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제주 미래 불안불안...더이상 ‘유랑’ 없어야

교수사회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했다. ‘세상이 어지럽고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도리의 있고 없음은 접어두자. 적어도 어지럽다는 말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2015년 제주사회를 나타내주는 키워드이기도 했다.

다들 불안해 했다. 땅값,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미래 세대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소박한 노후생활의 상징과도 같았던 ‘땅 한뙈기’의 꿈을 일찌감치 접는 이들이 생겨났다. 한때 ‘저(低)평가’를 운운했던 목소리도 폭등세에 눌려 점차 사그라들었다. 땅(집)을 갖고 있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에 쥔 금액으로는 대체재를 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이 ‘은근한 기대’마저 앗아갔다.  

왕성한 식욕을 보여주듯 토지를 잠식해 들어가는 차이나머니, 외부자본은 불쏘시개였다.

폭발적인 인구 유입도 왠지모를 불안을 가져왔다. 제주도가 남아나겠느냐는. 주거, 환경, 교통, 기반시설...

어느덧 각 부문에서 총량제를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입도세 혹은 환경자원세 도입 제안이 나왔으나 ‘시기상조’로 받아들인게 엊그제였다.

파이 이론(pie theory)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민선5기 도정 시절 자주 등장했다. 나라(제주도)의 부(富)를 파이에 비유하면서 파이가 커져야 각자(도민)에게 돌아가는 몫이 커진다는 이론이다.

당시 파이는 인구와 직결된 것으로 여겨졌다. 80만, 100만이 되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 이른바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줄 알았다. 제주 자체적으로도 부의 선순환 구조가 이뤄질 것처럼 생각했다. 누구도 토를 달 분위기가 아니었다.

금세 상황이 바뀌었다. 60만을 넘어, 한달에 1개 마을이 생기다시피 했다. 인구 유입 열풍 속에 이제 파이를 들먹이는 도민은 많지 않아 보인다.

방향타의 부재는 어지러움의 또다른 원인이다.
 
제주는 어디로 가고 있나? 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

하룻밤 자고 나면 특별자치도가 출범한지 10년이 되는 해를 맞이한다. 따지고 보면 특별자치도는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로 빨리 나아가도록 돕는 기능적 방편의 성격이 다분했다. 물론 고도의 자치, 분권을 실현해보자는 실험 정신도 깃들어 있었다.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지구촌 어디서든 사람, 자본, 상품의 이동이 자유로운 세상인데 국제자유도시가 제주의 비전으로서 여전히 유효한가? 차이나머니의 위력을 실감한 마당에,  자본 만큼은 더 이상 이동이 자유로워선 안된다고 도민들이 여기지는 않을까? ‘글로벌 시대’를 모르는 순진한 생각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 고도의 자치, 분권은 어떻게 됐나. 목표(국제자유도시)를 향한 행동통일, 효율 행정이라는 깃발에 가려 공동체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기회마저 빼앗긴 것은 아닐까. 자치 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 조차 사라진 것은 어떤 연유일까.

우려가 맞다면, 제주의 미래를 그리는데 있어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래 설계는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래 비전을 짜고있는 원희룡 도정이 ‘청정’과 ‘공존’을 앞세운 것은 잘한 일이다. 제주의 현주소와 지향점을 동시에 드러내는 단어로 이보다 나은게 또 있을까 싶다. 국제자유도시니 특별자치도니, 미래 비전 감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는 표현 대신 핵심가치를 전면에 배치한 점에선 고민의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제대로 실현한 적도 없으면서 언제나 ‘법정 서열’로는 최상위에 자리했던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과의 관계는 이 대목에서 무의미해진다. ‘교통정리’가 필요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콘텐츠와 사회적 합의다. 청정과 공존을 무엇으로 채울 것이냐는 문제는 중요하다. 콘텐츠는 비전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잣대이기도 하다. 기존 내용물의 재탕이거나, 각색 정도여선 곤란하다.

그 무엇이든, 한 사회의 미래 비전으로 내세울 수 있으려면 구성원들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도 받아들여야 한다. 주창한다고 곧 사회의 비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공감, 소통의 문제로 귀결된다. ‘도민계획단’이란 이름 아래 모였다고 다 된게 아니다.

