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 (31) 실천편. 1시간을 2년 동안 다듬고 다듬다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한 시간을 바꿀 수만 있다면

공부방을 시작할 때부터 역사 특강을 했습니다. 그 후로 강의 방식을 계속 다듬고 다듬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한 시간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은 교과서를 통해 한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에 교과서를 접했을 때 역사 흐름이 잘 안 잡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1년 동안 한국사 공부를 했고, 이어서 세계사 공부를 또 1년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연결된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마인드맵 방식으로 강의를 변경했습니다.

한국사 교재를 함께 읽고 나서 한 시간 동안 칠판에 마인드맵을 그렸습니다. 학생들이 흥미를 느꼈지만 대화와 토론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동안 저 혼자 공부하는 느낌이랄까요. 이번에는 마인드맵을 참고자료로 쓰고 문제풀이를 중점적으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문제풀이에만 주의가 쏠리고 독서가 묻히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방법을 고민하던 중 동료 교사 한 분이 낭독회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서 강의에 도입했습니다. 이 즈음 한국사와 세계사를 통합했고, 세계사를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한국사로 역사를 시작하면 논리적으로 보아야 할 부분을 문학적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사건의 근원을 보기도 어렵고요.

예컨대 ‘불교’를 이야기할 때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순서로 불교를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은 중앙집권국가로 성장한 나라들인 데다가 귀족의 특권이 컸고 신분제가 엄격했죠. 불교는 귀족들에게 현재 신분제도의 정당성을 뒷받침시켜줬기 때문에 당시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받았죠. 하지만 세계사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윤회와 신분차별을 강조한 브라만 교, 카스트 제도에 대한 대안으로 평등과 현재를 강조한 불교가 탄생하거든요. 어쨌든 낭독 방식의 수업은 아이들의 주의를 독서로 끌어당긴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읽기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글쓰기를 병행했습니다. 한 권의 책을 함께 낭독하고 나서 한 개의 질문을 던지고 한 편의 글을 쓰는 방식으로 수업을 변경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공상과학소설 같은 글을 써왔습니다. 아이들과 읽었던 책을 다시 살펴보면서 책의 내용을 반영해 질문을 해결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를 하면서 읽으니 한 시간이 훨씬 근사해졌습니다. 아이들이 게임에서 주로 쓰는 챌린저와 페이커라는 용어를 곁들이면서 글을 썼더니 집중력이 높아졌습니다. 한 편의 글을 함께 완성시키고 나자 아이의 얼굴에서 즐거운 표정이 보였습니다. 이 표정을 보기 위해서 2년 동안 시간을 갈고 다듬은 보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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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이 다른 생각, 절차탁마

도올 김용옥 선생은 『논어』 텍스트를 분석하고 나서 “공자의 말과 제자의 말은 내공의 수준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논어의 구절을 하나씩 뜯어보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가난하면서도 비굴하게 굴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교만을 떨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습니까?”
- 「학이」 편

공자는 동의를 하면서도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생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구나. 하지만 가난에 억눌리지 않고 충분히 즐거움을 누리고, 부유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할 거야.”
- 같은 편

자공이 말한 것은 ‘상황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공자가 말한 것은 ‘절대논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사람이라면 언제 어느 순간이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죠. 사람은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서 태도가 달라지기 쉽기 때문에 자공의 생각과 공자의 생각 중 그 어느 것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공부를 깊이 해야만 다듬어질 수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60세가 되었을 때 자신은 단지 1년을 60번 되풀이해서 살았을 뿐이라고 고백한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똑같은 시간을 살아도 어떤 사람은 엄청난 업적을 남기고 어떤 사람은 민폐를 끼치는 까닭은 시간의 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머릿속에 생각하면서 다듬어가지 않으면 절대로 시간은 아름다워지지 않습니다. 공자의 자극에 힘입어 자공은 예전에 배운 시를 끄집어냅니다.

자공이 말했다. “시에 이르기를 ‘자르고 다듬는다’고 하며 ‘쪼개고 정밀하게 간다’고 합니다. 선생님과 저의 대화가 바로 이와 같군요.”
- 같은 편

『논어』는 전체 20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글자의 수는 1만2000여 자이며 장으로는 총 516장으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저는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나온 수진본(포켓볼)을 가방에 넣고 다닙니다. 한 권의 책에는 『대학』,『중용』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한 권으로 이루어진 『맹자』는 오히려 이보다 더 묵직합니다. 고전 중에서는 그렇게 긴 글이 아닙니다. 하지만 2,000여년 동안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 역시 『논어』입니다.

논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은 저의 시간과 아이들의 시간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질적으로 다듬고 다듬어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내면 그 시간을 함께 한 아이들에게 반드시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제가 한 시간 역사 강의를 2년 동안 갈고 다듬은 까닭입니다. 1시간의 예술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어부책]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

2주에 한 권씩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을 게재합니다. 특히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은 부모님들은 꼬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권 한 권 만지작거려봅니다.

12. 프레드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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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리오니 (지은이), 최순희 (옮긴이) | 시공주니어 | 1999년 11월

프레드릭이 내 아이의 친구라면, 또는 내 아이라면 부모님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까요? 반가울까요? 아니면 유감스러울까요? 인간(프레드릭은 인간이 아니지만)은 밥맛으로는 살 수 없고, 누군가는 그것을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죠. 하지만 이것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만큼은 합의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화감독, 예술인 등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생활고에 죽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프레드릭들은 안녕할까요? 하지만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아이가 바로 부모의 프레드릭이니까요.

처음에 <프레드릭>을 보았을 때 저는 주인공만 보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읽으면서 프레드릭의 동료 쥐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았습니다. 프레드릭의 가치를 인정하고 기꺼이 자신들이 땀 흘려 얻은 식량을 나누어 주었으니까요. 이것은 부모와 지식의 관계로 재해석해보겠습니다. 부모는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밥값’을 하라는 압박을 합니다. 아이는 발달과정에 맞게 대우를 받아야 하고, 그런 아이만이 나중에 제대로 된 ‘밥값’을 할 수 있죠.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특히 실컷 놀 수 있도록 해주세요. 통 큰 마음으로 기다리고, 같이 놀아주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밥값’을 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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