 그 시작을 알리는 전시 <터와 길>을 열고 있고, 제2회 제주아트페어가 칠성로 샛물골의 호텔과 게스트하우스에서 진행됐다. 신제주에서는 전문가와 작가들이 제주의 신화를 공부하면서 그림으로 해석한 전시 <신화본색>이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열렸고, 서귀포에서는 퍼포먼스 등 실험적인 예술을 후원하는 국제실험예술제가 열렸다. 뿐만 아니다. 제주섬 곳곳에 크고 작은 벼룩시장이 열리고, 곳곳의 카페에서 연극, 영화상영 등 볼 거리, 즐길 거리가 넘치고 있다. 

미래에 누군가가 오늘의 제주를 분석하면서 문화의 황금기 또는 황금기의 도입부라고 부를지 모르겠다. 그러나 수십 년간 조용히 살아온 곳에 도래한 이 황금기는 공짜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51만~53만명을 오가던 인구가 올해 63만명으로 증가하면서 그 증가한 인구와 함께 타도시, 타문화권에서 볼 법했던 예술과 문화가 상륙한 것이다. 

유출인구를 계산하지 않더라도 약 10만명 이상이 지난 10년 사이 제주도로 이주해 왔다. 6.25때 제주에 온 피난민이 토박이 인구에 육박하는 15만 명에 가까웠다고 한다. 4.3으로 아픈 섬에 갑자기 밀려든 피난민은 갈등, 문화 충격의 요인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당시에 버금갈만한 사회, 문화적 충격파가 나오고 있다. 요즘 뛰는 부동산 가격, 넘치는 쓰레기, 막히는 교통은 아픈 대가이고, 다채로운 문화와 예술의 향유 기회는 행복한 대가라고 할 것이다. 
 
제주아트페어에 참가한김선우 작가와 박마리아 작가의 방. 게스트하우스 방이 재기발랄한 전시장으로 변했다. 사진-제주아트페어.JPG
▲ 제주아트페어에 참가한 김선우 작가와 박마리아 작가의 방. 게스트하우스 방이 재기발랄한 전시장으로 변했다. 사진제공=양은희, 제주아트페어. ⓒ제주의소리
 
제주아트페어에 참가한 강주현의 설치. 화장실과 샴푸통을 유기적으로 해석했다. 사진-제주아트페어.JPG
▲ 제주아트페어에 참가한 강주현의 설치. 화장실과 샴푸통을 유기적으로 해석했다. 사진제공=양은희, 제주아트페어. ⓒ제주의소리
이런 문화현장을 만드는 이들은 누구일까? 전직 출판사 편집장, 작가, 문화기획자, 디자이너, 만화가, 건축가, 요리사 등 한때 제주 밖 어디에선가 한가락하던 사람들이다. 제주가 고향인 사람도 있고, 제주가 좋아서 눌러 앉은 사람도 있다. 그들은 빠르게 변하는 사회, 끊임없이 사람을 경쟁으로 내모는 문화에 신물이 나서, 느리게, 천천히, 자연 속에서 그리고 작은 공동체 속에서, 나만의 속도로 살고자 온 사람들이다. 제주 밖에서 쌓은 감각과 감수성을 가지고 제주라는 터에서 재미난 한판을 벌이고 있다. ‘육지것’이라는 편견도, 고수익 직업이 없어도 재미있게, 자신이 살던 대로 혹은 자신이 믿는 가치를 앞세우고 살고 있다. 

나는 제주문화를 이끄는 이들을 ‘신보헤미안’이라고 부르고 싶다. 원래 보헤미안은 떠돌이 집시들을 일컬었으나, 19세기 들어서 예술과 문학에 헌신하면서 가난을 택한 사람들을 일컬었다. 당시 부르조아 계층이 사유재산을 확보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추구하면서 주류 세력으로 뿌리를 내렸던 반면에 부르조아 부모를 둔 보헤미안들은 물질문화를 배척하고 제도와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면서 서구 유럽의 예술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우리가 아는 마네, 모네, 세잔느와 같은 예술가들이 바로 그 보헤미안의 전형들이다. 

