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의 도시에 가다] 프롤로그

지난 2011년부터 [제주의소리]에 '초짜여행가 양기혁의 중국횡단기', '양기혁이 떠난 러시아 여행'을 연재했던 양기혁 여행애호가가 '표트르의 도시에 가다'라는 타이틀로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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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카즈의 풍경. ⓒ양기혁
2015년 3월 5일부터 4월 5일까지 한 달 간 러시아 여행을 했다. 우랄 산맥 서쪽의 유럽권 러시아지역인데, 구체적으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에서 카스피 해에 이르는 볼가강 지역, 지난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로 합병된 크림반도, 카자크들의 거주지였던 돈강 유역, 그리고 모스크바다.

원래 계획으로는 카프카즈 지역도 가려고 했으나, 당시엔 대부분 이슬람권인 러시아의 북카프카즈 지역이 여행 적색경보지역(철수권고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여행기간 동안 휴대폰으로 북카프카즈 지역으로 가지 말라는 외교부의 문자메시지가 반복해서 들어왔다. 가서는 안된다는 강제가 아니라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권고이기 때문에 메시지를 무시하고 가려는 생각도 했지만 반협박성(?)으로 느껴지는 외교부의 문지메세지가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보내오는 바람에 결국 포기하고 볼가강의 끝에 있는 도시 아스트라한에서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서쪽 흑해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행준비를 하면서 인천공항에서 모스크바 가는 편도 비행기만을 예약했고, 돌아올 때는 육로로 카자흐스탄을 통과해 중국 신장을 거쳐 돌아오는 코스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천공항에서 탑승수속을 하는 동안 문제가 생겼다. 러시아 항공의 한국인 여직원은 무비자인 경우 왕복 항공권을 예약해야하며 편도인 경우는 비자가 있어야 한다고 탑승수속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나는 작년에 무비자로 속초항에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간 다음 바이칼 호수와 그 인근 도시인 이르쿠츠크까지 갔다가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도시인 만주리를 통과하여 한국으로 돌아온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여직원의 말은 부당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당장 수속해서 비행기를 타야하는 입장이고, 옳고 그름을 따지며 시간을 끌 수 없었으므로 한 달 뒤인 4월 5일 모스크바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말았다. 그래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을 통과하여 돌아온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유동적이고 불확실했던 일정은 한 달 간으로 확정되었다.

3월 초 여행을 떠날 때 한국은 봄기운이 완연해 포근했으나 러시아는 아직 겨울이 남아있어서 강에는 얼음이 두껍게 얼어있었고, 드넓은 평원은 하얀 눈으로 덮여있는 곳이 많았다. 날씨도 춥고, 우중충하게 흐려있을 때가 많아서 야외에서 돌아다녀야하는 여행에는 적합하지 않은 시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광지나 호텔 같은 곳들이 사람이 붐비지 않았고, 여유 있게 여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러시아의 여행 시즌은 5월에서 9월까지다. 얼음이 녹은 강에는 유람선이 다니고 길거리에는 거리의 악사들이 넘쳐난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나서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처럼 러시아의 여름은 화려하지만 겨울은 또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보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번 여행에서 혜택을 본 것은 러시아의 환율 하락으로 인한 비용절감이다.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의 경제제재로 러시아의 환율이 폭락해 일 년 전 1루블에 30원이었던 환율이 이번에는 루블당 17원에 환전을 했고, 여행기간 중 현지에서 쓴 카드는 루블 당 20원 정도였다. 작년에 비해 거의 40% 할인된 비용으로 여행을 한 셈이다.

러시아의 언어, 역사, 문학 그리고 예술 등을 깊이 있게 공부를 한 것이 아니고, 그저 호기심 많은 여행객 또는 딜레탕트라는 아마추어 입장에서 쓴 점을 이해하여 주시고, 부족한 내용에 대해서는 고쳐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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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기혁.
필자 양기혁은 서귀포 출신으로 고등학생 때 상경해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바쁘게 살다 중년에 접어들자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방송통신대 중문과에 입학해 중국어를 공부했다. 이왕 공부한 김에 중국 횡단 여행까지 다녀와 <노자가 서쪽으로간 까닭은?>이라는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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