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상생 위한 문화행정이 필요한 떄 : 3개의 아트페어를 보면서
 
올해 제주에 3개의 아트페어가 열렸다. 2014년 시작한 ‘제주아트페어’, 올해 시작한 ‘제주국제아트페어’와 ‘아트 앤 아시아 제주 2015 쇼 케이스’가 그것들이다. 작년에는 ‘제주아트페어’와 ‘제주호텔아트페어’ 2개가 열렸다. 1년 사이에 하나가 사라지고 2개가 새로이 등장했다. 드디어 제주에 미술작품을 거래하는 시장의 시대가 오기는 했으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아트페어란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큰 장터이다. 일반 시장과 마찬가지로 저가부터 고가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작품을 판매한다. 대형 컨벤션 센터에 200여개의 갤러리가 모여서 여는 형태도 있고, 주최 측에서 개별 작가를 공모, 섭외해서 여는 형태도 있다. 가난한 아트페어는 비용을 아끼려고 호텔에서 열기도 한다. 크기에 상관없이 다른 상품과 달리 쉽게 교환가치를 매길 수 없는 예술작품의 특징때문에 아트페어는 예술가, 컬렉터, 일반인 모두에게 신뢰를 주고 장기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중요한 유통기관이다. 

제주에서 열린 3개의 아트페어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제주아트페어’와 ‘제주국제아트페어’는 모두 원도심 문화 활성화를 들고 나왔다. 지난 10월 ‘제주아트페어’는 올해 2번째 열린 행사에서 62명의 젊은 작가를 칠성로의 여관과 게스트하우스에서 선보였고, ‘제주국제아트페어’는 올해 처음 시민회관에서 부스를 만들고 특별전을 기획해 12월 중순 열렸다. 제주아트페어는 뜻있는 문화기획자 2인이 사람들을 모이게 하면 동네가 달라지고, 다양한 예술가를 찾아서 발굴하고 작품이 팔리면 예술가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출발했다. 제주국제아트페어 역시 예술가들이 주축이 돼 제주를 대표하는 아트페어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구도심의 시민회관을 주전시장으로, 동사무소 건물을 보조 전시장으로 활용해 규모있는 행사를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제주국제아트페어’가 후발주자이면서도 왜 ‘제주아트페어’와 헷갈릴만한 이름을 걸고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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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국제아트페어가 열린 제주시민회관의 부스전. 사진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아트 앤 아시아 제주 2015 쇼 케이스’는 중문에 있는 ICC에서 열리고 있다. 위의 경우와 달리 제주도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비수기 컨벤션센터의 전시장 활용을 위해서, 그리고 내년 동아시아 문화도시 사업 준비로 기획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동아시아 평화기원 초청 작가전’과 제주 소재 갤러리 3곳이 참여한 ‘아트 & 아시아 제주 페어’로 구성돼 언뜻 보기에 기획전에다 미니 아트페어를 결합한 형식을 취했다. 사실 이 행사는 규모나, 홍보 면에서 모호해서 앞으로 어떤 아트페어를 지향할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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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CC에서 열린 아트 앤 아시아 제주 2015 쇼케이스에 참여한 갤러리 부스모습. 사진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제주에 갑자기 부는 아트페어의 붐은 미술유통구조가 취약한 현실을 딛고 미술시장을 개척한다는 의미에서 고무적이다. 그런데, 각각의 행사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왠지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슬픈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변별력이 없는 명칭을 취하는 것도 그렇고, 각각의 행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서로 다른 조직의 논리에 따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도 미술시장의 구조가 취약하다. 2000년대 들어서 성장하기 시작한 아트페어는 주로 서울, 부산, 광주와 같은 대도시의 일이었다. 그러나 대도시의 아트페어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 한국 최대의 아트페어인 KIAF(한국국제아트페어)의 2015년 행사의 매출은 180억원 정도이다. 참여한 182개 화랑이 1억원 정도를 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방문객은 8만5000명으로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뉴욕과 런던에서 열리는 대형 아트페어에도 비슷한 수의 화랑이 참여하며 6만~7만명 정도 관람한다. 그러나 매출은 3000억~4000억원으로 KIAF 매출의 20배 이상이다. 한국의 시장이 이러한데 하물며 제주의 시장은 어떨지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제주의 아트페어는 당분간 도와 시에서 주는 보조금이나 예술가의 참가비에 의존해서 버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예술작품이 돈을 주고 살만하다는 생각을 퍼뜨리는 일도 만만치 않다. 인간의 의식을 바꾸는 것은 태산을 옮기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향후 제주의 아트페어는 얼마나 도와 시의 지원금을 받는가에 따라 존폐운명이 갈릴 것이다. 과연 제주의 아트페어들이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은 불가능한 것일까?  

미국의 마이애미와 스위스의 바젤은 각각 인구 42만명과 16만명의 작은 도시이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아트페어로 성공한 도시라는 점이다. 스위스에서 설립되어 45년 전통을 자랑하는 ‘아트 바젤’이라는 브랜드를 공유하면서도 소규모 아트페어를 동시에 유치하고 있다. 매년 12월 초 마이애미에서는 ‘아트 바젤 마이애미’를 중심으로 SCOPE 등 아트페어 20여개가 동시에 열린다. 바젤에서는 매년 6월 중순 ‘아트 바젤’을 에워싸고 아트페어 6개가 동시에 열린다. 최고의 날씨를 자랑하는 시기에 전 세계에서 온 고객과 관광객을 맞는데, 전시작가나 성격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경쟁보다는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다. ‘아트 바젤’이 미술사에서 검증된 또는 인기리에 팔리는 최고의 작가를 선보인다면 나머지는 그보다 덜 알려지거나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을 선보인다. 동시개최라는 공존을 통해 미술시장을 관광산업으로 성장시키고 공생하는 전략이 돋보인다.    

‘아트 바젤’은 이미 홍콩에 진출해서 아시아 미술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런 환경에서 상생의 전략은 필수적으로 보인다. 제주의 아트페어도 상생을 통해 4000억~6000억을 오가는 한국미술시장으로 진입하고, 외국의 아트페어와 경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서로 소통하고 힘을 합쳐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이자, 슬기로운 문화행정이 필요한 때다.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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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 미술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영어교육학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예술과 철학에 대한 호기심을 포기할 수 없어서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까지 공부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졸업한 뒤 서울, 뉴욕 등 세계를 다니며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그동안 큐레이터, 갤러리 디렉터, 프로젝트 매니저, 교수 등 미술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하면서 예술과 사회의 역학관계를 체험하고 연구하고 있다. 11년간 체류한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조명한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를 저술했으며, 『개념미술』(2007)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는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를 돌면서도 언제나 마음은 고향을 향해 있었다. 특히 요즘 문화예술의 섬으로 떠오르는 고향 제주를 주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를 통해 글로벌 시대의 제주의 문화예술 비전을 고민하는 일은 또다른 고향사랑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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