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30) 가정 내의 민주주의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아이의 기억력

밤에 잠을 자기 전에 첫째 아이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말에 전화기를 하는 시간에 관해서였습니다. 아이는 쿠키런 게임을 좋아합니다. 이 게임은 일주일에 한 번만 할 수 있습니다. 토요일이 되면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일찍 눈을 뜹니다. “잠이 확 달아난다”고 한 둘째의 말이 생각납니다. 엄마 아빠 전화기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게임을 5분 정도 못한 적이 있습니다. 일주일도 더 된 이야기라 저는 잊어버렸습니다. 첫째 아이는 자면서 “오늘은 슬픈 날이에요.”라고 말합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오늘 여러 번 부딪혔고, 거짓말을 들어서”라고 말했습니다. 지난번에 하지 못했던 5분을 제가 챙겨줬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얘기가 없으니 거짓말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이에게 사과하고 내일 5분을 하자고 말했습니다. 한편으로 무서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모가 무심코 했던 한마디를 아이는 잊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으니까요. 다음날 아이는 일찍 일어나 쿠키런 게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입었던 내복과 속옷들이 땅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자기가 입었던 옷들은 빨래통에 잘 펴서 놓는 것이 우리 집의 약속이었는데 잘 지켜지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전화기 게임을 멈추고 약속을 지키라고 말했습니다. 게임을 하던 중간에 전화기를 내려놔야 해서 아이는 맘이 조금 상해 보였습니다. 아이와 함께 빨래를 들고 세탁기가 있는 욕실로 갔습니다. 저는  “민준아, 쿠키런보다 빨래통에 담는 더 중요해!”라고 이야기하려다가 순간 정신을 차리고 말을 바꿨습니다.

“쿠키런도 중요하지만 빨래통에 담는 것도 중요해!”

쿠키런보다 빨래 넣는 약속을 우선으로 하는 것과 두 가지를 동등하게 바라보는 것은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쿠키런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자신이 부모에게 부정당했다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쿠키런과 빨래를 동등하게 존중함으로써 괜한 감정 소모를 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속담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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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간직한 스승의 가르침

공자는 수많은 정치인 제자들을 배출했습니다. 말년에 그는 제자들이 다스리는 마을을 즐겨 방문했습니다. 노부모가 자식들의 집을 차례로 다니며 며칠씩 묵듯이. 제자들 중에는 자신의 자질과 비슷한 규모의 마을을 다스리는 제자도 있었고, 자신보다 좁아 보이는 마을을 다스리는 제자도 있었습니다. 자유가 다스리던 무성(武城)이 대표적입니다. 자신의 가르침에 따라서 잘 다스려지고 있는 마을의 모습을 본 공자는 조금 섭섭한 감정도 들었습니다. 자신의 훌륭한 제자가 조그만 마을에서 낭비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이 필요할까?”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도 이때입니다. 이때 자유는 공자에게 조용히 항변합니다.

일전에 제가 스승님께 이런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고, 소인에게 도를 가르치면 소신껏 다스릴 수 있다.”
- 「양화」 편

억울하고 속터지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자유를 정성껏 가르친 스승도 속상한데, 본인의 심정은 어땠겠습니까. 하지만 스승의 말에 동의하는 순간 ‘도(道)’라는 것은 크기가 정해지고, 때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가치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것은 스승의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논어』는 짧은 글이기 때문에 공자가 과연 제자에게 ‘시험’을 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자가 자신의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있음을 확인한 공자는 흐뭇한 마음으로 자신이 농담을 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여러분, 자유의 말이 정답이다. 아까 한 말은 농담일 뿐이었다.”
- 같은 편

‘정의’와 ‘윤리’라는 말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오늘날 자유의 말은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합니다. 노동 문제, 교과서 문제 등 수많은 사회적 갈등이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습니다. 당연히 싸워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그 싸움을 아이들이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더욱 엄중해져야 합니다. 불의를 비판하고, 불합리에 저항하는 방식이 구태의연한 것은 아닌지 고민이 깊어집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30년 뒤에도 우리 아이들이 지금과 똑같은 방식으로 싸움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도 불의에 목소리를 내고 직접 현장에서 권력과 투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가정 내의 불의와 불합리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한 집이 민주화가 되면 그 집에서 자란 아이가 변화되고, 그것은 사회 변화의 밀알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그렇다면 가정에서 민주화가 안 되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네! 안 되었습니다. 가정 내의 민주주의는 한참 먼 훗날의 일입니다. 사회로부터 받은 폭력을 의식하고 아이에게 조심하는 부모가 있나요? 부모가 바깥의 안 좋은 공기를 막아주는 방패가 되어 주고,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게 하고, 아이가 자유롭게 자신의 말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다른 어떤 문제보다 급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과 행동을 몸에 새기고 밖에 나가 그대로 표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부책]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

2주에 한 권씩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을 게재합니다. 특히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은 부모님들은 꼬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권 한 권 만지작거려봅니다.

11. 치킨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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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쓰기 미호 (지은이), 장지현 (옮긴이) | 책읽는곰 | 2008년 3월

부모는 아이에게 기대를 합니다. 아이는 부모의 기대를 느낍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기대를 하는 만큼 아이 자체에서 멀어지고, 아이의 표정은 <치킨마스크>처럼 잔뜩 주눅이 듭니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멋진 마스크들은 부모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인공 치킨마스크는 자신의 모습을 버리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치킨마스크의 친구인 학교 정원의 꽃과 풀들이 치킨마스크 자체를 그리워하고 지지한 덕분에 치킨마스크는 스스로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현실이라면 가능한 상황일까요? 아주 운이 좋아서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아이 그 자체를 발견해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 자체를 바라봐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온갖 기대 속에 흔들려야 합니다. 부모도 인간이기에 기대는 십중팔구 실망으로 흐릅니다. 아이는 부모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모습을 느낍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에 대한 실망감은 커지겠죠. 부모가 왜 아이에게 기대하고 실망하는 걸까요? 자기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어린 시절에 대한 미련 등 복잡한 감정 때문이 아닐까요? 부모님의 인생은 부모님 스스로 해결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이의 인생에 그런 감정의 조각을 남기지 마세요. 아이의 영혼이 상처받습니다. 아이에게는 부모의 성찰과 미래에 대한 희망,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치 등 밝은 빛을 던져주세요. 부모의 어둠을 감당하기에는 아이 자신의 세계도 충분히 어둡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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