파리가 문화도시가 된 데에는 보헤미안 문화가 몽마르트르 언덕과 몽파르나스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가고 싶은 도시가 되면서부터이다. 20세기 초 스페인에서 온 화가 피카소, 러시아에서 온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외국인들이 들어와 파리의 보헤미안 문화를 선도하며 오늘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근대 예술’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신보헤미안’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술에 헌신했던 과거의 순수한 보헤미안과 다르다. 후기자본주의 사회와 신자유주의의 압박 속에서 성장한 그들은 가난과 빈주머니가 예술과 문화를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경쟁과 착취의 구조 속에서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교환가치를 얻지 못하고 잉여인간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정기관을 찾아가 행사지원비를 따내고, 카페를 열어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어들인다. 심지어 빈 땅에 집을 짓고 부동산이 오르면 팔아서 이익을 실현하기도 한다. 
제주종합문화예술센터에서 열린 터와 길의 전시 장면.  오른쪽은 조습의 사진이고 가운데는 고승욱의 설치작업이다. 사진-양은희.JPG
▲ 제주종합문화예술센터에서 열린 터와 길의 전시 장면. 오른쪽은 조습의 사진이고 가운데는 고승욱의 설치작업이다. 사진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신보헤미안’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얼마 전 제주시 서쪽 한 마을에서 카페 주인이 동네이름과 연못이름을 상표로 등록했다가 마을 주민의 반발을 산 적이 있다. 2012년 광고 촬영 덕분에 예쁘게 변한 초등학교 분교로 유명세를 탄 이 마을에 온 카페 주인은 연꽃이 가득한 연못가에 있는 창고를 개조해 카페로 만들었고, 마을 사람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카페명과 함께 마을명과 지명을 등록한 것이다. 늦게야 이를 알게 된 주민들은 현수막을 내걸며 항의에 들어갔고, 카페측은 마을 주민에게는 무상으로 쓰게 하겠다며 무마한 바 있다. 상표등록이 있는지도 몰랐을 조용한 시골마을 주민들은 카페주인 때문에 마을명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평화를 누리지도 못한다. 대대로 마을을 일구고 살아온 주민도 모르는 사이에 역사와 문화가 밴 이름은 소위 ‘굴러온 돌’인 이주민의 지적재산권이 되어버린 것이다.
  
런던, 베를린, 밀라노, 토쿄 등 세계 곳곳을 누빈 경험이 있는 ‘신보헤미안’에게 문화적 정체성은 토박이의 것과 달리 유연하고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일본의 가정식 요리, 퓨전 이탈리아 요리 등 제주의 재료로 만든 타 문화권의 조리방식이 제주에 등장한 것도 바로 그런 유연함 때문이다. 토박이가 습관과 관습으로 상상하는 제주와 그들의 제주가 다를 수밖에 없다. 
  
제주가 좋아서 왔지만 이주와 정주에 구애받지 않는 그들이 얼마나 오래 정착할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앞으로도 ‘신보헤미안’과 제주인의 갈등은 한동안 계속 될 것이라는 점이다. 누가 더 행정지원을 받는지를 두고 갈등할 것이고, 제주의 가치와 제주다움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카페와 펜션 때문에 오른 부동산 가격을 두고 갈등할 것이다. 모두 문화제주가 되는 과정에서 지불해야 할 대가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주에서 누리는 자유와 여유만큼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착한 이주자도 가려질 것이다.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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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은희 교수. ⓒ제주의소리
중고교 시절 미술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영어교육학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예술과 철학에 대한 호기심을 포기할 수 없어서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까지 공부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졸업한 뒤 서울, 뉴욕 등 세계를 다니며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그동안 큐레이터, 갤러리 디렉터, 프로젝트 매니저, 교수 등 미술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하면서 예술과 사회의 역학관계를 체험하고 연구하고 있다. 11년간 체류한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조명한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를 저술했으며, 『개념미술』(2007)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는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를 돌면서도 언제나 마음은 고향을 향해 있었다. 특히 요즘 문화예술의 섬으로 떠오르는 고향 제주를 주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를 통해 글로벌 시대의 제주의 문화예술 비전을 고민하는 일은 또다른 고향사랑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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