스스로 내건 비전, 가치에 취하지 않기. 소통하고, 실천하기. 그래야 도민에게 다가갈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어느때 보다 소통이 중요한 한 해였다. 해군기지 갈등으로 시작해 제2공항 갈등으로 해를 마감할 판이니 말이다. ‘군 관사 중재’가 무산된 뒤 원 도정은 그야말로 무기력했다.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게 적기도 했지만, 강정과의 교감은 아예 단절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미는 제2공항이 장식했다. 제2공항 자체는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에겐 기회-교통편의를 포함한-가 될 수도, 또다른 누군가에겐 위기일 수 있다. 다만 그 ‘누구’의 인원을 따지다보면 갈등 해결은 요원해지기 마련이다. 위기로 받아들이는 쪽의 상실감이 너무 크다는 점을 항상 새겨둬야 한다.

백년대계, 사상 최대의 국책사업에 흥분했는지, 원 도정은 이걸 간과했다. 망향(亡鄕)의 슬픔과 기회비용은 서로 견줄 수 없는 부분이다. 성안(제주시내) 아들집도 불편해하는 촌로들에게 망향은 멘붕 이상의 것일 수 있다.

격분하면 무슨 말인들 못하랴! 잔뜩 화가 난 지역주민들을 향해 ‘유언비어 날포’를 운운했으니, 제대로 오버했다. 원 도정 들어 문득문득 서슬퍼런 군사독재시절의 그 무엇이 떠오를 때가 있다. 개인적인 잡념이었으면 좋겠다.

제2공항에 대한 반발이 예상외로 커지자 원 지사는 누가됐든 현장에서 살다시피 하겠다고 했다. 소통을 강조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후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외려 원 지사는 서울 출장 길에 측근의 총선 출마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구설에 올랐다. 그 보다는 해명이 가관이었다. 지사가 아무런 방어장치 없이 다녀왔겠느냐는 취지였다. 방어장치는 ‘사전 선관위 문의’를 의미했다. 얼마나 측근을 세심하게 챙겼으면, 그 바쁜 와중에 선관위 확인까지 거쳤겠느냐는 비아냥까지는 염두에 두지 못한 모양이다. 일종의 선민의식까지 엿보인다. 

이래서 진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진정성은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강정 주민과 성산 주민들은 바로 그것을 보지 못했다. 말의 성찬은 오래가지 못한다.

실기하면 더 꼬일 수 밖에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자세를 낮춰야 한다. 마음과 귀는 열어두고서.

새해를 이틀 앞두고 원 지사가 또하나의 작품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주택 10만호를 공급하되, 이중 3만호는 공공임대주택으로 채우겠다는 내용이다. 이른바 공공 주도의 주택 공급 정책이다. 분양가상한제, 신 개념 택지인 ‘올레주거지구’ 도입 방침도 밝혔다. 

고삐 풀린 부동산을 잡기위한 사후 대책 치곤 신선한 편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용두사미가 돼선 안된다. 용의주도하지 않고선 시장에 메시지를 줄 수 없다.

농지개혁, 감귤개혁도 발표 당시 기대가 컸다. 투기 대상이 된 농지를 경자유전의 원칙에 입각해 제 자리로 돌려놓겠다고 하자, 속으로는 어쩔 값에 대놓고 불평할 수 없었다. 감귤을 정치작물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감귤산업 구조조정 방안도 상당한 공감을 얻었다. 농지개혁은 더 지켜봐야 하지만, 감귤개혁은 시도 첫 해에 가격 하락의 여파로 성공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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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진 편집국장 ⓒ제주의소리
새해는 제주사회가 덜 어지러웠으면 한다. 그럴려면 선장이 제 자리를 지켜야 한다. 몸은 물론 마음까지 유랑(流浪)해선 안된다.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에 이어 '사시이비'(似是而非)가 두 번째로 꼽힌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시이비는 '겉은 옳은 것 같으나 속은 다르다’는 뜻이다. 정부정책의 진정성 결여를 재치있게 꼬집었다. 대한민국 정부도 진정성이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진심으로 빌겠다. 2016년 제주 도정은 사시이비에서 자유로운 한해가 됐으면 한다. / 김성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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