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올해의 제주 키워드] ⓵ 제2공항..."조금 늦더라도 대화·소통이 중요"

2015년 을미년, 청양의 해는 양처럼 온순하고, 온유하길 빌었지만 120년전 을미년처럼 한국사회와 제주사회엔 격랑이 일었다. 교수사회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꼽을 정도다.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가오는 병신년(丙申年)은 무사안녕의 해가 되길 기원하면서 <제주의소리>가 2015년 제주사회를 관통한 ‘5대 키워드’를 선정해 정리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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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을 끌어온 제주 제2공항 건설이 마침내 확정됐다. 순간, 제주 역사상 최대 개발사업이자 백년대계라는 축하현수막과 광고가 넘쳐났다. 

하지만 공항 예정지 마을들은 '청천벽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수백년 이어온 마을공동체가 사라질지 모른다며 '결사 반대'를 외치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제2의 강정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11월10일, 국토교통부는 제주 공항 인프라확충 사전 타당성 조사 용역 결과 성산읍 지역에 제2공항을 건설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제2공항 부지(495만㎡)는 성산읍 신산, 온평, 난산, 수산, 고성리 5개 마을에 걸쳐 있다.

국토부는 제2공항 예정지가 제주공항과 공역(空域)이 중첩되지 않아 비행절차 수립에 큰 문제가 없고, 기상조건이 좋으며, 생태자연도가 높은 지역에 대한 환경훼손이 다른 지역에 비해 적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또한 주변 소음지역 거주민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평가되는 등 입지 조건이 다른 후보지들보다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 기본계획 및 실시계획 등을 거쳐 2025년까지 4조1000억원을 들여 완성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국토부의 발표에 원희룡 지사와 구성지 도의회의장은 곧바로 공동담화문을 내놓았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은 제주 역사상 최대규모의 사업", "제2공항 건설은 50년전 물과 길의 혁명을 이뤄내며, 제주의 비약적인 발전을 일궈냈듯이 제주를 미래로 이끌 제2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큰 기대를 드러냈다. 

공동담화문 발표 이후 관공서와 기관·단체를 중심으로 일제히 환영 현수막을 내걸었고, 신문지상에도 제2공항 환영 광고가 쏟아졌다.

과거 특별자치도 출범, 세계자연유산 등재, 세계7대 자연경관 선정 등 때처럼 관제 여론몰이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제2공항 발표로 '수백년 공동체의 위기'로 받아들인 성산읍 마을들은 잇따라 반대운동을 천명했다.

특히 공항 부지 70%를 차지하는 온평리를 비롯해 신산리, 수산리, 난산리 등은 반대대책위나 비상대책위를 꾸려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이들 마을의 공통적인 주장은 백년대계라는 제2공항 예정지가 어떠한 의견수렴이나 정보공개 없이 국토교통부 용역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원희룡 지사는 성산읍 마을들을 방문, 제2공항으로 생길 피해에 대한 특별한 보상을 약속하기 바빴다.

'특별한 보상' 약속도 주민들의 마음을 붙잡지는 못했다. 일부 마을은 청와대나 국토부 앞 1인시위도 계획하고 있다.

수산리와 난산리, 신산리 주민들은 제2공항 건설 예정지가 대한항공 정석비행장을 의식해 위치가 조정됐고, 천연기념물 467호인 수산굴이 제2공항 부지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자 제주도의 태도도 바뀌었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책임하게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상실감이 클 수 밖에 없는 주민들로선 뭔 말인들 못하랴'는 열린 자세가 아쉬웠다.

주민과 소통하며 갈등을 없애야 할 도정이 거꾸로 주민을 몰아붙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주민 반발이 예상외로 거세질 기미가 보이자 원 지사는 야당에도 손을 내밀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제주도당과 간담회를 갖고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을 요구했다.

또 한편으로 원 지사는 주민과의 소통 강화를 위해 부이사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공항확충지원본부를 신설하고, 성산읍 주민들과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지역 주민들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2공항 예정지 마을들은 "제2공항이 만약 이대로 들어선다면 제2 강정마을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전국적인 환경단체와 연대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백년대계"와 "수백년 공동체 파괴"라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타협의 여지는 없어보인다. 

갈등관리 전문가들은 백년대계일수록 시간을 갖고 소통하는게 순리라고 조언한다.

사회갈등연구소 박태순 소장은 "국책사업이라고, 도민 대다수가 찬성한다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 안된다"며 "조금 더 늦더라도 대화와 타협, 설득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박 소장은 "자치단체장은 대형 사업을 자신의 치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지역주민과의 소통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제2공항 건설에 따른 갈등은 이제 시작이다. 진정성있는 소통의 자세가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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